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 사회의 유행 코드 '단순 감각 자극' [문화 전반]

글 입력 2018.02.21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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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점에서 물풀이 품절되었다. 화장품 가게에서는 남성용 쉐이빙 폼을 찾는 사람들이 증가했다. 물풀과 쉐이빙 폼. 전혀 관련되지 않은 것 같은 두 제품의 매출이 증가한 이유는 무엇일까? 두 제품의 공통점은 올해 유행한 슬라임(끈적끈적한 점액질 형태의 장난감)의 재료라는 것이다. 한 유투버가 있다. 유투버가 올리는 영상은 유리컵에 액체를 천천히 따르는 영상, 거친 천을 긁어서 소리는 내는 영상과 같은 단순 행위의 반복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 유투버의 영상은 ASMR(자율감각 쾌락반응의 약자)이라는 이름으로 4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확보 중이다. 이처럼 촉각이나 청각 등 감각을 단순하게 자극하는 행위가 올해 유행하고 있다. 단순감각 자극이 유행하는 이유를 분석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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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임은 해외에서 먼저 유행하기 시작했다. 해외 인기 유투버들이 자신의 계정에 슬라임을 가지고 노는 장면을 업로드 했던 것이다. 슬라임은 끈적끈적하고 투명한 점액질 형태의 물질이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슬라임의 유행은 가수 아이유의 SNS에 등장하면서 시작되었다. 504만 명의 팔로워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아이유의 파급력은 컸다. 영상을 접한 많은 사람들이 슬라임에 대해 궁금증을 가졌고 말캉하고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다양한 비즈를 추가해 만지는 재미도 얻을 수 있는 슬라임은 급속도로 인기를 얻었다. 슬라임을 공동구매로 구입하거나 만들어서 파는 사람들이 증가했고, 아무 말 없이 슬라임을 만지거나 제작하는 영상을 담은 SNS계정의 팔로워 수가 늘어났다. 보는 것에서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은 직접 만들기도 했다. 문구용품에 불과한 물풀이 동이 나고, 심지어 딱풀 회사 중 한 곳인 아모스는 슬라임 제작자들을 위해 대용량 물풀을 생산해 판매 중이다. 최근까지도 유명 슬라임 제작 인스타그래머들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고, 그들의 주문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아 슬라임 유행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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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행한 또 다른 감각 자극으론 ASMR이 있다. ASMR은 자율감각 쾌락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약자로 일종의 청각 자극을 의미한다. 반복적인 소리나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 등 다양한 자극에 의해 느껴지는 기분 좋은 느낌들을 일컫는다. 반복적으로 유리병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려주거나 머랭 쿠키를 씹을 때 나는 소리 등이 이에 속한다. ASMR은 몇 년 전 유튜브에서 등장하며 유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과거 ASMR은 특정 이용자들만 이용하던 콘텐츠였다. 꽤 많은 수의 이용자들이 ASMR을 이용했지만 올해 피키픽쳐스가 ASMR을 이용한 콘텐츠를 선보이기 전까진 널리 알려지진 못했었다. 유투브의 채널 중 하나인 피키픽쳐스는 38만명에 육박한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연예인, 가수와의 콜라보를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는 채널인데, 올해 피키픽쳐스에서 ASMR을 활용한 콘텐츠를 시작했다. 연예인들이 선보이는 ASMR은 많은 대중들의 관심을 끌었고, 이 관심은 ASMR로 향했다. 실제로 올해 들어 구독자 수가 급상승한 ASMR 유투버들이 늘어난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슬라임과 ASMR의 올해 유행 원인은 파급력이 큰 연예인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둘의 유행에는 복잡한 현대 사회가 자리잡고 있다. 우리 사회는 현재 높은 피로도에 도달해있다. 특히 2017년은 다른 어떤 해 보다 피로한 사회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16년 연말부터 탄핵을 외치는 시위가 계속되었고, 탄핵을 통해 급하게 5월에 대선이 진행되었다. 또한 올해 초부터 북한의 계속되는 핵 도발과 그로 인한 전쟁 위기가 대두되면서 사회 구성원의 전반적인 불안감도 높은 편이다. 세계적 경제 흐름 속에서 경제 악화 역시 지속될 것이다. 피로한 것은 사회 뿐만이 아니다. 미디어 역시 자극적인 정보들을 제공하며 눈을 피로하게 한다. 기술의 발달로 가상현실, 3D, 4D등 많은 것을 미디어 환경에서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화면 속 화려한 효과는 생생한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때론 눈과 정신을 피로하고 지치게 한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은 마음의 안정을 얻고 싶어 한다. 슬라임과 ASMR의 공통점은 한 가지 행위에만 집중하며 불안감을 떨칠 수 있다는 점이다. 슬라임을 주물거리거나 ASMR의 탭핑(특정 제품을 두드리는 소리)을 들으며 사람들은 안정을 찾는다. 실제로 슬라임을 구매하는 사람들 중에는 슬라임을 조물거리며 잡생각을 떨칠 수 있어 좋다는 사람들이 대다수였고, ASMR영상 댓글에는 영상을 청취하면 금방 잠들 수 있어 좋다는 이용자들이 많았다. 또 다른 공통점은 둘 다 단순한 행위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슬라임을 주물거리는 영상을 누가 보나 싶지만 한 프레임에 슬라임을 만지는 장면만을 담은 채널이나 SNS계정들은 많은 구독자를 확보 중이다. 또한 휘핑 크림을 휘젓는 영상만을 담은 ASMR이 인기를 얻는 것을 본다면 현대 사회의 사람들이 복잡한 프레임에 지쳐 단순한 것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슬라임과 ASMR. 이 두 유행의 시작은 유명 연예인들의 파급력이었지만 유행의 내면은 피로에 지친 한국사회의 씁쓸한 측면을 보여준다. 우리사회의 피로가 지속되고, 사람들이 계속해서 마음의 안정을 위한 비상구를 찾는다면 슬리임과 ASMR의 유행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여겨진다.


[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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