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록의 힘을 보다 [시각예술]

시민청 워크숍 ‘도시사진전’ 참여, 관람 후기
글 입력 2017.07.14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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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은 사라지는 것들을 위한 가장 단순한 배려다. 곧 없어지는 존재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다이어리를 잃어버렸을 때, 슬픈 심경을 일기장에 적어 내려갔다. 어디를 향하는지 모를 원망감에 사로잡혀 며칠 밤을 보내고 나니 다이어리 생각이 점차 희미해져갔다. 기록은 사라지는 것들이 남기고 가는 감정들을 정리하는 데도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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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하다보니 ‘사랑방 워크숍-도시사진전’에 자연스럽게 지원하게 됐다. 도시사진전은 ‘사라질 서울의 마지막 풍경’을 주제로 4개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진으로 기록하는 작업으로 3월부터 한 달에 한 번씩 총 4번의 출사가 이뤄졌다. 지난 6월 방문한 이태원 우사단 마을을 끝으로 활동이 종료됐고 현재 서울시 시민청에서 전시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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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계동 백사마을, 성북동 북정마을, 창신동 절벽마을, 마지막으로 한남동 우사단길까지. 서울에서 흔적이 사라져가는 마을들을 돌아보며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쓸쓸함이었다. 케케묵은 먼지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미끄럼틀을 감고 있는 덤불, 바닥에 쓰러져있는 보행기의 모습은 “이곳엔 더 이상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우울한 생각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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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마을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올라가보면 무거웠던 감정이 살짝 고조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높은 곳에선 밥 짓는 모습, 밭일하는 모습, 늙은 몸을 이끌고 어딘가 가는 모습, 하다못해 옹기종기 모여 수다 떠는 모습까지 렌즈에 담을 수 있었다.

재충전을 하고 다시 마을로 내려가면 사뭇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방금 전까지 들리지 않았던 피아노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무심코 지나쳤던 곳엔 방금 벗어던진 듯 무질서하게 놓인 신발들이 있었다. 처음 마을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곧 사라질 공간이란 생각에 사로잡혀 마을 곳곳에 스며든 삶의 흔적을 놓칠 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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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된 사진들 대부분이 밝고 활발하고 신나는 느낌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이들은 웃고 있고 할아버지들은 휴대용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담소를 나눈다. 아무래도 이 공간들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더불어 기록의 새로운 기능을 발견했다. 없어질 것들뿐 아니라 지금 어딘가에 가려진 곳들도 기록을 통해 빛날 수 있다. 두 눈에 가득 담을 수 있다. 어렴풋이 느끼면서도 지나칠 수밖에 없었던 대상이 있다면, 시민청 갤러리에서 두 눈으로 기록의 힘을 확인하는 것을 추천한다. 집에 돌아가는 당신은 곧 기록을 하게 될 것이다. 평범한 내 일상을 곱씹으며 더욱 빛내고 있는 지금처럼.


[이형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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