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불이 켜지면 몰려드는 불나방 - 레라미 프로젝트 [공연]

살기 좋은 레라미 마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글 입력 2019.07.24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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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광성과 주사성



칙, 불이 붙는다. 미치도록 뜨거운 열기와 빛이 주위를 가득 메우면 조그만 벌레와 나방 덩어리가 웅웅거리며 홀린 듯이 몰려든다. 그렇게 몰려든 수많은 벌레들은 불에 새카맣게 타 죽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싸우기도 하다가 결국 치지직하고 사라져 버린다. 이렇게 벌레들이 불빛을 향해 이동하는 이유는, 빛을 따라 움직이는 성질인 ‘양성 주광성(走光性)’을 지녔기 때문이다. 거의 모든 곤충들과 일부 어류는 이러한 주광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사람들도 벌레와 같다. 커다란 사건이 생기면 그 사건 주위로 웅웅거리며 다가온다. 눈이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것도 아니고 무시무시하게 뜨거운 것도 아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몰려들게 되는 것이다. 뭐 굳이 단어로 만들면 ‘주사성(走事性)’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레라미 프로젝트>는 1998년 10월, 미국 와이오만 주에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무자비하게 살해당한 매튜 쉐퍼드의 이야기다. 작가 모이세스 카우프만과 배우들은 1년 반 동안 레라미의 마을 주민들과 200번이 넘는 인터뷰를 했고, 그 기록을 재구성하여 이 연극을 탄생시켰다. 연극에 등장하는 8명의 배우들은 실제 70여명의 레라미 주민들이 되어 사건이 있기 전, 그리고 사건이 일어난 후에 대한 생생한 인터뷰를 하면서 연극을 이끌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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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는 레라미의 가치가 아니에요



레라미의 주민들은 모두 입모아 말했다. “남의 일에 관심 없어! 게이든 뭐든 나한테 피해 안 주면 나도 신경 안 쓰고 사는 거지.”


차별 같은 게 없다고 했다. 매튜를 살해한 그 두 명 때문에 마을 공동체까지 차별과 혐오로 이미지화가 되었지만 사실 레라미는 참 살기 좋은 마을이라고. 극 아주 초반, 대여섯 명의 주민들은 계속 이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묻지도 않았는데 거듭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다.


아, 레라미는 ‘살기 좋은 마을’의 탈을 쓴, 잔뜩 꾸며진 공간이구나. 사실 혐오와 차별로 가득한 곳이구나. 그리고 극 도중 커밍아웃한 교사가 이런 말을 듣는 순간, 나의 추측이 확신으로 바뀌는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여기서 커밍아웃한 사람한테 말 거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이 ‘살기 좋은 마을’에서 매튜 쉐퍼드가 살해당한 이후로 이 작은 마을에는 엄청난 관심이 쏟아졌다. 뉴스에서는 매일같이 매튜의 이야기와 그의 건강 상태에 대해 보도했고 엄청난 기자와 정치인들은 마을을 찾았다.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니라 이 동네에 만연한 혐오 때문에 일어난 범죄였다고 뉴스에서는 대서특필을 했고, 기자들과 주민들 사이에는 갈등이 일어났다.


사건은 커졌고 뒷말도 많아졌다. 매튜가 먼저 더듬었다던데? 게이들이 원래 그렇잖아, 귀찮게 했겠지. 일주일 전에 차에 치여 죽은 노인이랑 다를 게 뭔데 이 사건만 가지고 난리야? 가해자가 잘못한 건 맞는데, 살해시킬 정도의 일인가? 그거 들었어?


매튜의 사건을 정말 진심으로 슬퍼했던 사람들은 같은 차별을 당했던 사람이었다. 히잡 때문에 항상 이상한 시선과 질문을 받던 이슬람 대학생이나 같은 성 소수자 친구들. 그들은 나에게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외치며 매튜의 사건을 가장 깊숙하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이 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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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모든 불빛들



이는 비단 매튜 쉐퍼드에게 벌어진 사건뿐만이 아니다.


어떠한 사건이 생기면 사람들은 미친 듯이 달려든다. 쏟아지는 관심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긍정적인 변화의 원천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면 이렇게 연극으로 제작되거나 교과서에 실려서 사람들로 하여금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경각심을 심어주기도 하고, 법을 개혁시키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 이 사건 또한 마찬가지다. 이 일이 벌어진 이후 ‘매튜 쉐퍼드 재단’이 설립되었고, 긴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결국 혐오범죄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그렇지만 정치적으로 악용하려는 사람들, 오로지 관심만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사람들도 많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람들의 관심과 동정심을 이용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엄한 데로 쏟아버려 주객이 전도되는 경우도 잦다. 세월호 사건도 그랬고 요즈음 일어나는 성 범죄 관련 사건도 그렇다. 사건의 본질과 본 목적은 어느새 사라져 버릴 뿐. 그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가십거리로 전략해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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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모두 매튜의 고통에 아파했다. 그가 겪었을 끔찍한 밤에 대해 함께 슬퍼해 주었다. 사건이 커질수록 마을의 이미지는 악화되었고 주민들을 바라보는 시선도 싸늘해졌다. 자신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영향이 미치는 순간 그들의 눈빛은 돌변했고 매튜의 아픔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내가 매튜의 지인이 아니었다면, 이 사건이 나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영향이 있었다면 그래도 나는 저들과 달랐을까? 우리는 과연 저 사람들을 비난한 자격이 있을까? 온통 진흙탕처럼 엉켜버린 마을은 참담했지만 현실이었다.

무작정 불빛에 달려들어 타 버린다면 우리는 저 불나방과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아마 이 세상에 남아 있는 것은 불나방 뿐인 듯 하다. 일렁이는 불빛 앞에서 과연 우리는 떳떳하게 사람일 수 있을까.




그리고 작은 이야기,



극단에 대해 짧게 덧붙이자면 연극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전체적인 연출과 구성에도 눈길이 갔다. 배우들은 우리를 공연에 찾아온 관객으로, 때로는 자신들을 인터뷰하는 사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대했다. 고작 옷 한 조각 걸치는 것으로 그들은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에서 대학 교수까지 70여명의 마을 주민들을 자유롭게 넘나들었고 무대 위는 경찰서도 되었다가 드넓은 잔디밭으로 변하기도 했다.


두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자신들이 구상한 세상을 관객들에게 표현하고 완벽하게 설득시켰다는 점에서 <극단 실한>에게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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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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