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지붕을 디딘 욕망 : 연극 <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 [연극]

글 입력 2017.11.1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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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을 디딘 욕망


인간이 ‘집에 있는 것과 같이 느끼는’ 원환적인 세계는 조각났다. 근대인은 하늘의 별빛이 아닌, 자신의 내면에서 길을 찾아 떠나야 하는 지난한 존재이다. 거기에,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헬레니즘의 명확하고 합리적인 로고스(logos)적 세계에 대한 인류의 믿음은 산산이 무너진다. 인류가 목격했던 전쟁의 온상은 이성과 합리와 질서의 세계가 아닌, 파토스와 아노미의 세계였다. 파편화된 개인들은 세계와 조응할 수 없을뿐더러, 하늘은 별빛 대신 먹구름만 잔뜩 끼어, 지상의 길조차 흐려졌다. 까뮈의 표현대로라면, 인간의 삶이란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어 올리고, 산등을 따라 떨어진 바위를 다시 밀어 올리는, 끊임없는 고역의 연속인 것이다. 까뮈는 합리를 추구하는 인간과 비합리로 가득한 세계, 존재를 찾는 인간과 존재 이유가 없는 세계의 갈등으로부터 ‘부조리’가 생겨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전후의 인간은 운명론적으로 소여된 부조리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선택지는 있다. 종교에 귀의하거나, 자살하거나, 저항하거나. 이때, 까뮈는 저항하는 인간만이 이 무질서한 세계 속에서 실존적인 개인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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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문삼화 연출, 이하 <고양이>라 표기)는 가장 높은 곳, 가장 편안해야 할 부부의 침실을 무대로 삼지만, 방에는 거룩함과 편안함이라고는 없다. 방은 지붕 그 자체다. 분명 침실이지만, 천장이 없어, 관객은 어렵지 않게 이곳이 ‘뜨거운 양철 지붕’임을 눈치 챌 수 있다. 창밖 하늘은 어딘가 환상적인 분위기를 주조하지만, 불꽃놀이와 천둥번개의 대비를 통해, 환상적인 불꽃놀이와 시끄러운 천둥번개가 다를 것이 없고, 빅대디의 생일파티와 죽음의 폭로가 함께 이루어지는, 세계의 이중성과 허위를 구현해낸다. 기울어진 마름모꼴의 무대 바닥은 정합적인 것을 약간 비튼 듯한 느낌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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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침실은 마가렛으로 대표되는 고양이가 펄쩍펄쩍 뛰는 곳으로, 마가렛이 브릭과의 관계를 통해 생존하고자 하는 공간이자, ‘바람직하지 않은’,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고 인식되는 동성애가 중첩되는 공간이다. 마가렛은 “젊거나, 돈이 있거나”해야 생존할 수 있는 굴절된 세계에서, 빅대디의 재산을 얻기 위해 펄쩍거리며 뛰어다닌다. 자신에게 사랑을 주지 않는 남편 브릭에게 애걸하고, 메이와 구퍼의 모략 속에서도 재산 상속을 받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동시에 브릭에게 이 침실은, 잭 스트로와 피터 오첼로의 ‘더러운’(브릭의 표현에 의하면) 동성애가 방의 저변에 깔린 공간이다. 브릭은 이 공간에서 발 한쪽에 깁스를 한 채, 목발에 의지한다. 동성애에 대한 세계의 핍박과 그 공동체 인식에 기초해서 스키퍼의 죽음에 기여했던 브릭은, 그렇기에 이 지붕 위에서 삶에 대한 의지를 잃은 채 술에만 의존한다. 폴짝폴짝, 생존을 위해 지붕 위를 뛰어다니는 고양이 마가렛과 지붕 위에서 온전치 않은 다리로, 생에의 의지를 잃은 채, ‘클릭’(왜곡된 쾌락)만을 기다리는 브릭. 살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살고 싶지 않은 인간의 도피가 지붕을 딛고 있다.

 
 
조각나는 언어들


지붕을 둘러싼 벽은 없다. 투명한 창문과 투명한 벽은 언제든 부부의 침실을 엿보거나 엿들을 수 있게 한다. 방 안에서 은밀한 이야기가 오갈 때조차 방 밖 발코니에선 다른 인물들이 서성이고 있다. 이 공간 속에는 가족 구성원 사이의 따뜻함이나 사랑 대신, 욕망과 허위가 가득하다. 욕망이 부딪치며, 진실은 숨기고 허위로 감추니, 가족들은 엿보고 엿듣는 왜곡된 방식으로 진실을 알아내고자 한다. 그리고 서로에겐 한없이 위선적인 말을 건넨다.

