[Review] '바람이 불어오는 곳', 가장 위대한 멜랑콜리커와의 만남 [공연]

글 입력 2019.11.2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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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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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젊은 시절 기타를 메고 노래 부르는 것을 즐겼다. 예전의 아빠 사진을 보면, 코미디 속 영화배우처럼 세상을 다 가진듯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여자들은 아빠의 노래를 좋아했고, 아직 세상의 풍랑이 덮치지 않은 젊은이의 생에 물러섬의 여지는 없었다. 그 시절의 가수들은 젊음의 도화지에 더 화려한 색채를 입혔다.


하지만, 내가 태어난 이후 우리 가족의 생활은 힘겨움의 연속이었다. 그 힘겨움의 무게를 짊어지는 동안 아빠의 등은 굽었고, 자신감은 자존심만을 남긴 채 사라졌다. 자꾸만 ‘인생을 헛산 것 같다’며 푸념하는 아빠와 이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꼭 함께 관람하고 싶었다. 아직 사라지지 않은 그 시절, 그 노래의 아름다움을 같이 누리고 싶었다.

 

부모님과 함께 들어선 공연장은 유쾌하고 달뜬 분위기로 가득했다. 다른 공연이라면 으레 있을 법한 시작 전의 긴장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관객들은 김광석의 노래가 좋아서, 그 노래를 조금이라도 더 향유하기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 공통분모 덕분에 서로 더 빨리 교감하며 무대를 즐길 수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주인공인 풍세는 김광석처럼 사람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가수를 꿈꾼다. 학생회의 일원이던 고은은 얼떨결에 풍세의 공세에 넘어가 밴드의 퍼커션을 맡게 된다. 풍세의 친구인 상백과 그의 여자친구인 은영은, 매일 투닥거리면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얼굴은 누구보다 노안이지만 성격은 귀여운 영후는 천재적인 베이스 기타 연주자다. 이들은 ‘와장창’이라는 노래로 대학 가요제에서 대상을 차지한다. 그들의 대학 시절을 엿보며 관객들은 때로는 옅은 미소로, 때로는 박장대소로 화답한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또 한 명의 주인공은 이 뮤지컬의 만능 엔터테이너, 박신후 씨다. 풍세와 친구들이 속한 대학의 경비원 역할도 담당했다가, 대학 가요제의 사회자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는 박신후 씨의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는 극의 초반부에 커다란 재미를 선사한다.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적재적소에 배치된 김광석의 노래가 주는 흥겨움에 관객들은 점차 극으로 몰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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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철학자, 김광석의 슬픔


 

슬픔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좌절의 밑바닥까지 치달아 에너지를 전부 소진시키는 슬픔도 있지만,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생각의 연쇄를 일으켜 도리어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슬픔도 있다. 김광석의 노래가 주는 슬픔은 후자다. 그의 노래는 풍요와 번영으로부터 소외된 멜랑콜리커의 아픔을 담아내지만, 그 아픔에만 정체되지는 않는다. 착륙과 이륙을 반복하면서도 반드시 다시 이륙하고야 마는 비행기의 에너지를 닮았기 때문이다.


서른을 목전에 둔 사람은 ‘서른 즈음에’를 들으며 청춘의 흘러감을 아쉬워하지만, 동시에 그 노래에서 삶의 다음 장막을 살아가기 위한 용기를 얻는다. 사랑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사람은 ‘사랑했지만’을 들으며 허망함에 아파하면서도, 지나간 사랑을 애도하고 다음 사랑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기반을 다진다. 삶의 애환을 담은 김광석의 노래들은 그 애환을 버텨내기 위한 용기를 준다. 끝까지 완주할 수 있게 목을 축여주고, 다리를 주물러준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 김광석의 노래를 다룬 뮤지컬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초반의 유쾌함이 언제까지나 지속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극의 중반부로 넘어가면서 풍세와 친구들은 점차 음악에서, 그리고 서로에게서 멀어졌다. 자신만의 음악을 하겠다는 풍세의 꿈은 음악 시장의 현실 앞에서 옅어져 갔고, 취직을 하고 은영과 결혼한 상백은 풍세의 열정이 순진하다고 여겼다. 일상에 바빠 연락은 소홀해졌다. 멀어진 물리적 거리만큼, 마음의 거리도 점차 벌어져만 갔다.


