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New Philosopher 6호, '시간'에 대한 철학적 성찰 [도서]

글 입력 2019.05.15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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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필로소퍼 6호, '당신의 시간은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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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에서 '여성동아' 등의 잡지를 술술 넘기며 읽은 것 이외에, 잡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해서 읽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사실 '철학'을 표방하는 잡지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바빠서 제대로 읽을 수는 있을까'와 같은 우려를 담은 채 신청했던 문화 초대였다. 그런데 읽으면서, 그 생각을 했던 나 자신이 오히려 조금 부끄러웠다. 시간에 대한 일상적 성찰을 담고 있는 이번 '뉴필로소퍼 6호'는, '바빠서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많은 글들을 수록하고 있다.


가장 놀랐던 것은 이 잡지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느껴질 정도로, 색감과 디자인, 안에 수록된 그림들이 굉장히 빼어났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잡지를 구독할 때 기대하는 바 역시 달라진 것이다. 소위 말하는 '마니아층'에 소구하는 것이 '대중 전체'에 소구하는 것보다 더 현실적인 목적이 된 만큼, '뉴 필로소퍼'와 같은 잡지는 인문학을 즐기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지적,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 잡지는, 그 욕구를 모조리 충족해주고도 한참 더 큰 만족감을 선사해 주었다. 여태까지 문화 초대에 네다섯번 정도 참여했었지만, 그 중 가장 인상 깊었으며 내 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년 정기 구독을 신청할까도 잠시 고민해 보았지만, 다음에 '뉴 필로소퍼' 문화 초대 기회가 있으면 또 응하기 위해 미뤄두기로 했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자각할 시간도 없을 만큼 바빠져 버린 '현대인'들에게, 잠깐 뒤로 물러서서 나의 일상을 조망해볼 필요성을 느끼는 모든 사람들에게 뉴 필로소퍼 6호, '당신의 시간은 안녕하십니까?'를 추천하고 싶다.



인문학의 본질에 충실한 잡지, 사소함에 의미를 부여하다


인문학이란 어떤 학문일까? 철학, 미학, 윤리학 등을 일컫는 말이라는 건 누구나 알지만, 그것을 통틀어 '인문학'이 무엇이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을 때 바로 대답하기는 참 어렵다. 그럼에도 주관적 대답을 해보자면, 나는 인문학이 '다른 사람들은 스쳐 지나가는 사소함과 가벼움을 깊이 들여다봄으로써 의미를 찾아내는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박완서 선생님의 수필 중에서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라는 제목의 작품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마라톤 경기를 보며, '참 힘들겠다', '1등 참 대단하네', '이번에 누구는 기록이 얼마라더라'와 같은 표상적 생각을 할 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마지막에 꼴찌로 숨을 헐떡이며 들어오는 사람에게 갈채를 보내는 선생님의 작품은 분명 '인문학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뉴 필로소퍼'는 인문학의 본질에 충실한 잡지다. 우리가 흘려보내면서도, 매일 죽음에 조금씩 가까워지면서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 '시간'이라는 사소하지만 막중한 단어를 파헤치며 '어떤 삶이 좋은 삶인가'에 대해서 다시금 고민하게 만든다. 내가 잡지 전체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글은 '시간이 없다고 말하기 전에'라는 철학과 교수의 글이었는데, 그는 아기를 키우다가 읽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편이 육아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바꿔주었다고 얘기한다. "자식을 기르는 일에서 중요한 것은 목적지가 아니라 과정이다"라는 상투적 표현의 진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소설 줄거리에 집중하기보다, 구절과 문장 하나하나의 표현에 집중하면서 온전히 책을 음미할 수 있었듯이 - 자식을 키울 때도 그 자식이 어떤 모습으로 자라날 지에 집착하기보다 그냥 그와 함께하는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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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은 '바쁘다'고 말하는 것이 미덕인 양 행동한다. 나 역시 그랬다. 대학교 때 나와 친구들은 모두 안부 인사처럼 요즘 바쁘지, 힘들지를 되뇌고는 했다. 예전에 김영하 작가의 팟캐스트 중 버트란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 편을 듣는데, 김영하 작가는 누군가로부터 '요즘 바쁘시죠'라는 말을 들으면 '아니요, 사실 바쁘진 않습니다'라고 답한다고 해서 지하철에서 풉, 웃음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예전 그리스 시대에는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사는 건 노예들의 몫이고 시민들은 전부 정치 활동에 참여하거나 향락을 즐기며 여유의 가치를 숭상했다고 한다. 우리가 이토록 '정신 없이 바쁜 삶'에 익숙해져 버린 것은 근대 자본주의 아래에서 근면과 절제의 가치가 미덕이 되면서부터인 걸까?

