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제껏 몰랐던 오페라의 유령의 또다른 이야기, 뮤지컬 '팬텀' [공연예술]

글 입력 2015.05.29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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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은 평생 숨어살았다. 화려한 오페라하우스 아래의 어두컴컴한 지하에서 은둔하던 그는 마침내 그의 디바 크리스틴을 만나고, 사랑의 기쁨을 깨닫게 된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간 것이다.

 지난 5월 22일, 소설 속의 팬텀처럼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그늘에 가려 7년 동안 무대에 오르지 못했던, 그러나 마침내 31년 만에 한국에서 초연되어 커다란 감동을 선사하고 있는 뮤지컬 <팬텀>을 직접 만나보았다.


팬텀 포스터.png


 뮤지컬 <팬텀>에는 극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 <팬텀>은<오페라의 유령>과 마찬가지로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하는, 미국에서 제작된 뮤지컬이다. 오히려<오페라의 유령>보다 1년 먼저 제작되기 시작했으나,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오페라의 유령>이 먼저 발표돼 웨스트엔드를 휩쓸면서 시련이 도래했다. 런던의 투자자와 제작자들은 미국에서 원작을 공유하는 또 다른 뮤지컬이 나오는 것을 원치 않았고, 결국 이 여파로 인해 거의 확정되었던 <팬텀>의 공연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나 두 제작가인 아서 코핏과 모리 예스톤은 때를 기다려, <팬텀>을 미니 드라마로 각색해 방영하여 큰 인기를 끌었다. 이는 투자자들을 불러 모았고, 결국 7년 만에 뮤지컬 <팬텀>은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팬텀>을 보게 된 이유도 바로 이 비하인드 스토리였다. <오페라의 유령>을 좋아하는 만큼 뭐가 얼마나 다르고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팬텀씨.png

 사실, 내용은 할 말을 잃을 정도로 만족스러웠다. 똑같은 원작을 가지고 해석한 공연들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니! <오페라의 유령>을 봐서 재미가 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건 아~주 큰 오산이었다. 둘을 비교할 수 있어 오히려 더 좋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팬텀>의 스토리가 더 마음에 들었다. <오페라의 유령>에서는 현재 진행되는 일에만 집중하고, 팬텀이 어떤 사람이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 즉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전무하다. 그래서 옛 오페라처럼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러나 <팬텀>에서는 팬텀의 부모님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왜 팬텀은 지하극장에 숨어살 수밖에 없었는지, 왜 그의 얼굴은 그리 흉측한 것인지, 왜 그는 하필 크리스틴을 사랑하게 된 것인지, 그의 숨겨진 사연을 낱낱이 노래한다. 이는 사건에 개연성을 부여해주어 극에 한층 더 집중할 수 있게 해주었다.

 팬텀의 캐릭터도 다르다. <오페라의 유령>에서의 팬텀은 크리스틴에 대한 사랑 빼고는 거의 내면을 내비치지 않지만, <팬텀>에서의 팬텀은 정말 구구절절 다 얘기한다. 거기에 거의 모든 내용이 철저히 팬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다보니 팬텀의 인간적인 면모가 잘 드러나게 되고, 이는 그를 유령이 아닌 한 사람, 한 남자 '에릭'으로 조명함으로써 그의 마음에 더 깊이 공감하고 빠져들 수 있게 한다.


류정한.png

 배우 캐스팅도 아주 마음에 들었다. 내가 본 회차의 주연은 류정한(팬텀), 임혜영(크리스틴), 신영숙(카를로타)이었는데, 모두 매우 만족스러웠다(나는 이 세 배우의 팬이다). 류정한 배우는 뮤지컬 배우지만 성악도 전공한 분이라 팬텀에 너무나 잘 어울렸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깊은 곳에서 나오고, 단단하다. 그래서 가슴 속에서 우러나오는 그의 감정을 잘 전달할 뿐 아니라, 세상에 벽을 치고 고립된 채 살아가는 그의 모습을 절로 그리게 한다. 게다가 그 연기력이란! 그가 연기보다는 노래를 더 잘한다고 생각해왔는데 완전히 틀렸다. 그가 바로 팬텀이었다. 약간 불안정한 걸음걸이, 살짝 굽은 등과 늘 숙인 고개, 부족한 말재주. 흉측한 얼굴로 평생을 혼자 살아 바닥난 자존감과 불안정한 감정, 부족한 사회성을 잘 보여주었다. 게다가 부족한 말재주 속에서도 크리스틴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나는데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크리스틴.png