그러나 이들은 결국 다시 뭉쳤다. 김광석의 노래처럼, 희망을 잃지 않은 채로. 풍세와 고은은 다시 사랑을 확인했고, 공연을 하고 싶다는 풍세의 바램에 냉소적이던 상백의 마음도 바뀌었다. 생전의 김광석이 그랬듯, 그들은 콘서트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에게 잠깐의 행복을 선사했다. 무대에서만 유효한 행복일지 모르지만, 결코 쉽게 잊히지 않을 그런 행복이었다. 앵콜곡으로 모두 일어나 즐긴 ‘먼지가 되어’를 끝으로 배우와 관객들은 아쉬운 이별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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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작은 쉼, '바람이 불어오는 곳'


 

‘우리들의 사랑’과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모두 황두식 씨가 연출한 작품이다. 과거 그 시절의 명곡을 회상하며 관객들과 호흡하려는 의도가 공통되기 때문에, 극의 분위기와 흐름도 유사한 편이다. 다만 ‘우리들의 사랑’은 김현식, 유재하, 김광석의 노래들을 모두 다루지만, ‘바람이 불어오는 곳’은 김광석의 노래들만을 집중적으로 다룬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두 공연을 모두 관람한 입장에서는, 이번 뮤지컬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완성도가 더 높다고 여겨졌다. 물론 ‘우리들의 사랑’이 올해 초연인 만큼 벌써 7년째 공연을 이어오고 있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의 완성도를 단시간에 따라잡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들의 사랑’에 비해 캐릭터의 특성도 더 잘 드러나고, 극의 중반부터 전개되는 갈등의 양상도 이해가 용이하다고 느꼈다. 배우들의 가창력이나 무대 연출은 두 뮤지컬 모두 훌륭해서 비교가 어려웠다.
 

공연 중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찌그려!’였다. 무슨 뜻인지 잘 몰라 부모님께 여쭤보니 ‘건배’와 유사한 말이라고 하셨다. ‘한 잔 찌그려!’라고 말하며 소주잔을 부딪히면 마음에 얹혀 있던 걱정 근심이 전부 내려간 듯한 느낌이 드는 것, 그것이 일상의 작은 쉼이다. 뮤지컬 중간에 열린 이벤트에서 당당히 손을 들고 무대에 나와 김광석 소주잔을 선물로 받아가셨던 중년 여자분이 기억에 남았다. 그분에게도, 우리 부모님에게도 이번 공연은 소주보다 훨씬 훌륭한 위안이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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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제19회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팀 금구대학교 동아리 밴드 '바람' 멤버들은 밴드 활동을 하며 대학시절 꿈과 사람 그리고 우정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멤버들에게는 자신들의 인생에서 꿈을 꾸고 노래를 하던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다. 멤버들은 밴드 활동을 평생 하겠다고 약속하지만 군대, 취직, 결혼, 육아 등의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자 바람 밴드는 자연스럽게 유명무실화된다.
 
20년이 넘는 시간이 훌쩍 지나고 무미건조한 일상에 완벽하게 적응해 살고 있는 멤버들은 문득 자신들의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을 돌릴 수도 되돌아갈 수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 밴드 멤버들은 누군가의 편지가 라디오 DJ의 목소리로 나오는 것을 듣게 된다. 그리고 라디오에선 지금은 폐지된 MBC 대학가요제를 추억하는 DJ의 이야기와 함께 제19회 대학가요제 대상곡인 바람 밴드의 '와장창!'이 흘러나온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
- 가장 김광석다운 뮤지컬 -


일자 : 2019.11.15 ~ 2020.01.05

시간

11.15 ~ 11.29

화/수/금 저녁 7시 30분

토/일/공휴일 오후 4시

 
11.30 ~ 12.29
화/수/목/금 저녁 7시 30분
토 오후 4시
일/공휴일 오후 4시
12.25 오후 4시
 
12.31 ~ 01.05
화/목/금 저녁 7시 30분
토/일 오후 4시
01.01 공연 없음

장소 : 대학로 SH아트홀

티켓가격
R석 50,000원
S석 40,000원
 
기획/제작
LP STORY

관람연령
만 7세 이상

공연시간
150분

 


[이창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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