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지구의 탄생과 소멸을 랩으로 말하다 - 우리별 [공연]

해피 데스 데이 투미, 연극 <우리별>이 던지는 당돌한 메시지
글 입력 2019.11.2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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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집단 LAS의 <우리별>은 랩 연극을 앞세워 홍보했기에 흥미를 일으켰던 작품이다. 아무런 정보 없이 “랩”이란 소재만 들었을 땐,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보편적으로 떠오르는 랩의 이미지인 강하고 사나운 인상은 파스텔 톤 하늘빛의 포스터와는 어울리지 않았기에 더 궁금증을 자아냈다.

 

미리 말하자면, <우리별>에서 말하는 "랩"은 랩보단 노래에 가까웠다. 아니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는 랩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꾼 연극이라 할 수 있다. 띡. 똑. 띡. 똑. 전자 메트로놈 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배우들의 대사는 노래도, 연기도 아닌 랩이라는 용어가 가장 어울릴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일본 원작을 두고 있는 만큼, 오프닝 곡으로 극을 시작하는 극의 짜임은 일본 애니메이션과 같은 기분을 들게 했다.

 

지구, 화성, 목성, 토성...  8명의 배우가 번갈아 행성 이름을 말하거나 슬픔, 행복, 사랑 같은 감정의 이름을 말하며 박자를 만든다. 단순히 리듬만 타는 것이 아닌 배우 자신들이 마치 행성이 된 것 마냥 동그란 무대를 돌면서 랩을 뱉어낸다.

 

배우들의 움직임은 공간의 울림으로 전달되고 미세한 진동과 전자 메트로놈의 소리는 묘하게 박자가 맞아떨어졌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랩이 가득한 오프닝과 함께 극은 시작됐다. ‘도대체 이 연극 뭐지?’ 알 수 없는 신기함에 매료되고 나도 모르게 노래에 리듬을 타며 극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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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등장한 <우리별>의 서사는 주인공 지구와 그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다. 생일을 맞이한 지구는 생일 선물로 망원경을 받는다. 그를 통해 내려다본 세계엔 인류의 역사를 엿볼 수 있고 그 과정이 즐겁기만 한 지구는 더 크고 성능이 좋은 망원경을 바란다.

 

하지만 생일은 일 년에 한 번밖에 없는 법. 선물을 줄 수 없다는 아버지의 말에 지구는 내년이 되는 방법을 모색하는데, 그 해결책으로 자전과 공전을 발견한다. 자전 한 바퀴에 하루가 지나는 원리를 따라 지구는 스스로 돌기 시작한다. 한 바퀴, 두 바퀴…. 다시 생일이 돌아온 지구는 얼마나 시간이 지난 지도 모른 채, 더 큰 생일 선물만을 바라며 계속해서 시간을 물 흐르듯 써버린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다시 돌아온 지구의 생일은 곧 할머니의 기일이 되어있다. 자신의 욕심이 할머니를 죽음으로 이끌었다 생각한 지구는 시간을 돌리기 위해 자전보다 강력한 공전을 선택한다. 무대의 원이 마치 태양을 가리키는 듯 무대를 반시계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시간을 되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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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를 되살린 지구는 운명처럼 옆집 소녀 달님과 만난다. 실제 지구와 달이 행성과 위성의 관계를 맺는 것처럼 둘은 만남과 함께 일순간에 친구가 된다. 때론 철없이 놀면서 다투기를 반복하는 유년시절의 시간은 길게 늘어트리더니, 갑작스레 시간의 속도는 빨리 감기로 급변한다.

 

지구와 달님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중학교를 지나, 수험생이 된다. 서로 다른 지역의 대학에 진학하고 중년 여성, 일순에 할머니로 변해버린 지구와 달님은 그렇게 한평생 인생의 동반자로 늙어 갔음을 극의 진행으로 보여준다. 이런 서사 과정에서 나타난 재미난 점은 지구의 자전 속도가 해마다 느려져 달과의 거리가 매해 3.8cm 멀어지고 있는 현상을 담아낸 것이다.

 

다른 반이 되고, 다른 학교에 진학하고, 다른 지역의 대학교에 합격하는 등의 지구와 달님이 멀어지는 양상은 그들의 의지가 아닌 자연의 섭리가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물리적 거리는 멀어져도 결코 그 우정이나 우애가 변한 것은 아니다. 몇백 광년 뒤에 지구와 달님이 죽음을 앞에 두었을 때 서로를 기억하자는 의미로 묻어 둔 타임캡슐은 시간의 진행만 있었을 뿐, 그 안의 우정은 변치 않음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매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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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해당 연극에 있어 서사의 탄탄함과 극본의 짜임새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연극이 아니었다. 랩이라 통칭되는 노래 같은 발화와 퍼포먼스, 우주를 표현하는 무대연출이 주는 즐거움에 큰 가중치를 부여한 기분이었다.

 

실제 연극은 랩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이해하는 대사보다 흘러 지나간 대사가 훨씬 많았고 서사의 진행 또한 시간의 흐름을 역행하는 모습이 자주 등장해 해석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꼭 모든 서사를 파악하지 않아도 연극 자체가 주는 즐거움에 몰입하고 반복된 리듬을 파악하고 공간이 주는 울림에 집중하는 일련의 과정이 <우리별>을 기획한 목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

 

아이러니하게도 소멸은 곧 탄생과 맞닿아 있다. 인간의 죽음은 곧 또 다른 세상의 삶이 시작됨을 말하는 윤회 사상과 조그만 점에서 시작한 대폭발 이후 우주의 탄생이 있었다는 가설, 빅뱅이론처럼 죽음은 역설적이게도 탄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죽어가는 내가 태어나는 거야?’ 연극 <우리별>의 오프닝 곡 행성소멸에서 말하는 노랫말은 어쩌면 해당 연극을 관통하는 주제를 가리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죽음과 탄생의 역설, 탄생과 죽음에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우리별>은 당돌한 한마디를 던진다.

 

 

“Happy death day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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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송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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