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요절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시각예술]

다시 한 번 [the young apprentice]를 보자.
글 입력 2015.11.07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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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요절 화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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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딜리아니의 초상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와의 첫 만남

  올해 <모딜리아니: 몽파르나스의 전설 展>이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렸다. 잘은 모르지만 나도 그림을 보면 "아 모딜리아니 꺼네."한다. 더 직접적인 만남은 지난 8월, 오랑주리미술관에서였다. 그 시기 포스터가 모딜리아니의 작품이기도 해서 작가설명을 읽어보았다. 

'His dramatic, premature death at the age of thirty-five 
added to the aura of scandal that always surrounded his painting....' 

35살에 요절?! 
고개를 들어 [the young apprentice]를 다시 보았다. 마음이 찡했다.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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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young apprentice]1918





요절이 주는 감동과 모딜리아니

  현대인들에게 인기 많은 이 작가가 늙어 죽을 때까지 명성 있는 삶을 살았을 거라고 나는 지레짐작했다. 체감 상 <모딜리아니展>은 흥행했고 그의 작품은 고흐의 것처럼 눈에 익었기 때문이었다. 정작 그와 고흐가 닮은 점은 생전엔 가난에 시달리다 사후에 오히려 작품성을 인정받았다는 것뿐이었다. 더구나 모딜리아니는 요절했다. 그것이 주는 감동이란 무엇이 길래 그를 다시 한 번 쳐다보게 만드는 가?


이른 죽음에 대한 연민

  요절. 어릴 요夭부러질 절折, an early death. 젊은 나이에 죽다. 유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라는 生의 순리를 따르지 못하고 간 자에 대한 애처로움이 직관적으로 들었다. 그러나 감정을 추스르고 생각하면 요절은 죽음의 한 형태일 뿐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연민 때문에 그의 그림이 인상적이었다는 말은 뭔가 부족하다. 


영원한 젊음에 대한 동경


“릴케가 쓴 것처럼 현대인은 낭만적으로 죽을 수 없다. 
오늘날 사람들은 병이나 교통사고 따위로 죽는다. 거기에는 드라마라곤 없다. 생의 권태랄까."

-일본의 탐미주의 예술가인 미시마 유키오平岡公威


  요절한 모딜리아니는 영원히 35세다. 그는 영원히 20세기 초 근대 예술의 태동기 속 젊은 예술가다. 별 탈 없는 이상 사람은 늙어서 죽는다. 그것은 생의 순리다. 그러나 진시황이 불로초를 찾아 헤맸듯이 늙음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늙음이 두려워질수록 젊음을, 그 푸른빛 찰나를 동경한다. 


"작업을 할 때면 마치 신들린 사람 같았고,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 않고 데생을 계속했는데 이미 그린 것을 수정하는 법도 없고 한순간이라도 생각하느라 멈추는 법도 없었다. 
곁에서 보기에 그는 완전히 본능적인 확신과 넘치는 감수성으로 작업하는 것 같았다.“

 -모딜리아니의 동료화가였던 자크 립시츠Jaques Lipchitz
 
  
  러시아 문필가 일리야 에렌부르크Ilya Ehrenbrug의 ‘거대한 인간 전시장’이란 표현대로 모딜리아니의 작품 은 지인들이나 주변 이웃들을 그린 초상화가 많다. 풍경화, 정물화 등 여러 장면을 화폭에 담는 동료화가들과 달리 모딜리아니는 특이하게도 일생동안 거의 인물화만을 그렸다. 집요한 확신으로 독창적인 예술세계를 정립해가는 그의 열정은 젊음의 표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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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Portrait of Paul Guillaume]1916, [Portrait of Jacques and Berthe Lipchitz]1916, [Portrait of Jean Cocteau]1916, [Study for the Cellist]1909, [Portrait of Paul Alecandre against a Green Background]1909, [Jean Hebuterne]1919 


보헤미안적 삶에 대한 경외

  요절은 그의 예술 일대기에 하이라이트를 주어 경외심을 일으킨다. 평생을 놓고 볼 때 20년 남짓은 짧은 기간인데 심지어 후대에 길이길이 남을 만한 업적을 이루었으니 그의 삶이 인상적이지 않을 수 없다.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이 걸릴 일인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몽파르나스의 진정한 최후의 보헤미안’이라는 수식어가 걸 맞는 화가, 모딜리아니. 그의 삶이 소설화, 영화화되었고 전설로 만들어진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낭만주의 사상가 노발리스Novalis는 ‘예술적 창조와 정열의 상태 속에서 자신이 의욕(意慾)하는 형태를 생산’하여 인간은 자유를 느낀다고 했다. 생은 끊임없이 약동한다는 생철학자 베르그송Henri Bergson에 따르면, ‘전체세계의 실상’을 알기위해서는 합리성만으로는 부족하며 직관(直觀)이 필요하고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생을 만들어가는 장인’이다. 이는 후에 개인으로서 인간의 주체적 존재성을 강조하는 실존주의로 이어진다. 요컨대 이들 관념론 흐름의 공통점은 합리나 수리 같은 객관성이 아닌 직관, 자아 통찰 같은 주관성에서 인간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인간상을 바로 보헤미안Bohemian, 즉 ‘속세의 관습이나 규율 따위를 무시하고 방랑하면서 자유분방한 삶을 사는 시인이나 예술가’라 할 수 있다.     