 임혜영 배우의 크리스틴은, 정말 예뻤다. 얼굴과 목소리 모두. 그녀의 목소리는 사실 처음 들으면 조금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지나치게 꾸며놓은 목소리처럼 들린 달까? 하지만 금방 공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말 맑고 예쁘다는 말에. 그래서 그녀의 크리스틴은 긍정적이고 발랄하며 소녀처럼 사랑스러웠다. 특히 그녀가 처음 등장하며 부르는 넘버 ‘파리의 멜로디’는 그녀를 닮았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메인 넘버 ‘비스트로’에서의 고음이었다. 어찌됐든 오페라의 유령을 베이스로 만든 만큼 많은 노래들이 성악이 필요한 곡이었고, 특히 비스트로가 그랬다. 마지막의 기교는 오페라에서 성악가들이 내는 그것이었다. 그래서였는지, 그녀가 매우 높은 소프라노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고음 내지르기’로 들렸다... 그렇지만 이것만 빼고는 정말 다 만족스러웠다. 크리스틴을 맡은 배우들(임선혜, 임혜영, 김순영) 중에 유일하게 뮤지컬배우였기에 연기력도 좋았고 더 뮤지컬스러웠다. 그렇지만 역시 조금 아쉬운 만큼, 다음번엔 성악가 출신 배우로 볼 예정이다.


신영숙.png

 카를로타를 맡은 신영숙 배우는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다. 사실 메인인 팬텀과 크리스틴에 비하면 그녀의 비중은 크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메인 그 이상의 존재감으로 무대를 휘어잡았다. 1막에서는 그녀가 주인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녀는 엄청난 성량과 독특한 음색, 그리고 연륜이 묻어나는 아줌마스러움(?)으로 얄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카를로타를 완벽하게 연기했다. 특히 카를로타를 가장 잘 보여주는 넘버 ‘다 내꺼야’는 가히 폭발적이었다고밖에... 그녀가 주인공이 아니라는 게 너무나 아쉽고, 그녀가 주연인 공연을 다시 한 번 보고 싶게 만드는 연기와 노래였다.


발레.png

 팬텀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바로 발레다. 2막에서 팬텀의 과거가 밝혀지면서,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야기가 풀린다. 이 때 그 두 역으로 프리마 발레리나(오페라의 프리마돈나에 해당하는 말)가 등장하여 과거를 그린다. 약 15-20분 정도의 무대였는데, 거의 넋을 놓고 봤다. 사람이 그렇게 우아할 수 있는 걸까. 대사도 없이 오로지 춤과, 간간히 곁들여지는 노래와 카리에르의 내레이션만으로 그들의 과거는 모두 마음속에 각인되었다. 춤보다 노래를 훨씬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지만, 이 장면은 베스트씬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뮤지컬과 발레의 완벽한 콜라보레이션이었다.


 다만 1막의 집중도가 좀 떨어졌던 것이 아쉬웠다. 지나치게 소개 위주로 진행됐기 때문이었을까. 이 극장은 어떤 곳이고,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1막 85분의 시간 동안 스토리를 전개한다기보다는 온 곳을 얕게 훑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2막을 얘기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필요하긴 했겠지만, 적당한 수준에서 끊어내고 극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알도록 했다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무대.png

 게다가 집중을 더 흩어지게 했던 또 다른 범인이 있었으니 바로 무대장치였다. 무대장치 자체는 아름답고 오페라하우스를 표현하기에 적합했다. 그러나 문제는, 한 넘버가 끝날 때마다 그 무대장치를 움직이고 돌리고 꺼내오고 빼고를 계속 반복했다는 것이다. 그 장치 이동시간만 꽤 잡아먹었을 거다. 게다가 무대에 설치된 거대스크린에 오페라 가르니에, 지하 수로와 같은 배경이미지를 띄워 연출을 했는데,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확대되고 축소되어서 더 어지러웠다. 한마디로, 무언가 많은 것을 보여주려고 노력한 것은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산만했다. 그래서 ‘오직 2막만을 위한 공연’, ‘지루하고 산만하다’라는 혹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 좀 더 심플한 무대에, 스토리 전개에 좀 더 비중을 두었다면 완벽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공연이었다.



비극적인 이야기
내 슬픈 노래

이 무대에서 펼쳐질
알 수 없는 이 미스테리

내 사랑 내 아픔도 눈물이 되어
내 심장을 적시네

영혼까지 바쳐 이룬 사랑


- 서곡 : 내 비극적인 이야기, 뮤지컬 <팬텀> 中
 
[최민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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