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그래도 크리에이티브가 좋아

글 입력 2019.11.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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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크리에이티브가 좋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뭘 만들어내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 어릴 적엔 그림과 음악으로, 커서는 주로 글과 사진으로 나를 표현했다. 사진과 광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결국 카피라이터로 진로를 선택했다. 부모님의 반대도 있었지만, 장비가 무거워 들고 다닐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평생 겪어보지 못할 일들 -예를 들면 회사가 사라져 20대 초반에 실업 급여를 받고, 모욕적인 말을 숨 쉬듯 들었던 일들-을 겪고 광고에 환멸을 느끼기도 했다.


하루가 너무 벅찼다. 두 번째 퇴사하고 아트인사이트 에디터에 지원했다. 그때의 나는 긴 호흡의 글을 쓰고 싶었다. 느리더라도 내 속도 대로 가고 싶었다. 감사하게도 아트인사이트에서 지면을 내주어 내 생각을 자유롭게 표출할 기회를 주셨다. 프리랜서가 겪는 고충, 좋아하는 영화, 짚고 가고 싶은 문화 현상을 주제로 글을 기고했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활동하며 내면의 그늘이 사라졌다. 변화가 단어 그대로 하루 만에 일어났다. 악몽에서 깨어났는데, 햇빛이 환하게 빛나는 아침을 맞이한 기분이다.


내면에 묻어두었던 크리에이티브를 향한 사랑이 다시 샘솟았다. 프리랜서로 일하기엔 역량이 부족해 스타트업을 비롯한 여러 회사에 지원했다. 면접과 탈락의 고배를 맛보았다. 더 좋은 회사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라고 느껴졌다. 아트인사이트 에디터로 활동한 지 두 달 정도 됐을 때, 새로운 회사에 들어갔다. 어쩌다 연이 있는 CD 님들이 계신 신생 광고회사다. 입사 전까지 많이 고민했다. 이 길이 아닌 것 같아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는 건 바보 같은 짓 아닐까? 친하게 지내는 카피라이터 친구가 “그건 네가 제대로 배워보지 않아서 일 수도 있지.”라고 말했다. 친구의 말에 모든 복잡한 생각이 날아갔다.


현재는 유니콘 같은 두 분의 CD 님 밑에서 일하고 있다. 일이 정말 많다. 일주일에 3일을 촬영장에서 보내고, 새벽에 퇴근해 오전에 출근하는 날도 종종 있다. 그렇지만 힘들지 않다. 뭐라도 하고 싶은 마음에 했던 일들이 쌓여 1mm씩 발전하고 있다. 외근 갔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 한 CD님의 결혼 비하인드 이야기를 들었다. 연애하는 동안 아내분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열었던 이벤트들에 대해 말씀해주셨는데, 아내분을 향한 애정이 가득했다. 집에 돌아와 넷플릭스에서 올라퍼 엘리아슨 다큐멘터리를 다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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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퍼 엘리아슨은 착시 예술가다.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다르게 하기 위해 빛, 물, 기온과 같은 소재를 활용해 대규모 설치 예술을 한다. 유명한 작품으로는 Tate Modern에서 했던 , 등이 있다. 그의 작품은 현실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는 공간을 통해 진실을 ‘창조’한다. 현실 안에서 공간을 왜곡하거나 혹은 색을 뒤바꾼다. 진실이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명제를 작품에서 주로 다룬다. CD 님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봐서인지, 그 역시 대상(관객의 관점)에 대한 애정을 품고 있었다. 어떤 사실을 보여주고 싶은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구현할지를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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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말이지만 연애도 일도 애정이 있어야 멀리, 높게 갈 수 있는 것 같다. 어떻게 보여줄지를 고민하다 보면 깊게 생각하게 되고, 발전도 하니 말이다. -좋아서 하니까 고민하는 과정도, 결과도 재미있는 건 덤이다- 올라퍼가 “장소에 따라 햇빛의 질이 다르다”고 말했는데, 이는 심리적 장소에도 적용된다. 어떻게 보여줄지를 고민하는 일은 누구나 한다. 그 고민을 억지로 쥐어짜 내듯 하느냐 놀이하듯 즐겁게 하느냐의 문제일 뿐.


회사에서 단 1분의 시간도 없이 바쁜 와중에도, 아트인사이트에 이런 글을 올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 바로 노트 패드에 주제를 써 내려 간다. 그렇게 바쁜데 어떻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다. 오히려 아트인사이트 덕분에 건강하게 일한다. 일하다 생각의 장벽에 막혀 갑갑할 때, 아트인사이트가 다른 길을 볼 수 있게 환기해주는 역할을 한다.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지치는 날도 있다. 크게 혼나는 날엔 내 길이 아닌가 우울해하기도 하고, 밤낮없는 삶을 사는 직업에 권태감을 느낄 수도 있다. 애정과 권태의 쳇바퀴를 돌다 문득, 이 길이 내 길이 아님을 깨닫는 날이 올 수도 있다. 미련 없이 돌아설 수 있게 온 마음을 다 쏟아야겠다. 일에 매몰되지 않고, 다시 생기를 찾을 수 있게 도와준 아트인사이트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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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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