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백건우의 '슈만 어린이의 정경, 미지의 나라로'
나에겐 뚜렷한 버킷리스트가 있었다.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한 뒤 독일에 대한 로망이 생겼고, 언젠가 꼭 독일에서 피아노 버스킹을 하리라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독일어를 공부했고, 피아노에도 더욱 열심히 매달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 꿈은 조금씩 희미해졌다. 어느새 인생에서 반드시 이뤄야 할 목표보다는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작은 소망으로 남게 되었다.
또 하나의 버킷리스트는 쇼팽 콩쿠르를 직접 보는 것이었다. 타이밍 좋게도 5년에 한 번 열리는 이 콩쿠르가 올해 열렸다. 심지어, 10월에 있을 긴 추석 연휴를 이용해 폴란드에 다녀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여러가지 사정으로 결국 결선 관람은 가지 못하게 되었다.
버킷리스트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이렇게 언젠가는 해보고 싶었던 일들이 하나 둘 떠오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런 것들이 정말 내게 가치 있는 버킷리스트로 남을까? 하는 의문이 뒤따른다.
피아노 버스킹이나 쇼팽 콩쿠르 관람 모두 내 삶에 의미 있는 조각으로 남아 인생을 더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득 그 조각들이 정말 내 인생의 본질이 될까? 시간이 흘러도 그것들이 내게 여전히 중요한 가치로 남을까? 싶었다. 그런 질문을 던지고 나니, 독일에서의 피아노 버스킹도 쇼팽 콩쿠르 관람도 더 이상 ‘반드시 이루어야 할 목표’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면 진짜 나의 버킷리스트는 무엇일까.
여덟, 아홉 살 무렵, 나는 집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시골 분교를 다녔다. 당시에 마이비 카드라고 불렀던 버스 카드를 들고 등교를 했다. 시내버스로 30분 가량을 들어가야 하는 곳이었다. 학교는 자연 친화적이고 친구들도 좋았지만 문제는 버스 배차 간격이었다. 만약 하교 후 버스를 놓치게 되면 2시간 가까이 기다려야 했다. 어린 나에게 그 시간은 무척 길게 느껴졌다. 하교 시간이 되면 학교엔 아이들을 데리러 오는 학원 버스들이 줄지어 서 있는데, 나는 학원 버스를 타는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그래서 뭘 배우는 지도 모르는 채로 합기도 학원에 보내달라며 떼를 썼다.
버스를 놓치는 일이 잦진 않았지만, 어쩌다 그렇게 된 날엔 친구들과 정류장 뒤 작은 개울에서 놀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앞에 큰 농협이 새로 생겼다. 작은 문구점 하나 외엔 별다른 시설이 없던 마을에 들어선 크고 번듯한 건물이었다. 아이들 사이에선 큰 화제가 되었다. 나는 그 때부터 개울에서 놀다 말고 종종 농협에 들어가 정수기 물을 마시거나 에어컨 바람을 쐬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물을 마시던 나에게 농협 직원 한 분이 말을 걸었다.
“집에 안 가고 뭐하니?”
나는 버스를 놓쳤다고 대답했고, 그분은 유리창 너머 정류장을 보며 무슨 버스를 타야 하냐고 물었다. 물꼬를 튼 대화로 나는 버스가 올 때까지 그 직원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후에도 종종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어쩌면 직원 분이 처음 말을 건 건, 건물 안에서 서성거리는 아이를 내보내야 하는 직원의 의무감에서 시작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뒤로도 종종 이야기를 나누며 보냈던 그 시간들이 나에게는 따뜻한 기억으로 오래도록 마음에 남게 되었다.
얼마 전, 친구들과 다녀온 제주도 여행에서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인 캠핑장은 제주도 중에서도 꽤 외진 곳에 있었다. 택시도 잘 잡히지 않는 곳이었고 한적한 시골 동네였다.
친구들과 카페에 있다가 근처 화훼농원에 가기 위해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1차선 한적한 도로에 위치한 낡은 버스 정류장에 앉아있자니 그 때 분교 앞 버스를 기다리던 풍경이 떠올랐다. 10분 가량을 기다리자 버스가 도착했다. 몇 정거장이 지나지 않아 초등학교 저학년 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가방을 메고 버스에 올랐다. 아이가 버스 카드를 찍자 요금이 부족하다는 음성 알림이 들렸다.
아이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버스에서 다시 하차하려 했다. 요금을 찍어줄까를 고민하던 그 때, 기사님은 곧장 그냥 타라며 아이를 다시 불렀다. 그리고 맨 앞 좌석에 자리 잡은 아이에게 카드를 잘 챙겨다니라고, 어디까지 가는 거냐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을 건넸다.
투박한 말투였지만 말에는 분명히 걱정과 따뜻함이 어려있었다. 아이와 기사님의 대화가 몇 번 이어졌다. 나는 이어폰을 빼고 그 대화를 슬쩍 들으며 창 밖을 보았다. 동시에 농협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언젠가 저 아이도 이 순간을 기억하게 될까 하고.
이 경험들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좋게 기억된다는 건 아주 사소한 것으로도 가능한 것이구나. 아주 짧은 인연이더라도, 그런 따뜻한 순간들은 누군가의 삶에 오래도록 남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기억들은 어느새 한 사람을 이루는 삶의 가치관이 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좋은 기억을 남긴 사람이 또 있나 곱씹었다. 몇 사람들이 스쳤다. 나는 그 직원과 버스기사님처럼, 그리고 지금 떠오르는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따뜻한 조각으로 남는 것. 그것들이 독일이나 폴란드에 가는 것만큼이나, 혹은 어쩌면 더 가치 있는 일처럼 느껴졌다. 개인적인 성취를 넘어서 타인의 마음에 잔잔히 스며들 존재로 남고 싶었다. 그렇게 살면서 한 번은 떠오를, 좋은 기억이 될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을 버킷리스트로 삼겠다고 결심했다.
이는 특정한 날에 이뤄지지도 않고 완성될 수도 없는 버킷리스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실현되었는지 평생 알 수조차 없을수도 있다. 그럼에도 그 다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람들과 좋은 영향력을 주고 받으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