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페라 변방의 반란, 카디프

글 입력 2016.08.07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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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변방의 반란, 카디프


글 -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지난 5월 13일 금요일 오전 나는 런던에서 서쪽끝에 위치한 카디프행 기차를 잡아탔다. 런던에서 2시간 10분 거리에 있는 300만 소국 웨일스의 수도 카디프에서는 그 날 저녁 특별한 오페라무대가 예정되어 있었다. 1차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하는 데이비드 존스(1895-1974)의 고전 ‘괄호에 넣어서’(In Parenthesis)가 이안 벨(1980- )의 오페라로 세계초연되는 날이었기에 나는 한걸음에 웨일스 밀레니엄 센터로 달려갔다. 카디프 중앙역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찾아간 웨일스 밀레니엄 센터와의 초대면은 수수한 변방의 느낌으로 자욱했다. 하긴 웨일스의 정체성부터가 그레이튼 브리튼 제도의 서쪽 외곽에 유폐된 변방의 이미지가 짙은 것이다. 그럼에도 웨일스는 놀라운 음악적 성취를 일궈온 무시 못할 오페라강국이다. 바로 1946년에 창단되어 올해로 7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웨일스 국립 오페라, 즉 웰시 내셔널 오페라가 이들의 음악적 자부심으로 우뚝 솟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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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 밀레니엄센터 외관 / © Phil Boorman



- 소국 웨일스를 지탱하는 웰시 내셔널 오페라의 스케일

나에게 웰시 내셔널 오페라 하면 왕년의 명지휘자 레지널드 굿달(1901-1990)이 83세 되던 1984년에 바그너 ‘파르지팔’을 지휘한 명반부터 떠오른다. 당시 28세의 쌩쌩했던 메조소프라노 발트라우트 마이어가 쿤드리로 분한 이 명반은 웰시 내셔널 오페라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보증수표로 기억되고 있다. 이런 생각을 하며 이들의 본거지인 웨일스 밀레니엄 센터 내 도널드 고든 씨어터에 입회했다.

1897석의 동극장은 350석의 BBC 호디노트홀과 250석의 웨스턴 스튜디오 씨어터와 더불어 웨일스 밀레니엄 센터를 구성하는 주축극장이다. 바로 웰시 내셔널 오페라의 본거지로 기능하고 있는 무대가 도널드 고든 씨어터다. 2004년 11월과 2009년 1월에 순차적으로 개관을 완료한 웨일스 밀레니엄 센터는 또한 BBC 웨일스 국립 오케스트라의 주무대로도 기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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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 밀레니엄센터 고든 씨어터 객석 / © Chris Colclaugh


온통 갈색으로 채색되어 훈훈한 느낌의 도널드 고든 씨어터에서 관람한 오페라 ‘괄호에 넣어서’의 세계초연 지휘봉은 웰시 내셔널 오페라의 계관지휘자로 있는 카를로 리치가 맡았고, 연출은 웰시 내셔널 오페라의 예술감독으로 있는 데이비드 파운트니가 맡았다. 이래저래 세계 오페라계의 총아들이 결집해 일군 명무대였다. 조성에 충실한 벤저민 브리튼(1913-1976) 류의 영국적 관현악법을 연상시킨 이안 벨의 오케스트레이션은 전반적으로 무난한 패시지로 일관했다. 파운트니의 연출에서 두드러진 액센트는 병사들의 전선투입과 행군장면들이었다. 가수들의 면면은 편의상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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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일스 국립 오페라의 [인 퍼렌쓰시스] / © Bill Cooper


이들 스타급 제작진 이상으로 감명깊었던 것은 1897석의 객석을 가득 메운 웨일스인들의 오페라 사랑이었다. 이들은 소국이라는 가시적인 한계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결 같은 정장차림으로 자국무대에 오르는 오페라를 진중하게 예우하고 있었다.

5천만 한국의 국립오페라단의 역사는 1962년 창단 이후 54년을 맞이했음에 비해, 3백만 웨일스 국립 오페라의 역사는 70년을 맞이했다. 5천만 대 3백만, 54년 대 70년이라는 숫자놀음보다 더 큰 차이는 바로 각자가 일구어온 오페라무대의 수준이다. 웰시 내셔널 오페라는 자체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보유하고 있고 예술감독과 음악감독을 또한 두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의 국립오페라단은 자체 오케스트라가 없다 보니 당연히 음악감독 또한 있을리 만무하다. 명목상의 예술감독만이 있을 뿐이므로 오페라제작 수준이 현격히 차이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상기했듯 이미 1984년에 바그너의 ‘파르지팔’ 같은 대작을 메이저 레이블인 EMI에서 출시했을 정도니 이들의 오페라 제작역량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최근 웨일스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일이 있다. 1960년 대회 출범 이후 처음 출전한 2016 유럽 축구선수권, 즉 유로 2016에서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하며 세계 스포츠계에 존재감을 과시한 것이다. 레알 마드리드 부동의 미드필더 가레스 베일이 이끈 웨일스 축구대표팀은 박지성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전동료이자 웨일스 축구계의 전설인 라이언 긱스도 못 이룬 꿈을 첫 유럽컵 출전에서 달성하며 국가이미지를 끌어올렸다. 그간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런 웨일스의 위상을 다른 맥락에서 견인해온 분야가 바로 오페라라는 사실 또한 잊지 말자.

최근의 브렉시트 결정에 웨일스는 유럽연합 탈퇴여론이 우세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기원전부터 켈트족이 정착해 일군 웨일스의 고유문화를 지키려는 DNA가 작동한 것으로도 해석된다. 지금도 카디프 시내를 누비다 보면 모든 팻말이 영어와 웨일스어로 공동표기되어 있는 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그만큼 웨일스인들은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고 면면히 이어가려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이번 브렉시트 결정을 계기로 그레이트 브리튼 제도 한 켠의 소국 웨일스는 유럽이 아닌 별개의 북방국가라는 점이 분명해졌다. 마찬가지로 웰시 내셔널 오페라의 정체성도 유럽 유수의 오페라하우스와는 다른 성질을 담지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유념해 둘 필요가 있으리라. 그런 인식의 연후에 웰시 내셔널 오페라를 찾는 당신은 웨일스만의 독자적이고도 고유한 그네들만의 오페라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고전음악칼럼니스트.

월간 클래식음악잡지 <코다>,<안단테>,<프리뷰+>,<아이무지카>,<월간 음악세계> 및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계간지 <아트인천>,
무크지 <아르스비테> 등에 기고했다.

파리에 5년 남짓 유학하면서 클래식/오페라 거장들의 무대를 수백편 관람한 고전음악 마니아다.

저서로는 <거장들의 유럽 클래식 무대>(2013/투티)가 있다.
현재 공공기관과 음악관련기관, 백화점 등지에서 클래식/오페라 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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