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모든 것은 빛난다 너도, 나도 - 최정화 잡화전 [문화 공간]

글 입력 2019.07.28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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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화 잡화(雜貨)전
- 미세한 창조의 연금술적 실험실 -



모든 것은 빛난다

가만히 주변을 응시하면
모든 것들이 빛을 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신도. 나도. 저기 나른하게 지나가는 달팽이도
당신의 밥그릇마저도
나는 당신들과 함께
그 빛들을 모으고 엮어
더 커다랗고 찬란한 빛을 만들어내려고 합니다


- 최정화



모든 것은 예술이라며, 대중문화와 일상에서 영감을 받는다는 세계적인 디자이너이자 작가인 최정화. 그가 이번에 광교아트스페이스에 개인전인 ‘최정화 잡화(雜貨)전’을 열었다고 해서 다녀왔다. 최정화 잡화전에서는 그의 예전 대표작부터 현재 작품들뿐만 아니라 작업 과정을 포함한 미발표자료, 컬렉션들이 광교스페이스라는 공간에서 ‘잡화’가 되어 새롭고 다채롭게 빛을 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찮기에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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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묵시록, 2019



들어가자마자 가장 먼저 보인 건 수많은 조명들과 함께 공간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찬란하고 화려한 은빛의 전시물 <빛의 묵시록>이었다. 보자마자 아, 하고 저절로 감탄이 나올 만큼 반짝거리고 고귀해보였다. 스탠드가 무질서하게 널려있는 것 같으면서도 조화로웠다. 작품 이름이 빛의 묵시록이라서 그런가. 정말로 천계의 한 장면을 묘사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천장에 거대하게 달린 장식물에서는 불교적 색채가 엿보이는 것이 흥미로웠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빛을 밝히는 조명들에 손때가 묻어있고 낡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빛을 밝히는 조명 모두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사용했다가 작가에게 기증한 거였다고 한다. 신기했다. 자연스럽게 버려질 예정이었던 것들. 그래서 생명의 종말을 맞이할 예정이었던 것들이 이 공간에서는 마치 영원할 것처럼 빛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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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타타, 2019



<빛의 묵시룩> 옆 역시도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가진 작품이 있었다. 친숙해 보이는 냄비들로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형상을 하고 있었다. 사용한 흔적이 다분한 냄비들 역시 버려진 것들을 모은 것이라 한다. 작품명인 ‘타타타’는 ‘있는 그대로’라는 의미를 가진 불교 용어로 사물의 본질을 말한다.


그렇다면 저 작고 하찮아 보이는 사물들의 본질이 영원히 순환하는 뫼비우스의 띠라는 의미인가? 영원한 순환은 영원한 변화를 말하기도 한다. 과거의 사물이었던 냄비들은 더 이상 과거에 종속되어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가 되기도 하며, 미래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낡고 하찮으며 소박한 냄비들은 과거, 현재, 미래를 공존하고 있는 영원한 가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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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섹션, 청향, 2019

 


한 섹션안으로 들어오면, 공간에 배치되어 있는 탑들과 평면을 채운 사진 및 그림들이 보인다. 각기 다른 독특한 모양의 탑들에 가장 먼저 시선이 갔다. 특히, 형광색 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는데 작품명을 보니 <미세먼지 기념비>였다.


미세먼지라니, 좀 뜬금없었다. 그렇게 보니 공간 안에 있는 모든 것이 새삼 뜬금없었다. 한 가운데에서 빤짝이며 돌아가는 미러볼도 그렇고, 오래된 것 같은 석탑 한 가운데는 은색으로 칠해져있었다. 평면을 가득 채운 사진과 그림들은 아주 옛날의 일상과 현재의 소박한 일상을 나타낸 사진과 그림들이었는데, 색이 화려하고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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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것들이 한데에 모였는데, 몇 발자국 물러나 뒤에서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조화롭게 보였다. 또한, 공간은 정적인 분위기인 것처럼 보이면서도 반짝이는 미러볼과 옆에서 움직이는 사물들로 인해 역동적인 느낌이 있었다.


