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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흩어진 빛을 그리다 [미술]

빛이 퍼지는 자리, 색이 남긴 풍경

by 김민주 에디터
2026.10.21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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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오지호, 풍경,oil on canvas,40.9x53cm,1981.jpeg

      오지호, 〈풍경〉, 1981, 캔버스에유채

       

       

       

      태양이 보이지 않는 그림

       

      오지호는 평생 '빛의 화가'로 불렸다. 1938년 「순수회화론」에서 "회화는 광(光)의 예술이다"라고 선언했고, 1930년대의 〈남향집〉에서는 한낮의 햇살과 푸른 그림자를 그렸다. 그런데 세상을 떠나기 한 해 전인 1981년에 그린 〈풍경〉의 하늘은 구름에 덮여 희뿌옇고, 산비탈에도 집 앞에도 뚜렷한 그림자가 없다. 빛의 화가가 말년에 그린 것은 직사광이 아니라 흩어진 빛이었다.

       

      그렇다면 이 그림에서 빛은 어떻게 존재하는가. 답은 반사광에 있다. 우리가 보는 색은 사물이 빛을 되돌려 보낸 결과다. 햇빛이 나뭇잎에 닿으면 초록 파장이 상대적으로 많이 반사되고, 그 빛이 공기를 건너 눈에 들어오면 뇌는 이를 종합해 비로소 '초록'이라는 색으로 인식한다. 색은 사물 자체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빛과 공기, 그리고 보는 몸이 함께 만들어내는 사건이다. 〈풍경〉은 그 사건을 화면 위에 펼쳐 놓은 그림처럼 읽힌다.

       

       

       

      먼 산은 왜 푸른가

       

      화면 위쪽, 가장 먼 능선은 보랏빛이 감도는 군청색이다. 그 앞의 산자락은 청록으로, 화면 아래로 내려올수록 짙은 초록과 연두로 이어진다. 앞산과 뒷산을 가르는 것은 윤곽선보다 색의 차이다.

       

      이 변화에는 물리적 근거가 있다. 공기 분자는 파장이 짧은 빛을 더 강하게 흩뜨린다. 레일리 산란이라 불리는 이 현상 때문에 먼 산을 바라볼수록 공기층에서 산란된 푸른빛이 더해지고, 산의 고유색은 옅어진다. 르네상스 화가들이 경험으로 정리한 대기원근법을 과학의 언어로 설명하면 이와 같다.

       

      오지호는 여기에 자신의 감각을 더한다. 실제보다 보랏빛을 얹은 먼 능선과 노란 기운이 감도는 앞쪽 초록은 화면의 깊이를 만든다. 자연을 옮긴 것이 아니라, 빛이 공간을 만드는 방식을 색으로 다시 구성한 것이다.

       

       

       

      그림자가 없는 빛

       

      하늘이 푸르지 않고 희뿌연 이유도 빛의 성질에 있다. 구름을 이루는 물방울은 공기 분자보다 훨씬 커서 여러 파장의 빛을 거의 고르게 산란시킨다. 이 때문에 하늘 전체에서 들어오는 확산광이 만들어지고, 그림자는 옅어지며 명암의 대비도 줄어든다.

       

      이 빛 아래에서는 초록도 달라진다. 강한 직사광에서 두드러지는 표면 반사가 줄어들면서 나뭇잎의 색은 한층 차분하고 깊게 드러난다. 사진가들이 흐린 날 숲을 즐겨 찍는 이유이기도 하다. 〈풍경〉을 채운 묵직한 초록은 바로 이런 빛의 조건과 맞닿아 있다.

       

      화면 어디에도 태양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먼 산의 푸른 기운과 하늘의 흰빛, 그림자 없는 초록은 구름 너머 태양의 존재를 말한다. 회화를 빛의 예술이라 했던 젊은 날의 선언은 말년에 이르러, 빛을 직접 보여주는 대신 빛이 남긴 흔적으로 빛을 그리는 방식으로 깊어진다.

       

       

       

      눈 속의 혼합에서 팔레트 위의 혼합으로

       

      빛을 다루는 방식의 변화는 붓질에서도 드러난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색을 팔레트에서 충분히 섞지 않고 화면 위에 나란히 놓아, 멀리서 볼 때 눈 안에서 색이 섞여 보이는 시각 혼합을 활용했다. 짧고 촘촘한 붓질로 한낮의 빛을 붙잡은 〈남향집〉은 이 원리에 가깝다.

       

      1981년의 〈풍경〉은 다르다. 붓질은 넓고 두툼하며, 색은 이미 팔레트에서 섞인 채 화면에 올라온다. 하늘과 먼 산에는 흰색이 넉넉히 섞여 있어 명도는 높아지고 채도는 낮아진다. 대기 속에서 풍경이 흐려지는 인상을 물감 자체로 옮긴 셈이다. 빛을 잘게 쪼개던 붓은 이제 공기에 녹아든 빛을 덩어리째 바른다.

       

      차분한 한색의 화면에서 유일하게 튀어 오르는 것은 왼쪽 아래 집 세 채다. 흰 벽 위의 주홍빛 지붕은 화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슈브뢸이 정리한 동시대비처럼 초록과 주홍은 서로를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거대한 자연 속에서 사람이 사는 자리만 난색으로 남겨 둔 선택이 풍경을 경치가 아니라 삶터로 바꾼다.

       

      이 변화는 오지호의 회화관과도 이어진다. 그는 추상미술이 확산되던 시기 구상회화를 옹호했지만, 자연을 그대로 베끼는 재현만을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데포르메, 즉 형태의 변형을 통해 자연을 새롭게 구성하는 가능성을 인정했다. 〈풍경〉에서 산은 세부를 잃고 색의 덩어리로 남지만, 그 색은 여전히 실제 빛의 질서를 따른다. 자연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형태를 고집하는 일이 아니라 빛의 법칙을 놓지 않는 일이었던 셈이다.

       

       

       

      흩어진 빛 속의 안온함

       

      오지호는 일제강점기 창씨개명을 거부했고, 해방 이후 조선대학교 미술과 창설을 이끌었으며, 한국전쟁으로 초기 작품 상당수를 잃었다. 격동의 시대를 지나온 그의 말년 풍경은 젊은 시절의 강렬한 햇빛과는 다른 빛을 보여준다.

       

      구름에 덮인 하늘, 그림자 없는 산, 흰빛에 바랜 먼 능선. 극적인 빛은 사라졌지만 빛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빛은 하늘 전체로 흩어져 모든 것을 고르게 감싼다. 어느 한 곳도 눈부시지 않고, 어느 한 곳도 어둠에 잠기지 않는다. 그 고른 빛 아래 붉은 지붕의 집 세 채가 조용히 앉아 있다.

       

      평생 빛을 탐구한 화가가 마지막 무렵 그린 풍경에서 인상적인 것은 빛이 머무는 방식이다. 태양이 보이지 않는 이 그림은, 오히려 빛이 얼마나 조용하게 세계를 이어 주는지를 보여준다.

       

       

      참고자료

      오지호, 「순수회화론」, 『오지호·김주경 이인화집』, 1938.

      오지호, 「'데포르메'론」, 『조선일보』,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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