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에 관한 서글픈 이야기, 연극 '달빛 크로키'

글 입력 2016.08.18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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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사랑은 뜨겁고, 웃기고, 환상적이지만 사실 지루하다. 어느 누구나 시도(?)할 수 있고 그 대상에 따라 사소한 것부터-이를테면 젓가락을 쥐는 법이나 선호하던 음악 장르의 변화 같은 것- 크게는 인생의 전부까지 그 방식과 감정교류의 폭이 넓고 다양하지만, 어떠한 형용사를 갖다 붙여도 어색하지 않고 그 뜻이 통한다는 점에서 진부하다. 간단하게는 당신이 이 글의 도입부를 읽으며 뜨겁고, 웃기고, 환상적이라는 표현에 고개를 끄덕였다면, 적어도 당신을 포함한 끄덕인 자들의 사랑은 비슷하게나마 그렇다는 것이 된다. 물론 각 단어를 향한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 역시 무한한 사랑의 수만큼 다양하다. 그것을 사전적 정의로는 오롯이 표현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알면서도 간과할 뿐이다.
  그래서 그걸 아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랑을 '순간'으로 기억하곤 한다. 소중한(혹은 했던) 기억들을 세상에 존재하는 단어만으로 이야기하고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랑이 뭘까 하는 아주 관념적인 질문을 하면 그들은 설레다, 슬프다 등으로 대답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운을 띄운다. "나는 이런 적이 있었는데-"
 
  사랑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많다. 사랑을 그린 연극이라면 으레 겁부터 나기도 한다.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를 흔하다고 말하면 안되겠지만, 표현하자면 이 정도. '꽤 자주 볼 수 있는 이야기(?)'. 이에 대학로 사랑 연극에 갈증을 느껴왔었다. 그럼에도 <달빛 크로키>가 어쩌면 한동안 느껴온 이 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크로키'라는 단어의 언질, 두 가지 이야기의 옴니버스 형식, 그리고 사랑보다는 그를 잃는 상실의 과정에 맞춰진 극의 초점이 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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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옴니버스 형식에 긍정했던 이유는 사랑이야기를 구구절절하게 표현하지 않을거라는 기대에 있었다. 에피소드에 주어진 시간이 보다 짧아진만큼 구체적인 순간이 담겨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했다. 그리고 연극 <달빛 크로키>는 기대 이상으로 사랑을 표현해냈다. 너무나도 현실적이게, 그래서 슬프게. 비단 그들의 감정기복에만 홀렸던 것은 아니다. 꾸며진 옥탑방과 두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방의 주인이 바뀐 과정, 배우들의 연기까지, 극의 집중을 흐릴 것이 한 가지도 없이 꼭 들어맞았다. 실제로 90분이 넘는 러닝타임동안 시간이 가는 것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집중했고, 극이 끝난 후에도 이들의 이야기를 더 듣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또 하나. 함부로 그들의 잘잘못을 가리지 못했다.
 
  잘잘못을 가리지 못했다는 말은 곧 모두를 이해한다는 말이 된다.
 
  <옥탑방 크로키>는 소여와 미라, 두 여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다. 이들의 연애는 지극히 평범하고 현실적이었다. 개인적으로 동성애코드의 극을 접할 때 '이것은 동성애다! 잘 봐라, 성격 차이부터 남다르지 않냐!'하는 식의 직접적인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데, 실제로 이들의 이야기는 극이 시작된 지 꽤 오랫동안, 소여와 미라가 입을 맞추기 전까지는 연인사이인지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만큼 두 인물을 동성애로부터 벗어나 편견없이 그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참 현실적이다. 소여와 미라는 자신들의 사이가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여느 동성애 커플이 걱정하는 바와 같다. 그래서 미라는 남편이 있고, 결혼생활을 하고, 소여의 옥탑방에 남편 몰래 드나들며 소여와 사랑을 한다. 소여는 미라의 불가피한 부재에 외로워하고, 미라와 미라 남편 부부간의 섹스에 애달픈 질투를 하며, 네 남편이야 나야! 하는 악을 지른채 도피하기도 한다. 둘의 이야기는 결말이 없다. 그렇게 10년을 만났고, 앞으로도 달라질 건 없다. 그래서 더 슬프다.
  이야기는 역순행적 구조를 띤다. 소여가 살기 전, 소여의 옥탑방에는 가난한 영화감독이 살았다. 옛 연인사이인 지훈과 세경의 이야기를 그린 <참깨라면>은 헤어진 연인이 서로에 대해서 너무나도 잘 알고있음을 인지하는 과정을 우스꽝스럽게 그려낸 이야기다. 세경이 술에 취해 지훈의 자취방에 와 라면을 끓여먹고, 지훈은 그런 세경을 위해 냉장고에서 알타리무를 꺼내어준다. 둘은 다투고 모진 막말을 하지만 그 순간 서로가 가진 생각과 감정이 무엇인지 제일 잘 안다. 오해로 헤어졌지만 결코 돌이킬 수 없음을 인지한 둘의 이야기가 전부이다. 그날 밤 지훈은 세경에게 방을 내어주고 나가고 세경은 모르는 척 창문에 열쇠를 숨겨놓고 지훈의 방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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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의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사랑'의 전달, 그 방식이 유쾌하다는 점이 가장 좋았다. 극이 끝나고나니 어디 한구석이 불편한 듯 뭉클했지만 극이 진행되는 동안 극장안에 있던 관객 모두가 즐겁게 연극을 관람했다. 개인적으로는 웬만한 코미디연극보다 재미있었다!
  해당 연극을 관람할 의향이 있다면, 극의 전후로 당신이 지녔던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바란다. 당신이 뭉뚱그려 그린 스케치에 더욱 짙은 색감을 입혀 줄 그들이다. 사랑이라는 진부한 관념에 대한 행복하지 않은 색다른 시선이 인상깊다.
 
  나레이션 연극이라는 특징이 다소 낯설수도 있었는데 적당해서 연극을 보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었다. 오히려 '나레이션 연극'이라는 타이틀을 달기 위해 조금 더 가미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극단 으랏차차스토리의 연출은 처음이다. 무대공연콘텐츠를 기반으로 영상과 음원에 걸친 멀티문화콘텐츠를 제작하는 극단 으랏차차스토리는 특유의 독특한 느낌이 강점이며 국내 순수창작극 발전에 앞서고있다고 한다. 다음 으랏차차스토리의 신작이 기대된다.
  끝으로 '크로키'라는 제목의 표현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크로키라고 이야기하기에 그들의 사랑은 짙고 꼼꼼하며 간단하지않다. 결코 초안의 모습이 아니다.
 

달빛이 비추는 작은 옥탑방 안에서 이루어진 그들의
그 뒷 이야기들이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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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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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 대학로 세우아트센터
공연기간: 2016년 8월 2일~8월 14일
공연시간: 화수목금 20시/토 15시, 18시/일 15시
티켓가격: 30,000원
관람시간: 90분
관람연령: 만 12세 이상 관람가
예매처: 인터파크, 대학로티켓닷컴
제작/기획: 으랏차차스토리
문의: 070-4203-7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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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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