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고요히 휴식할 줄 아는 사람인가?
이 책은 이번 나의 방학 계획, 신년 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해답처럼 찾게된 책이다. 원래 세워뒀던 방학 계획들이 틀어지고, 나의 일주일에는 빈 공간이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불안했다. 일주일 중에 절반이 고정 일정이 없는 것을 보니까 마음이 초조해졌다. '아르바이트라도 시작할까?', '내일배움카드로 학원이라도 다녀볼까?' 이런 생각들이 떠올랐다. 그러나 좀처럼 마음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항상 그래왔듯이, 책에서 해답을 찾고 싶었다. 서가에서 내 시선이 유독 머무르는 곳, 내가 듣고싶은 이야기가 있는 책을 골라봤다. 그러던 중 TED에서 발행한 피코 아이어의 <여행하지 않을 자유>라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정말 놀랍게도, 이 책을 읽고나니 내가 이 쉬는 날들을 어떻게 대해야할지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이 책은 세계 여행을 하던 피코 아이어가 TED와 함께 쓴 책이다. 그는 '아무데도 가지 않기'라는 가치를 이 책에서 수없이 강조한다.
나는 항상 무언가 해야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었다. 방학이라는 쉬는 기간동안에도 어떤 것을 해야 보다 '나은 방학'을 보낼 수 있을지에 대해 중점을 두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도태될 것 같다는 생각. 어쩌면 이러한 생각은, 잠깐 쉬는 시간에도 영어 단어를 외우는 것을 '갓생'이라 말하는 한국 사회가 만들어 낸 것일지도 모른다. 이는 나를 '뭐라도 해야될 것 같은' 마음으로 만들었고, 그렇지 않으면 그 쉼을 잘 활용하지 못 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곤 했다. 그래서 항상 가만히 있는 것보다, 움직이고 행동하는 것을 더 우월한 가치로 삼았다. 그것은 나를 성장시켰지만, 가끔은 나를 피로하게 만들었고 나를 돌보지 못하게 했다.
사방을 종종거리고 다니며 만족을 찾는 것 자체가, 내가 절대안정이나 만족을 손에 넣지 못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확실한 근거 같았다. p.29
이 책에서 묘사하는 것처럼, 나 또한 사방을 종종거리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찾기 위해서 사방을 종종거리며 여행을 계속 했지만, 그 본질이 어디 있는지 자문하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성취와 자극에서 멀어져서, 본인의 기쁨이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솟아져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만 오래 지속될 수 있기에.
가령 당신의 차에 흠집이 났을 때, 굳이 그 부분을 새로 칠할 방법을 찾아다니지 말라는 것이다. p.31
나는 이 문장을 보자마자 현재 내 상황에 너무 딱 들어맞는, 내게 딱 필요한 문장이라고 느꼈다. 나의 스케줄이 비었더라도, 굳이 그 부분을 메꾸거나 채울 방법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 많은 현대인들이 가진 '채우는 강박'을 버리고, 비우고 느리게 하는 것의 미학을 찾아가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번 방학에는 "의식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보는 것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점점 커지게 되었고, 책을 거의 마무리하는 시점에서는 '아무데도 가지않기'라는 행위에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이 훈련이 특히 속도에 민감한 한국인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에서는 여행을 가는 사람들로 예시를 든다. 우리는 여행을 마치 하나의 퀘스트를 해치우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듯 하다. 여행은 쉬러 가는건데, 완벽하게 과제를 해치우는 것처럼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이 책에서는 비행 시간을 하나의 '안식일', 그러니까 안식의 순간으로 이용하며 그 다음 휴가를 위해 의식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온 몸을 정화시키는 작업을 하는 승객의 사례를 '아무것도 하지 않기'의 장점으로서 보여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반성했다. 나는 휴가조차 여행 동선과 시간을 짜고 기차표를 처리하면서, 업무를 처리하듯 완벽을 기하고 온갖 잔재주를 부릴 기회로 삼았기 때문이다. ...(중략)...
하지만 다음번에 비행기로 뉴욕에서 캘리포니아로 돌아갈 때, 나는 전에 만난 옆자리 승객을 흉내내보았다. 일단 좌석 앞 모니터에는 손도 대지 않았고, 소설책을 뒤적거리지도 않았다. 의식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 들지도 않았다.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집으로 돌아가서 처리해야 할 일이 기억나면 수첩을 꺼내 기록했다. 나머지 시간에는 먹이를 찾아 드넓고 텅 빈 해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드러누워버리는 개처럼, 내 마음을 그냥 내버려두었다.
집에 도착해서 시계를 맞추기 전에 시간을 확인했더니 새벽 세시였다. 하지만 유튜브를 들여다보거나 책을 펼치지 않은 채 불을 다 끄고 음악을 들으며 잠을 청할 때처럼 머리는 맑고 상쾌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니, 마주한 세상만큼 새로워진 느낌이 들었다. p.91
나는 이를 보고 작은 '안식일'을 내게 소소히 선물하기로 결심했다. 단순히 디지털 디톡스를 하는 날짜의 개념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내게 안식의 순간을 선물하면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넓은 내면으로 떠나는 여행을 자주 가져보기로 말이다.
이 책은 짧고 휴식 시간에 읽기 좋다. 또한 중간 중간에 삽입 된 사진 작가의 고요한 사진을 보다보면, 나 또한 마음이 차분해진다. 휴식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너무 빠른 것들이 피로해진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속도의 시대에, 느리게 가는 것보다 더 활기찬 일은 없으리라.
산만함의 시대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보다 더 호화로운 기분이 드는 일도 없으리라.
그리고 끊임없이 움직여야 하는 시대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보다 더 시급한 일은 없으리라.
p.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