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쨍하도록 선명하고 따뜻한 잔상, 리소그라프 [시각예술]

아날로그와 키치함을 동시에 지닌 출판계의 뉴웨이브,리소그라프의 매력
글 입력 2019.04.05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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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스마트 디바이스의 급증과 전자책의 등장으로 출판 사업은 끝을 맞이했다고 여겨진 때가 있었다. 마치 종이책의 몰락이 도래한 듯 보였고, 출판업을 하는 사람들마저 출판사업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봤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였다.




독립출판물, 종이 책의 재조명



개인과 단체가 소규모로 독립 출판물을 제작하는 시도를 하면서, 책의 형식 자체를 깨는 과감한 작업을 비롯해 평소에 많이 다루지 않았던 개인의 관심사를 각자의 감성으로 해석한 작업을 종이 출판물에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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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독립출판물은 워낙 종류가 다양하고 특유의 아날로그 감성을 가졌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소장 욕구가 마구 들게 한다. 자연스럽게 독립출판물에 관한 관심이 늘었고, 출판 업계 전반에서도 책의 미적 가치를 인식해 아름다운 북디자인을 가진 책들을 판매하며 책 시장에 뉴웨이브를 일으키고 있다.




리소그라프, 아날로그와 키치함의 미학



그 중에서도 리소그라프 인쇄는 디지털이 감히 흉내 낼 수 없는 아날로그 감성과 키치함으로 동시대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해 많은 지지를 받으며, 읽는 책에서 보는 책으로 책의 성격을 확장하는 데에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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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artist 4 color Risoprint



그래서 쨍하도록 생동감 넘치는 색감과 어딘가 모르게 따뜻한 감성을 자극하는 재질이 맞물려, 자꾸만 시선이 가는 리소그라프의 매력에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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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tto (Risoprint Group)




겹겹이 쌓이는, 리소그라프 인쇄



리소그라프(Risograph)는 사실 작품의 영역 자체를 의미하기보다는 표현방법의 하나로써, 종이 인쇄 기법을 의미한다. (정확히는 일본에서 만들어져 지금까지 사용되는 인쇄기를 부르는 말이지만 리소그라프로 인쇄된 작업물들까지 통칭해서 리소그라프로 부르고 있다) 특히 일본과 유럽에서는 보편화 된 실크스크린 공정과 비슷한 디지털 공판인쇄 기법이다. 미세한 구멍으로 잉크를 투과해 이미지를 전송하는 스텐실 기법을 디지털로 변환한 기술로, 쉽게 말해 한 판의 인쇄 당 한 개의 색을 가진 레이어만 인쇄하는 방식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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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러 가지 색을 혼합해 인쇄하고 싶다면 해당 작업물에 들어가는 색의 개수대로 인쇄를 돌려야 한다. 1도 인쇄, 2도 인쇄, 3도 인쇄 등 세분화 된 작업 방식에 대한 명칭이 존재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다. 1도 인쇄는 단색으로, 2도 인쇄는 두 가지 색을 이용하여, 3도 인쇄는 세 가지 색을 이용하여 작업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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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pe Press


이렇다 보니 작업물을 맡기는 제작자로서도 그렇고 제작을 하는 리소그라프 공방의 입장에서도 리소그라프는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레이어별로 겹쳐지는 효과를 미리 생각해서 제작해야 하고, 제작할 때도 한 개의 레이어 인쇄를 끝내고 잉크가 다 마를 때까지 최소 이틀의 시간을 보내야 다음 레이어 인쇄작업으로 넘어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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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Mariammedem




결과를 완전히 예측할 수없어서 신선한,



그래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의도와 전혀 다른 작업물이 나오기도 한다. 아예 실패해버릴 가능성도 크다. 생각했던 색이 실제로 너무 따로 놀아 예상과는 다른 레이어링이 된다거나, 밀도감을 너무 약하게 주거나 혹은 강하게 줘 버려서 머릿속에서 그렸던 이미지와 다른 경우가 발생한다.


그러면 제작자로서는 비싼 쓰레기를 만들었다고 후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괜찮다. 이런 시도들은 의외의 효과를 만들어내기도 해서, 마치 필름카메라를 사용하는 것처럼 결과물에 대한 적당한 긴장과 기대를 유발한다. 온전히 확신할 수 없는 결과물과 간혹 종이가 엇나가 인쇄되는 등의 변수는 의외의 신선함을 자아내며 실험적이거나, 꽤나 만족스러운 작업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예측 불가함은 리소그라프의 단점이며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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옅은 밀도의 리소그라프 인쇄물