  모딜리아니가 바로 이들의 이상향, ‘보헤미안’아니겠는가? 20세기 초 주류는 대상을 기하학적으로 분해하여 재구성하는 입체파였다. 반면, 모딜리아니는 오늘날 고전적 미술에 접근하려한 유일한 예술가로 평가받는다. 1906년 아방가르드의 중심지 파리에 입성했을 때만 해도 그의 작품엔 야수파의 흔적이 보였지만 1909년 그는 조각으로 잠시 외도를 했다. 전문적으로 조각을 배운 적은 없었지만 그는 처음부터 돌에 직접 조각하는 초기 르네상스방식을 택했고 순수하고 순박한 분위기를 풍기는 아프리카 조각에 매료되었다. 이를 계기로 ‘간결하고 선이 중심을 이루는’ 일관성 있는 회화 언어를 정립하여 ‘수천 점의 작품가운데서도 순식간에 식별이 가능한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동시대 프랑스 시인 막스 자코브Max Jacob에 의하면,
 “데도(모딜리아니)에 있어서 예술의 목표는 순수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순수란 초상화 대상의 특수성을 최대한 배제하여 보편성과 익명성을 획득하는, 인간에 대한 양식화를 말한다. 모딜리아니 초상화는 '1. 뚜렷하게 강조된 윤곽선 2. 잘린 듯한 화면 3. 우아함을 강조하는 길쭉한 신체 4. 비대칭으로 놓인 아몬드 모양의 두 눈'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모딜리아니는 모델에 대한 정보를 제한함으로써 관객이 ‘인간의 실존에 자문’하도록 했다. 초상화속 그들은 차분한 분위기를 풍기며 그 텅 빈 두 눈으로 관객을 직시하며 ‘삶에 대한 무언의 긍정을 표현할 뿐‘이다. 요컨대 모딜리아니는 존재에 대한 관조를 독보적인 화풍으로 구현했다. 

  또 다른 동시대 프랑스의 시인 장 콕토Jean Cocteau도 모딜리아니의 독창적인 양식화를 언급했는데, 이는 ‘모딜리아니가 선의 움직임을 적절히 제어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완벽을 지향하고 있었음’을 암시했다. 순수, 완벽은 영원으로의 귀속을 의미했고 모딜리아니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거장들이나 렘브란트같은 네덜란드 거장들과 특징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 아방가르드의 시류 속에서 모딜리아니는 고전적 차원을 획득한 것이다. 





다시 마주한 모딜리아니

  요절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모딜리아니의 요절이 중요하다. 그는 죽기 직전에도 수많은 작품에 몰두했다. ‘향후 어떤 화파의 발생으로도 이어지지 않는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직관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한 화가, 모딜리아니. 평생 모딜리아니는 병약했고 1920년 사인(死因)은 결핵성 뇌막염이었다. 그러나 그의 삶을 보라.


 “새로운 세기를 맞아 출렁거리던 시대적 상황, 파리의 자유분방한 분위기, 다양하고 새로운 예술적 혁신의 소용돌이, 마치 한편의 짜릿한 연극 같은 외롭고 격렬한 보헤미안의 삶, 운명적인 가난, 술과 마약으로 얼룩진 방탕한 생활, 그러나 누구보다도 강한 자존심과 무서울 정도로 치열한 제작 태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갈등, 이 갈등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부림, 불쪽처럼 뜨겁고 애틋한 사랑, 친구들과의 끈끈한 우정, 타협을 모르는 예술가적 정열...” 


다시 한 번 [the young apprentice]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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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한 무언의 긍정’이 느껴지는가?





<참고문헌>

『요절, 왜 죽음은 그들을 유혹했을까』,2002,조용훈, 효형출판
『진중권의 미학에세이: 예술의 눈으로 세상읽기』,2013,진중권,씨네21북스:한겨레
『아메데오 모딜리아니:1884~1920시선의 시학』2005,도리스 크리스토프 지음, 양영란옮김, 마로니에 북스
『예술과 사상』,2007,김혜숙, 이화여자대학교 출판부
『아메데오 모딜리아니』2000, 정소현, 열화당

실존주의
모딜리아니
그림 출처
사진 출처


[이세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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