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지난 한 해 동안에는 마음이 쓰린 일들이 많았다. 나 개인적으로도 순탄한 해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내가 보는 세상은 평소보다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거리를 걷고 버스에 올라타는 짧은 순간에도 웃음보다 한숨을 내쉬는 이들이, 한숨조차 내쉴 여력이 없는 텅 비어버린 무표정이 눈에 먼저 띄었다. 세상사 행복한 일만 가득할 수는 없는 법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침잠해 있기만 해도 되나 하는 의문이 맴돌았다.
그랬던 2025년이 넘어가고, 2026년이 찾아왔다.
1월 1일의 열두 시 정각이 되자마자 새해 복 많이 받아, 행복하자, 해피 뉴이어, 행운의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 잠시 연락이 끊겼던 이들 사이에서도 이때를 틈타 쭈뼛쭈뼛 행복을 비는 문구가 오간다. 사랑하는 이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제야의 종소리를 듣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지난 해에는 이루지 못했던 목표를 다시 한번 되짚어 보고, 26년에는 이번에야말로 꼭 이러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겠다며 힘차게 몇 가지를 써 내려간다. 행운을 다짐하는 노래를 들으며 잠에 드는 이들도 있다.
그런 점에서, 1월 1일은 마법 같은 날이다. 텅 비어버렸던 무표정의 우리를 일으켜 세워 시작과 다짐과 행복을 말하게 할 수 있는 힘이 있는, 그런 날. 혐오와 비난으로 가득 채워졌던 곳이 행운과 행복을 비는 마음으로 가득 채워지도록 해 주는 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지난 해의 쓰린 마음을 메꾸고 앞으로 나아갈 결심을 할 수 있게 되는 걸까, 단지 1월 1일일 뿐인데, 무엇이 우리에게 그런 힘을 주고 있는 걸까.
25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시 한번 함께 생각해 보자.
나에게는 친절한 사람들을 많이 만난 해였다. 서로를 배려해 가며 함께 이야기 나누고 웃음을 지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무것도 아닌 날에도 내 안부를 물어 주고 근황을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기차 시간에 늦어 급하게 택시를 잡아 탔을 때, 조심히 잘 내려가라는 인사를 건네 주시는 기사님이 기억난다. 시내버스에 앉아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고요한 순간, 나와 눈을 맞추며 방긋방긋 미소 짓던 아기의 모습, 손을 흔들어 주자 까르르 웃던 웃음소리가 생생하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별 거 아니지만 당연한 인사말이 되돌아 올 때면 절로 미소가 났다. 힘들고 지친 나에게 사탕 하나, 젤리 한 봉지를 나눠주는 학생들이 있었고. 좋아하는 영화를 소개한 블로그에 ‘좋은 글 감사합니다’라는 답글이 달렸다. 내가 해 주는 이야기에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보여서 좋다는 말을 들었다.
기억은 미화된다는 말이 있다. 나는 2025년의 나에게 행복했던 일이 없었다고 생각했다가도, 어쩌면 내가 행복했던 순간들이 꽤나 많았다는 것을 깨닫는다. 무표정의 사람들이 아닌, 내게 마음 한 자락을 나누어 주던 사람들의 얼굴이 나를 꽉 채운다. 혐오와 비난, 슬픔과 우울보다 기쁨, 축하, 미소, 웃음, 이런 단어들이 먼저 떠오르기 시작한다.
우는 모습보다 웃는 모습을 더 잘 기억하고 싶어
기쁨이 있던 계절.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의심이 없어
무더운 여름이 오래도록 이어졌던 날
- 권누리, <음영> 중
우는 모습보다 웃는 모습을 더 잘 기억하고 싶고, 그럴 것이다. 결국 우리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것, 남기고 싶은 것은 그런 잔잔하면서도 뜨거운 마음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음들은, 우리가 2026년 1월 1일 새해를 맞이할 힘을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에게 2025년이 아쉬움으로만 가득 차 있다면, 다시 한번 느긋하게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길 권하고 싶다. 분명 그 속에서 오래오래 기억하고 싶은 마음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