낯설어 보이지만 사실상 공간 내의 모든 것은 우리의 일상 안에 있는 것이었다. 전시는 확실하게 말하고 있었다. 하찮아 보였지만 사실은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것에 대하여. 그것은 조화롭고, 역동적이고, 영원해보였다.




모든 경계를 허물고 공존하고 있는 것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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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와 비너스, 2019
 

달마와 비너스라니. 이건 또 무슨 조합인가. 미와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와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경건한 불교승려인 달마가 밀착되어 한 공간에 있는 것이 당혹스러우면서도 흥미롭다. 두 존재에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둘의 조화를 가로막는다.

이를 두고 최정화 작가는 태연하게 말한다. 모든 신들은 같이 논다고. 원래 달마와 비너스도 같이 놀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앞으로의 제 작업 방향을 보여준다고 한다. 맞았다. 최정화의 무수한 ‘잡화’들은 모든 경계를 허물고, 한 공간에 있어서는 안될 것 같은데, 한 공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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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이무이(無二無異), 2019



이 역시도 버려진 가구다. 버려진 가구는 앞뒤로 형광색과 핑크색의 무언가를 토해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작가는 이 작품을 두고 전통과 현대가 만나면 발생하는 오바이트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저 오래되고 낡은 가구가 전통이고, 톡톡 튀는 색감을 가진 우레탄폼이 현대라는 것이다. 전통과 현대는 만나면 오바이트를 하지만, 그럼에도 공존하고 있고 그럼에도 조화롭고 아름다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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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실기대회, 2019


전시공간에는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체험존도 꽤 있었다. 작품명 <미술실기대회>의 비너스들은 해체되고, 붙여지고, 칠해지고, 덮여져 새롭게 탄생된 비너스였다. 그리고 비너스를 둘러싼 벽에는 수많은 그림들이 붙여져 있었다. 관람객들에 의해 그려진 새로운 비너스였다. 여기서 똑같은 비너스는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같이 공존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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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만다라(COSMOS+MANDALA), 2019



<코스모스+만다라. 이 작품 역시 관객들의 참여로 끊임없이 변화할 수 있었다. 밑에 깔린 형형색색의 플라스틱의 뚜껑들을 마음대로 조합하고 연결할 수 있었다. 여기서 깨달을 수 있었다. 작가의 공간에서 공존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전통, 현대, 미래, 다양한 신들, 가치들. 그리고 ‘나’ 역시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만다라’는 ‘우주의 진리’를 뜻한다. 우주 안에는 ‘나’를 포함한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함께 공존하고 있다. 모든 것은 그 안에서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하찮아 보이는 작은 뚜껑들이 연결되고 조합돼서 하나의 창조로 이어질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존재들도 하나의 씨앗이며 모든 관계 속에서 꽃이 되어 피어날 수 있었다.




우주 아래에 모든 것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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빔,움,빚, 2019



최정화 잡화전에서는 작가가 모은 무수히 많은 잡화를 볼 수 있다. 위의 사진처럼 버려진 전세계의 빚, 버려진 의자, 아이들이 만든 실타래, 병따개, 가방, 골동품, 가구, 가면 등. 원래 같았으면 쓰레기가 됐었을 그 무수한 잡화들은 그의 애정어린 시선아래에서 생동감있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모두 하나의 우주로 귀결됐다.


그 안에는 ‘나’도 공존하고 있었다. 아주 작은 일상조차도, 나를 포함한 나와 함께 존재하는 모든 것은 빛날 수 있다는 그런 의미. 따듯하고 생명력 넘치는 메세지가 전시내내 굉장히 뚜렷하게, 가슴으로 전해졌다. 이질적인 것들이 한데로 모여, 이질성을 초월하여 하나로 귀결되는 그 감동을 느끼고 싶다면 최정화 잡화전을 적극 추천하고 싶다.


 



 

최정화 잡화(雜貨)전
 


전시기간 : 2019.03.29 ~ 2019.08.25


전시장소 : 광교아트스페이스


작품수 : 50


작가 : 최정화


주최 및 후원 : 수원시


관람료 : 무료



[김량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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