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이라는 길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예상대로 흘러가는 구간은 극히 일부이고, 매번 궤도와 경로를 벗어나 제멋대로 흘러가기 일쑤다. 경로를 이탈해 마음속 경고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울 때, 사람들은 각자의 안전지대로 향한다.
『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의 작가 이유리의 안전지대는 미술관과 박물관이었다. 미술관과 박물관이 정적이고 고요한 공간이라서만은 아니다. 그곳에 걸린 그림들도 작가의 인생과 사연을 담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재 ‘위대한 예술가’로 추앙받는 작가와 작품 배후에 숨겨진 이야기를 과감하게 드러낸다. 아름다운 작품 뒤에 가려졌던 ‘불편한 진실’의 언급도 마다하지 않는다. 오히려 책 『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는 불편한 진실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적어냄으로써 과연 ‘삶의 기본 소양’은 무엇인지 성찰하는 장을 만든다.
고통과 아픔을 품은 예술 작품
3부로 이루어진 챕터 중 첫 번째 ‘생의 빛깔’에서는 아픔을 가진 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고통을 예술 작품으로 탈바꿈했는지를 다룬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최초의 여성 곤충학자이자 사이언스 아트계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마리아 지벨라 메리안과 <절규>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표현주의 화가 에드바르 뭉크를 뽑을 수 있다.
저자는 메리안의 작품과 생애를 교차해 언급함으로써, 작품이 탄생하게 된 배경 및 당시 메리안의 상황을 상세히 묘사한다. 작품만 감상해서는 알 수 없었던 메리안의 당시 처지를 상세히 적어 작품이 메리안에게 가진 의미를 짐작하게 한다. 또한 용감한 삶을 살았던 메리안은 당시 지배적인 ‘자연 발생 이론’을 뒤흔드는 과학적 선언을 내리는 작품을 발표했다는 점에서, 메리안의 삶과 그녀의 작품이 무척이나 닮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절규>라는 작품을 통해 대중의 뇌에 각인된 뭉크의 인생을 재조명했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열다섯 살의 나이에 어머니에 이어 누나마저 잃은 뭉크는 그림을 자신의 방패 삼아 인생에 닥쳐오는 부정적인 감정에 맞섰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더이상 뭉크를 <절규>하는 인물로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절규’했던 사람이지만, 결국 절규하게 만드는 자신의 슬픔과 고통을 마주해 싸웠던 <지옥에서의 자화상>으로 기억될 것이다.
지워졌고 가려진 비겁함에 대하여
두 번째 ‘생의 민낯’에서는 저자가 [기울어진 미술관], [캔버스를 찢고 나온 여자들] 등의 전작에서 드러냈던 발굴자의 면모가 잘 드러난다. 내로라하는 유명 작가들의 민낯 속 모순과 위선을 면밀하게 파헤친다.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미국의 국민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폭력’이다. 현대 도시인의 고독과 상실감, 단절을 포착해 화폭에 옮긴 호퍼는 정작 평생 자신의 옆자리를 지킨 아내의 고독감과 상실감, 단절은 포착해내지 못한 사람이었다. 저자는 호퍼와 그의 아내 조세핀의 갈등은 ‘부부싸움’이 아니라 ‘남성폭력’이었다는 사실을 정확히 짚어낸다. 또한 조세핀을 비롯한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왜 가해자에게서 빠져나올 수 없는지를 ‘스톡홀름 증후군’의 예시를 통해 설명한다. 1차적인 호퍼의 그림 감상을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작가의 ‘모순과 위선’을 적극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은 책 『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가 가진 차별성이다.
인간으로서 던져야 할 물음표
마지막 세 번째 ‘생의 깨침’은 이전의 책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저자의 면모를 엿볼 수 있다. 그림에 맺힌 작가의 일생 및 사연뿐만이 아닌, 그림을 바라보는 향유자의 능동적인 해석과 사유까지 담아낸다.
아동권, 지적 장애인의 인권, 동물권, 그리고 마지막에 이르러 타인과 나 모두를 그 자체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확장된다. 책의 말미에 외모 강박에서 탈피해 본연의 나를 받아들인 앤디 워홀의 이야기는 저자의 헌사 속에 등장하는 ‘딸들’에게 바치는 애정 어린 시선이 반영되어 수미상관적 구조를 이룬다고도 볼 수 있다. 저자가 독자와 자신의 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그림 이야기들의 종착지는 결국 ‘사랑’이다.
『나는 그림을 보며 어른이 되었다』는 ‘위대한 예술가’또한 부족한 인간이었다는 사실, 평범한 사람으로서 한계와 좌절을 겪어냈다는 사실을 통해 묘한 위안을 주고, 작품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책을 통해 그림에 관련된 지적 교양 쌓기는 물론 저자가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 끝에 내린 깨달음을 독자로서 함께 고민해 볼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