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바다 그 자체였던 건축가 이타미 준의 바다, 2019 [영화]

바다 그 자체였던 건축가 유동룡
글 입력 2019.09.14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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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장르는 다큐멘터리이다. 처음 15분 동안은 파도치는 바다와 바람에 흔들리는 숲속의 나무들, 수풍석 미술관, 포도호텔, 방주교회 등의 작품과 어우러지는 자연을 보았다. 정다운 감독 인터뷰에 따르면 초반 15분은 이타미 건축, 그 자체에 헌사된 시간이다. 보는 동안 무심으로 돌아가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았다. 빛과 그림자, 바람과 나무, 물과 돌로 이루어진 그의 건축은 고요하고 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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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미 준의 연대기 별 작품


배우 유지태 씨의 차분하고 다감한 내레이션을 통해 영화는 시작한다. 이타미 준의 여동생, 딸들, 동료, 클라이언트 등의 인터뷰와 이타미 준의 연대기별 작품을 통해 이타미 준의 바다를 본격적으로 항해한다.


그중에는 이타미 준과 직접적인 연결이 없는 사람들의 인터뷰도 꽤 있었는데, 예컨대 이타미 준의 작품을 우연히 아름답게 사진으로 기록한 김용관 씨가 기억하는 '그대가 찍은 내 작품 사진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며 우리는 감성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라고 연락해 온 이타미 준의 모습은 더욱 감동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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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 미술관, 김용관(2006)



한국인으로써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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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미 준, 본명 유동룡(1937~2011)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 한국인 건축가 이타미 준(1937~2011). 처음에는 일본인인 줄 알았다. 그러나 이타미 준은 일본에서 태어나고 성장했으나 끝까지 귀화하지 않고 유동룡이라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켰다. 일본의 치하 시대에 생계의 어려움으로 인해 일본으로 온 부모님은 그에게 한국인의 정체성을 반드시 지킬 것을 당부했으며,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고 일본에서 자랐으나 죽을 때까지 한국 국적을 지켰다. 그러나 일본에는 무성 유의 활자가 없었기 때문에 직품을 발표할 때 어려움을 겪어 그가 처음 한국을 올 때 이용했던 공항의 이름 ‘이타미’와 당시 친했던 작곡가 길옥윤의 예명 ‘요시아 준’을 따서 '이타미 준'으로 예명을 지었다.


이타미 준은 한국인을 정체성을 지키는 대신 이방인으로서 많은 차별을 마주해야 했다. 일본에서는 조센징이라고 불리며, 건축 일을 받지 못했고 또 한국에서는 일본인 대우를 받아 어디에도 편히 소속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한국이 좋으니까 한국 국적으로 하겠다며 정체성을 지켰다. 인상 깊었던 것은 한국인이라고 일을 안 주는 것에 대해서 이름을 바꾸지 않고 오로지 자신을 믿고 직접 건축 사무소를 차려 건축에 나선 것이었다. 또한 한국인의 정체성을 잃지 않기 위해 수도 없이 한국을 여행했고 공부했다. 말년의 제주오름과 초가지붕의 부드러운 곡선을 살려 건축한 포도 호텔의 아름다움이 이를 입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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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포도호텔



그의 쓸쓸함


그의 작품들을 보면 대게 엄청나게 쓸쓸하고 고독한 느낌이 들었다. 이타미 준이 말하기를 자신은 검은 바다에 떠 있는 조각배라고 했다고 하는데, 먹의 집의 지하를 보면 말 그대로 먹을 들이부어놓은 듯 온통 어둠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나무 사이로 온 바람을 느낄 수 있는 풍 미술관의 느낌도 그랬다.

이방인으로써의 쓸쓸함과 고독이었는지 어떤 다른 이유에선 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얼마나 외롭고 쓸쓸했는지 그럼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몸을 일으키고 몸을 움직였는지 알 수 있었다. 작품에 대한 애정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결혼 한 딸 유이화와의 관계를 잃지 않기 위해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서울에 머물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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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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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 미술관


모든 예술 작품들이 그렇겠지만, 작품에는 작가의 생각이 깃들기 마련이다. 이타미 준은 자연과 사람을 생각했다. 주로 공간에 남아있는, 남을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 땅에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이의 삶과 융합한 집을 짓는 것이
제 꿈이고 철학이다

 




자연과 인간의 온기를 담은 건축



클라이언트들의 인터뷰를 통해 그의 온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아파트 리모델링을 맡긴 첫 클라이언트의 집은 문을 열자 마자 아파트 앞의 나무와 하늘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창을 보게 되어 있다. 고된 하루의 끝에 자연의 아름다움이 돋보일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어 Bar <주주>가 나온다. 주주는 이타미 준이 서울대 도서관이 폐관 될 때 그 곳에서 나온 자재들을 일본으로 가지고 와서, 클라이언트인 사장이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에 맞게 설계하고 건축한 곳이다. 당시 사장의 어려운 형편을 알고 이타미 준은 돈도 제대로 받지 않고 귀한 것들로 공간을 채웠다고 한다. 이후로 40년이 지났지만 바의 모습은 여전히 그대로이다.


이타미 준은 직접 재료를 선별했을 뿐만 아니라 컴퓨터가 나온 뒤에도 손수 도면을 그렸다. 딸 이화 씨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다고 한다. 자연과 인간만의 온기를 믿었다. 직접 흙을 빚어 벽돌을 만들고, 돌을 선별했다. 콘크리트가 세워질 때에도 그는 그렇게 했다. 인간의 체온이 담겨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무와 돌과 바람과 물과 같이 늙어가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모습이 아름답기를 바랐다.


먹의 공간에서 대나무로 집을 지을 때 이타미 준의 딸 유화 씨는 대나무가 갈라지고 색이 변할 텐데 왜 대나무를 쓰세요?라는 질문에 이타미 준은 전혀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라 오히려 기대하는 표정으로 "그걸 의도한 거야. 그게 시간의 맛이지"라고 말했다고 한다. 자연에 대한 그의 겸연한 태도를 느낄 수 있었다.


*


"이타미 준의 바다"

바다가 그리워 보러 간 영화였는데 실제 바다의 비중은 영화의 5프로쯤 되려나 싶었다. 그럼에도 바다라는 제목은 그야말로 이타미 준의 정체성이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하게 태어나 일본에서 가장 공기 좋은 곳으로 유명한 시즈오카 시미즈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곳은 언제나 바람이 불고 돌과 물이 있는 바다가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가 제2의 고향이라고 말했던 제주는 들리는 말이나 분위기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바람이 불고 돌과 물이 있는 바다가 있다. 일본과 한국의 바다를 오고 가며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인생을 살았음에 바다이고 물과 돌과 바람을 사랑하는 이타미 준 그 자체가 바다였다. 비록 그는 어느 곳에도 소속되기 애매한 바다였을망정 누구나 보면 아름다움을 느끼는 바다 같은 존재였다.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다운 것을 남긴다는 그의 말처럼 정말 그랬다. 보는 내내 아름답고 쓸쓸했다. 영화를 보던 날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이었고 영화관에 가는 길 자동차의 차창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고 비는 일직선으로 내리는 것 같은데 어떻게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른 동그라미 모양을 남길까 하는 자연의 사소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우리 모두는 우연에 따라서 또는 운명에 따라서 사라진다. 그러나 다른 자취를 남긴다. 영화를 알게 된 찻집의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칠판에 써져 있던 "아름다운 기억을 위해 더욱더 아름다워지자"라는 말이 문득 생각이 났다. "아름다워지자, 아름다운 기억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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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백호 - 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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