<고양이>의 갈등은 바로 이 언어의 허위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브릭과 빅대디는 허위에 역겨움을 느끼는데, 그래서 극 중 분명한 진실이 오가는 씬은 2막의 빅대디와 브릭의 대화이다. 브릭은 마가렛을 비롯한 가족들의 허위가 역겹고, 스키퍼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자기 자신의 허위가 역겹다. 이 지붕은 가족들의 허위로 가득 차 있을뿐더러, 방의 저변에 깔린 동성애가 그의 허위를 끊임없이 흔드는 곳이다. 그래서 이 지붕에서 브릭은 술만 마신다. 브릭은 이 허위가 인간이 살아가야 하는 틀 그 자체이며, 이 허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술과 죽음뿐이라 밝힌다. 그가 술을 마시며 ‘클릭’만을 기다리는 건, 다층적인 허위로 둘러싸인 이 지붕 위에서 일시적으로 도피하려는 것이다. 브릭과의 진실된 대화를 추구하던 빅대디 역시, 허위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다. 통증이 있음에도 애써 무시했던 자신의 허위와 그를 속인 가족의 허위에 그는 욕설을 내뱉으며 분노한다. 빅대디의 생일날, 생일파티에 모인 가족들은 그에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시라고” 말하지만, 실은 “살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걸” 모두가 암암리에 알고 있다. 이 허위를 알게 된 빅대디는 “개 같은 거짓말쟁이 연놈들”이라 소리치며 분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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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허위를 표현한 <고양이>는 극 중 대화를 소음과 같이 처리하며, 언어와 대사의 권위를 추락시킨다. 각기 다른 욕망을 지닌 인물들은 한 사람을 향해 서로 다른 대사를 동시에 발화하며, 씬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전축 음악과 시계 종소리가 인물 간의 대화를 방해하기도 하고, 대화의 중간중간엔 전화벨 소리와 그에 응답하는 소리들이 섞이며, 진실된 대화를 나눌 수 없는 환경을 만든다. 세계에서 욕망을 추구하는 인물들의 허위는 기본적으로 언어의 허위로 구체화되며, 이는 언어가 명징한 진실만을 전달하지 않는다는, 언어에 대한 불신에 그 기반을 둔다. 이 조각나는 언어들은 이성, 질서, 합리에 대한 불신 그 자체이다.

 
 