잡지의 글, "내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죠?"에 나오는 바에 따르면, 고대 로마 시대의 철학자 세네카는 "인생이 짧다는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람들이 너무나 쉽게 그것을 낭비하는 데 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는 늘 시간이 없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사실 스마트폰, SNS, TV 프로그램 등 나를 수동적으로 만드는 많은 요소들에 이미 많은 시간을 써버린 뒤 남은 잔여 시간으로만 내 삶을 영위하려 하면 시간이 없을 수 밖에 없다. (나한테 하는 말이다.) 그러니 시간이 유한함을, 내 삶을 '나의 주체성'으로 채워넣기만도 부족함을 자각해야 '시간이 없다'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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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 속 하나의 글을 더 추천하려 한다. 음악평론가 나성인 씨의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활동, 예술"이라는 글이다. 나성인 씨의 성찰, '우리 사회는 서양 문화를 빨리 쫓아가면서 살아왔기에, 시간을 따라잡으며 살았지 시간에 대해 성찰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일에는 인색했다'라는 지적은 참 뼈아프다.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하다 보면, 우리 엄마아빠 세대가 얼마나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는지에 대해서 놀라고는 한다.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던 주요 원인은 정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도 아니고, 새마을 운동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정책들이 긍정적 영향을 끼쳤을 수 있겠지만, 국민들의 근면함과 성실함, 결핍으로부터 나온 오기가 없었다면 한강의 기적은 없었다. 국민이 만들어낸 경제성장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정도 물적 여유를 갖춘 후에도 여전히 '따라잡기'에 여념이 없다. 사그라들지 않는 입시에 대한 열기와, '금수저, 흙수저' 담론으로 대표되는 계층화에 대한 집착이 그 사실을 씁쓸하게 증명하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야말로 '일상에 대한 철학'이다. 지금 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내가 경험하는 주관적 시간을 통제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이 있는지를 돌이켜봐야 한다. 나성인 씨는 클래식 음악 중에서도 슈베르트의 음악을 추천하고 있다. "그의 음악에는 외향적인 움직임보다는 내면으로의 몰입이 더 강할 때 나타나는 서정적 성격이 잘 드러나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르고 빨리 지나가는' 상태를 좋아하는 것 같다. 액션 영화를 볼 때, 유튜브를 돌아다니며 아이돌 영상을 찾아볼 때, 클럽에서 춤을 추며 알콜을 들이킬 때 아마 다들 그런 생각을 할 것이다. 물론 그런 일들이 나쁘다는 건 전혀 아니다. 그런 일들로만 이루어진 삶을 살 때, 우리가 '느림'이 갖는 가치를 망각하게 되는 일을 우려하는 것이다. 예술은 시간이 느리게 가도록 만들어준다. 째깍째깍 초침이 움직이는 느낌을 심장 안에서 느끼게 해주고, 지금 내가 살아 있음을, 숨쉬고 있음을 잠시나마 자각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 경험은 다른 무엇보다도 특별하다. 그래서, 나에게는 예술이 필요하다.


[이창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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