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적인 폭력] Prologue.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던 상처들

글 입력 2019.07.01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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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던 상처들



친언니가 결혼한 뒤 엄마와 결혼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엄마는 언니의 결혼생활이 행복하기만을 바라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걱정을 내게 자주 털어놓았다. 그때 나의 역할은 묵묵히 엄마의 말을 들어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묵묵히 들어줄 수 없을 때가 있다.

 

“나중에 너도 결혼하면….”

“나중에 너도 애 키우면….”

 

이라고 문장을 시작할 때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고 말하고 엄마는 ‘그런 애가 제일 빨리 결혼한다.’며 웃어넘겼다. 엄마와 나의 세대에 어떤 간극이 존재하는지 알기에 항상 나는 포기하고 대화 주제를 바꾸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로부터 차마 넘길 수 없는 말을 들었다.

 

“열심히 일해서 딸들 무사히 결혼시켜야지. 너희들 결혼자금 마련하려고 일하는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속에서 분노와 슬픔이 뒤섞여 끓어올라 폭발했다. 기억이 시작된 순간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 나는 엄마가 일하지 않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사정상 잠시 일을 쉬게 되면 엄마는 일하지 않는 자신을 어색해하면서 그 시간을 불안해했었다.


홀로 다섯 명의 딸을 키우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엄마가 일을 통해서 번 돈은 나에게 돈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내가 흥분해서 왜 엄마가 열심히 일한 돈을 결혼자금으로 다 쓸 생각을 하느냐, 나는 결혼 안 한다고 하지 않았느냐, 라고 말하자 엄마는 내가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듯이 답했다.

 

“여자가 결혼 안 하고 혼자 살면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결혼 안 하는 거 부모한테 불효야.”

“왜 그게 불효야? 결혼 안 해도 나 혼자 열심히 일해서 효도할 수 있어.”

“결혼 안 하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내가 미래에 결혼할 것이라는 엄마의 생각은 내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확고했다. 내가 비혼을 다짐한 수많은 이유 중 하나에 당신이 겪은 시련도 있을 것이라곤 생각지도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엄마가 어떻게 우리를 키워왔는지 알기에 아직 호강은 시켜주지 못했지만, 폐라도 끼치지 않고 싶었다.


비록 지금은 학생 신분이지만 나중에라도 그간의 고생을 보상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노력해왔었다. 그러나 나의 노력은 결혼 계획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소용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 말에 상처받아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지만 엄마에겐 수많은 대화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기에 그날의 상처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 된다.

 

나는 감히 그 일에 대해 사과를 요구할 수 없다. 엄마는 세상에서 나를 제일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 말도 나를 생각해서 한 말이라는 것을 안다. 결정적으로 사과를 바랄 수 없는 이유는 엄마가 내게 그 말을 내뱉기까지 얼마나 많은 한국사회의 편견이 엄마의 눈과 귀를 막았을지도 알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 같은 반 학생으로부터 ‘남편도, 자식도 없는 여자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을까.’라는 말을 들은 기억을 떠올리면 결혼하지 않은 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폭력적인 시선이 엄마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책이나 영화 혹은 뉴스 속 롤러코스터처럼 역경과 시련을 동반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게 그저 다른 세상 이야기일 뿐이라고,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나는 꽤 평탄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사회 문제에 관해 말할 때 나도 모르게 내 경험을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 그 일을 겪었던 당시엔 일상의 한 조각에 불과한 것들이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 경험이 지닌 상처를 나 홀로 간직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내게 그런 경험을 안겨 준 이들은 특별히 나쁘거나 나를 싫어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의 기준에 의하면 선한 쪽에 가까웠고 대부분 나를 싫어하기는커녕 진심으로 생각해주던 사람들이었다. 엄마도 그중 한 명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이 내 기준으로 ‘폭력’이라고 부를 수 있는 행위를 저질렀던 건 그 행위가 폭력인지 그들도, 당하는 나조차도 몰랐기 때문이다.

 

당연히 모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회가 그것을 폭력이라고 규정짓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오히려 그것을 폭력이라고 하는 사람을 향해 너무 예민하다고 하고, 선비질 하지 말라며 ‘프로 불편러’라는 호칭을 붙인다.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안경을 쓴 상태로 살아왔다.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도 안경을 착용하고 있다. 세상을 항상 안경을 통해서만 바라보는 나는 워낙 둔감한 성격인지라 안경에 얼룩이 묻어 시야가 흐려져도 바로 알아채지 못한다. 그 얼룩이라는 게 한 번에 크게 묻는 게 아니라 조금씩 쌓이는 먼지이기 때문에 한참 지난 뒤 안경의 모든 부분에 묻어 세상이 완전히 뿌옇게 보여야 안경을 닦아야 할 때가 되었음을 깨닫는다.

 

어쩌면 내가 겪어온 폭력들도 눈치채지 못하게 조금씩, 서서히 찾아와서 내 시야를 가려버리는 안경의 얼룩과 같을지도 모른다. 먼지와 얼룩으로 쌓인 안경을 닦고 다시 마주한 세상은 그렇게 선명할 수가 없다. 이제 나는 내 안경에 묻은 폭력의 얼룩들을 닦아내고자 한다. 폭력을 준 당사자도 모르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던 상처를 꺼내서 세상을 보다 선명하게 바라보고자 한다.

 

내가 앞으로 써 내려 갈 글은 모두 나의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나는 이 사적인 글이 나 외에도 다른 누군가의 안경을 닦을 수 있기를 바란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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