지붕 위에 머물다


<고양이>의 3막에 이르러, 모든 허위는 가면을 벗는다. 빅마마에게 모든 진실을 알린 이후, 구퍼와 메이는 재산 상속을 위한 서류를 들이밀고, 이를 불안한 시선으로 응시하던 마가렛은 서류를 낚아채, 찢어발긴다. 2막에서 불꽃놀이가 허위의 가면을 은유했다면, 3막에서의 천둥번개는 이 허위의 가면이 벗겨진 추악한 맨얼굴을 은유한다. 천둥번개가 치는 가운데 침대 위에서 서류를 쉴 새 없이 찢는 마가렛과 이를 말리기 위해 몸싸움을 벌이는 구퍼와 메이. 이에 브릭은 그들을 지켜보며 큰소리로 외친다. “가자! 더 멀리! 더 높이!” 이 극적인 연출은 엘리야 카잔이 무대화한 것을 반영하여, 보다 연극적으로 천박한 욕망을 직시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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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 이르러, 마가렛은 임신을 했다고 빅대디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빅대디는 브릭 부부에게 상속하겠다는 뜻을 밝힌다. 모든 것을 관조하던 브릭은 마가렛을 비난하는 구퍼와 메이에게서 마가렛을 변호한다. 원작에선 그저 함구하는 소극적인 태도를 견지했던 것에 비해, 구퍼와 메이에게 적극적으로 따지는 모습은 브릭의 변화를 더욱 극적으로 포착한다. 이때, 분명 빅대디와 브릭은 마가렛이 임신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2막에 이르러, 자신 스스로 숨겨왔던(그리고 남들 또한 숨겼던) 진실을 마주하게 된 빅대디와 브릭은 이전과는 다르게 생존의 문제를 대한다. 빅대디는 모두가 살아있다고 하지만, 사실은 죽어가고 있음을 브릭을 통해 알게 되고, 모두가 죽어있다고 말하는 브릭은 빅대디를 통해, 자신이 살아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두 사람이 긍정하기에 이른,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고자 하는 마가렛의 불굴성은 마치 바위를 옮겨야 한다면, 묵묵히 바위를 옮기고, 조금씩 바위를 깎아내며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모습과 같다. 빅대디의 생일파티라는 하루의 지난한 여정에서,그리고 세계 속에서, 마가렛은 패배하지 않는다. 천박하고 왜곡된 세상일지라도 그녀는 기어이 그 삶 속에서 살아내고자 한다. 뜨거운 지붕 위에 올랐을지라도 허공으로 뛰어내리지 않고, 그 뜨거운 지붕 위에 발을 디딘 채 끝까지 저항하고, 살아남고자 애쓴다. 그리고 마가렛의 의지와 브릭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세계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브릭을 잡아줄 것이다. 여전히 지붕 위에 머물러야 하는 두 사람은 상속을 받기 위해, 뜨거운 양철 지붕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 밤, 임신에 성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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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에서는 엔딩에 침대를 활용하여, 두 사람의 성관계를 보다 직접적으로 암시하지만, 연극 <고양이>에서는 서 있는 브릭의 한쪽 팔을 마가렛이 붙드는 행위에서 암전이 된다. 원작의 직접적인 묘사는 마가렛과 브릭의 하룻밤이 임신에 성공할 것 같이, 낙관적인 미래를 암시하는 듯 느껴진다. 문삼화 연출의 <고양이>는 아예 브릭과 마가렛을 무대 정중앙에 세우고, 브릭을 붙드는 마가렛을 통해 모호한 분위기를 유지한다. 여운은 남는 엔딩이었으나, 이로 인해, 테네시 윌리엄스가 무대 설명에서 강조했던 침대, 그 침대의 의미는 다소 미약하게 전달되었다. (침대는 ‘뜨거운 양철 지붕’이라는 공간의 가장 작은 축소판이기도 하다.) 침대는 부부의 사랑의 공간이면서, 생존을 위해 육체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 복잡한 공간임에도, 문삼화 연출의 <고양이>에서는 이 침대의 의미와 복잡성이 다소 흐려졌다.
 
 
 
나가며 : 문삼화 연출의 <고양이>는 통속극을 넘어서는가


앞서 서술했다시피, 빅대디의 생일날 벌어진 하루 간의 서사는, 굴절된 욕망과 조응할 수 없는 세계로 대변되는 ‘뜨거운 양철 지붕’, 그리고 그 위에서 생존하고자 하는 고양이 ‘마가렛’을 중심으로, 세계 속에서 저항하며 살아남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유의미하게 포착해냈다. 실존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안고 있는 이 극은 마냥 무겁지 않게, 완급조절을 능숙하게 해가며, 주제의식을 전달한다.

그러나 테네시 윌리엄스가 나눈 1, 2, 3막 중, 1막과 2막이 합쳐져서 90분, 인터미션 후의 3막만 45분으로 재편되며, 마가렛 중심의 1막, 브릭과 빅대디 중심의 2막의 연결이 매끄럽지 않았다. 막의 중심이 잘 잡히지 않은 채로, 전반부는 마가렛, 후반부는 브릭과 빅대디로 분절되니, 뒤이어 3막에서 모든 욕망이 한 공간으로 수렴되는 응집력은 다소 약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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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여, 원작에는 기술되어있지 않았던 과한 희화화는 과연 문삼화 연출의 <고양이>가 통속극의 한계를 넘어섰는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특히, 메이는 전형적으로 스트레오타입화 된 한국 가족 드라마의 갈등 요소처럼 느껴진다. 마가렛보다 사교계에 발을 일찍 들였고 목화의 여왕이었던 메이의 과거 설정이 사라지며, 메이는 그저 아이를 많이 낳고, 마가렛을 자극하는 얄미운 손윗동서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또한, 방 안의 소파를 차지하는 이가 그 씬의 주도권을 쥐고 있음이 우스꽝스럽게 연출되며, 테네시 윌리엄스가 표현하고자 했던 주제의식의 무게감이 가족 내의 비근한 갈등으로 축소된 느낌을 받았다. 원작을 읽고 간 관객에게도, 그렇지 않은 관객에게도, 통속극을 넘어선, 인간의 실존과 허위에 관한 날카로운 통찰을 전해주었을까? 의문과 아쉬움이 지붕 위에 남는다.




       
■ 참고
「부조리의 인식과 반항」, 『세계문학비교연구』 제26집 봄호, 세계문학비교학회, 2009.
■ 자료제공 : 예술의전당
 
 
[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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