살아있는 질감



리소그라프를 떠올리면 감성을 자극하며 맥락에서 읽히게끔 하는, 살아있는 질감을 빼놓을 수 없다. 리소그라프의 질감은 잉크의 양에 따라 밀도의 정도를 표현할 수 있다. 잉크를 적게 사용하면 공판에서 잉크가 적게 출력이 되기 때문에 옅은 밀도와 대비되어 공판의 표면이 더욱 짙게 드러나 아득한 느낌을 자아낸다. 잉크를 많이 사용하면 진하고 선명하게 색이 표현되지만 그만큼 공판의 표면이 채워져 밀도있는 화면처리와 재질감을 통해 거침없는 무드를자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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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하고 뚜렷한 리소그라프 인쇄물



특히 18년도 이후로 그래픽 디자인 전반에 재질감을 주는 효과가 크게 유행해 지금까지도 인기가 시들 줄 모르는데, 그런 흐름에 힘입어 탄탄한 리소그라피는 매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아무래도 그래픽디자인 전반에 미니멀한 깔끔함이 지배적이었던 스타일에서(ex. Flat design)에서 나아가 조금씩 제작자 개인의 감성과 표현의 욕구에 따른 맥시멀리즘 그래픽으로 디자인의 방향성이 바뀌어 가고 있기 때문에 리소그라프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디지털로 리소그라프의 질감을 표현하는 작업물이 많이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다.


사실 디지털 작업물에서 단색으로 작품을 제작하거나, 여러 가지 팝한 색깔을 레이어링해 질감을 그려 입히면 리소그라프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작업도 가능하다. 그런데도, 리소그라프를 실제로 제작했을 때 만들어지는 효과를 얻기엔 부족하다.


왜냐하면, 리소그라프의 그 느낌이란 실제의 물리적 공간에서 종이와 공판으로 뿌려지는 쨍한 잉크가 거칠고도 균일한 종이의 표면에 맞닿아야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 약간의 변수가 더해지면 진한 아날로그의 맛이 나는 종이 책이 탄생한다. 아무리 디지털이 꼼수를 써서 리소그라프를 흉내 내도 리소그라프가 만들어내는 종이 책의 맛은 절대 표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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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x



이렇게 살아있는 순간의 감성을 전하는 리소그라프이기에, 기존 여타의 방식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매력이 제작자만의 개성과 만나 전에 없던 새로운 비주얼을 만들어낸다.




날 것의 아름다운 색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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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색만큼 쨍한 색감은 리소그라프를 대변하는 양대산맥인 색감과 질감 중 하나다. 리소그라프가 만들어내는 색감은 동시대의 감성과도 잘 어울려 자꾸만 보고 싶게 만든다.


그렇다면 리소그라피가 이렇게 날 것의 아름다운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리소그라프가 콩기름을 원료로 한 친환경 잉크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잉크는 석유를 원료로 하는데 리소그라프는 콩기름을 사용하기 때문에, 리소그라프에 사용되는 잉크는 모두 선명하고도 밝은 별색으로 만들어진다. 그래서 내가 알고 있는 그 노랑을 노랑답게 표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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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소그라프 컬러 차트



리소그라프의 쨍한 색감은 제작자의 실험 욕구를 마구 자극해서, 더욱 아름다운 색채 조합을 시도하도록 한다. 또, 보는 이들에게는 눈을 즐겁게 하는 더욱 멋진 작업물들을 기대하도록 하니 모두를 만족스럽게 해주며 그 매력을 발산하는 중이다.


끝으로 리소그라프 실험을 꾸준히 하며 뚜렷한 색이 담긴 리소 인쇄를 하는 국내외 업체를 소개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아직 리소그라프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인스타그램의 해시태그를 통해서라도 꼭 리소그라프를 접해보길 바란다. 그래서 리소그라프가 썩 마음에 들었다면, 꼭 한번은 실제로 감상해보길 권한다. 종이의 맛을 제대로 아는 리소그라프의 매력에 사그라들었던 감성도 살아날지 모른다.



*



1.

국내 리소그라프 출판그룹

코우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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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너스 작업실


국내 리소그라프를 주도하는 이 곳은 리소그라프 작업과 동시에 인쇄 의뢰를 동시에 받고 종종 전시와 워크샵도 열고 있어 국내 리소그라프의 영역을 적극적으로 확장해가는 중이다. 최근에도 <잉크 빌리지> 전시를 통해 불규칙적해서 매력적인 리소그라프의 매력을 대중들에게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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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우너스 작업


2.
국외 리소그라프 출판그룹
Studio Fid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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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dio_Fidele


파리를 기반으로 빈센트 롱기가 운영하는 리소 인쇄 출판 그룹으로, 인쇄본, 포스터를 비롯해 인쇄분야 전반에서 독자적인 노하우를 쌓아 다채로운 리소인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풍경화를 리소 프린트하여 특유의 아득한 분위기와 색채로, 가보지도 않은 가상의 공간을 가본듯한 데자뷰를 느끼게 하는 최근 인쇄물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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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galibrueder 작업, Studio_fidele 인쇄




[고유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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