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어쩌면 우리네 이야기, 연극 ‘우리별’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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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분의 우주여행이 시작되었다. 우주선이라는 콘셉트로 안내된 CKL 스테이지의 좌석에 앉았고 나는 지구라는 아이의 이야기를 보았다.
지구의 생성과 소멸의 이야기를 간결한 대사와 랩을 통해 짧게 소개한 후, 그를 길게 풀어나가는 식으로 구성되었다. 태양계 중 하나인 지구를 의인화한 이야기라기엔 너무나 우리네 이야기였고, 현실적이어서 웃음이 났던 연극이었다.
# 우리 모두 이야기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평생을 내 몸과 내 생각, 내 느낌으로 세상을 보고 느낀다는 건 참 신기하다. 남의 생각이 어떠한지 우리는 겉으로만 볼 수 있고 온전히 상대방이 될 수 없기에 그들은 궁금증의 대상이다. 우리 할머니는 어떤 인생을 사셨을까, 우리 엄마, 아빠, 언니, 친구들은? 어쩌면 평생토록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는데, 그들을 만난 건 귀한 인연이라고 해야되나.
귀한 인연치고 우리는 그들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한다. 우리 할머니는 내가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백발의 할머니이다. 주름지고 잘 챙겨주시고, 뒷짐을 지고 다니신다. 할머니가 내 나이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건 어쩐지 낯설다. 지구의 할머니도 그랬다.
부모님은 어떤가. 극에서 지구의 엄마는 그랬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하고, 집안일을 하고,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시장 가서 장을 봐오고 맛있는 밥을 차려 가족을 기다린다. 극에서 아빠는 그랬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출근해 일하고 일하고 일하고, 밥 먹고, 야근하고, 퇴근하고.
나의 부모님의 이야기였고, 만나면 투덕거리는 언니와 나의 이야기였다. 만나면 깔깔거리는 나와 친구의 이야기였다.
겉으로 보이는 할머니와 부모님, 언니, 친구가 가진 각각의 이야기는 대부분 반복되지만, 나는 여전히 그들의 삶을 온전히 체감할 수 없다. 겉으로는 비슷한 일상을 살아가는 그들도 각각의 생각과 시야로 살아갈 테니, 그들만의 지구, 그들만의 행성 하나씩은 지니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각자의 사정이 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우리는 모두 남들은 알 수 없는 이야기 하나씩은 가지고 있겠지.
# 당연한 것을 거스른다는 생각
시간을 되돌아가는 것은
결국, 죽어가는 거야.
- 연극 우리별 中
시간의 흐름 속에 할머니를 살리기 위해 지구는 반대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자 할머니는 시간을 너무 되돌리지 말라고 말한다. 결국은 죽어가는 것이니. 극 중 남자가 시간을 돌려 곧 없어질 행성을 찾아가려고 하는 것을, 선생님은 ‘뒤는 돌아 볼 수 있어, 돌아보는 것으로 충분해’라며 ‘그저 나아가면 되는 거야.’라고 말하며 막는다.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이러이러한 걸 하고 싶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실제로 시간을 너무 많이 돌린다면 어떨까. 지금 살아있는 이는 (태어나기 전이므로) 죽을 것이고, 죽어있는 사람도 살아났다가 태어나기 전으로 다시 돌아가 죽을 것이다.
시간의 정방향은 죽음을 향해 간다. 시간이 지나면서 지구도 소멸하듯, 사람도 그러하다. 시간의 반대 방향도 생각해보면 역시 죽음을 향해 간다. 죽고, 흙이 되고 별이 되는, 자연스럽고 당연한 시간의 흐름은 막을 수 없다. 그냥 그대로 흘러가면 되는 것이다. 그저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되돌아보는 걸로 충분하니까.
# 다른 삶, 같은 인생
할머니 曰 아니, 옆집 영감이 글쎄~
지구 曰 아빠, 나 생일선물 사줘.
언니 曰 이젠 8번이랑 11번 채널까지 안 나와, TV 좀 사자.
엄마 曰 아니, 냉장고가 혼자 열리더라니까. 급한 건 냉장고가 먼저야.
아빠 曰 아빠 돈 없다.
같은 듯 다른 듯 공감을 자아내는 비슷한 대화들은 조금씩 다르게, 리드미컬하게 반복된다.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듯이 말이다. 슬픔, 가난, 기쁨 등의 감정과 3단 반찬통, 멸치볶음, 쓰레받기 등의 소소한 주변의 존재들, 월화수목금토일,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생일 축하해 등의 평범한 일상어들도 반복해 이야기된다. 이 역시 우리네 인생이다.
같은 나이, 같은 대학이지만 다른 가정 아래 삶을 산다. 같은 도로를 이용하는 트럭, 택시, 자가용의 운전자들은 각기 다른 목적지를 향해 간다. 퇴근 시간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곳에 있는 집을 향해 간다. 같은 인생을 살면서도 우리는 수백 수천 개의 다른 삶을 살아간다.
다른 삶을 살아가지만 어쩌면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는 반복되고 소소하다. 코스모스 아파트(우주)에 자리 잡은 그녀의 집이(지구) 불이 켜져 빛이 나듯이 우리들의 행성도 빛이 난다. 연극 ‘우리별’을 보며 느낀다. 행성처럼 사라질, 빛이 되어 사라질 우리네 인생은 평범하지만 빛이 나니, 소소한 지금의 행복에 살고 그저 나아가면 될 뿐임을.
우리별- 지구를 통해 말하는 우리의 삶 -
일자 : 2019.11.08 ~ 2019.11.17
시간평일 19시 30분주말 19시화요일 공연 없음*11.17(일) 15시
장소 : CKL스테이지
티켓가격전석 35,000원
주최/기획창작집단 LAS후원한국콘텐츠진흥원
관람연령만 13세 이상
공연시간95분
[서휘명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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