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끝났다. 씻고 나서 무언가를 읽고 싶은데, 두껍고 무거운 책은 손이 가지 않는 그런 밤. 《타샤의 기쁨》은 그런 밤에 꺼내 들기 좋은 책이다.

책을 펼치자마자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글이 아니라 그림이다. 하얀 꽃송이들이 무리 지어 피어있는 수채화, 장미와 찻잔이 정겹게 놓인 정물화.
타샤 튜더(Tasha Tudor)의 붓 끝에서 태어난 이 그림들은 보는 사람의 어깨를 조용히 내려앉게 만드는 힘이 있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어린 시절 동화책을 다시 펼쳤을 때의 그 느낌, 말하자면 세상이 아직 아름답다는 믿음 같은 것이 그림 사이사이에 스며있다.
타샤 튜더는 미국 뉴잉글랜드 출신의 작가이자 화가다. 평생 역사적인 전통에 충실한 클래식한 생활 방식을 고집했고, 그 삶 자체를 예술로 빚어냈다. 그녀의 수채화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추억을 담아내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자연과 동물과 아이들을 끌어안고 싶게 만든다.
타샤의 일상은 그림 속에 자주 등장한다. 코기들이 활달하게 뛰어놀고, 손자들이 꽃핀 초원에 앉아있거나 계란을 모으고, 자작나무 사이에 서서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을 바라보는 풍경들.
거창하거나 드라마틱하지 않은 소박하고 다정한 일상의 단편들이 페이지마다 이어진다.

서문에서 타샤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은 이야기책이 아니다. 특별한 시작이나 끝도 없고 달리 전하고픈 메시지도 없다. 그저 과거와 현재의 추억에서 건져 올린 기쁨의 말만 오롯이 담겨 있다."
이 말이 독자를 안심시킨다. 무언가를 반드시 얻어야 한다는 부담 없이, 그냥 펼치고 그냥 바라봐도 된다는 허락처럼 들린다.

책 곳곳에는 글귀들이 함께 실려 있다.
랄프 왈도 에머슨의 "좋은 책은 좋은 독자가 만든다"는 말, 마크 트웨인의 "환상과 이별하지 말라. 환상이 사라지면, 그대는 여전히 존재할지라도 살아가는 것을 멈춘 것이니"라는 문장. 타샤는 '다른 이들이 남긴 꽃’을 책 안에 심어두었다.
이 선택이 바로 타샤다움이다. 화려한 자기 과시 없이 자신이 아름답다고 느낀 것을 조용히 내밀어 보이는 방식 말이다.
읽는 내내 마음속에 잔잔한 온기가 돌았다. 특별히 감동적인 사건도 없고, 반전도 없다. 그런데도 책을 덮을 때 기분이 묘하게 좋아져 있었다. 마치 오후의 햇살이 드는 창가에서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신 것처럼. 타샤 자신이 서문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그림을 그리며 행복을 느꼈듯, 여러분도 그림을 들여다보면서 행복을 찾기를" 바란다는 그 소망이 독자에게 고스란히 전해지는 책이다.
바쁘게 바쁘게 흘러가는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밤 무거운 생각은 잠시 내려두고 싶을 때 《타샤의 기쁨》은 그런 밤의 가장 좋은 동반자다. 다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책을 덮고 난 뒤, 오늘 하루도 나름의 기쁨이 있었다는 것을 문득 떠올리게 된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