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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그 모든 걸음에 성장이 있으니까! - 피크민 블룸 [게임]

거창한 변화가 아니어도, 오늘의 한 걸음이 나를 자라게 한다는 위로에 대한 이야기.

by 황지윤 에디터
2026.10.22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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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크민 블룸을 처음 시작했을 때, 솔직히 조금 우스운 게임이라고 생각했다. 친구의 추천으로 깔아본 이 게임은 그저 걷기만 하면 된다. 내가 걷는 와중에 특정한 걸음 수를 충족하고 나면, 작은 캐릭터 피크민이 화분에서 하나씩 자라난다.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단순한 게임이 하루의 작은 위로가 되어 있었다. 피크민들은 내가 지나온 길의 흔적을 하나씩 지니고 자라난다. 서점을 지나면 책, 경기장을 지나면 야구공, 일식집을 지나면 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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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닌텐도 피크민 블룸 공식 홈페이지

       

       

      길 위의 평범한 풍경이 피크민의 손에 들린 작은 물건이 되고, 아무 의미 없이 지나친 하루가 하나의 모습으로 남기도 한다. 걸음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것 같던 사소한 시간들이, 이 게임 안에서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소중하게 쓰이고 하나도 버려지지 않는다.

       

      나는 오래도록 조급한 사람이었다. 항상 남들보다 느린 것 같아 불안했고, 그 불안 때문에 주변은커녕 나 자신조차 제대로 돌아보지 못했다. 아직 자라는 중인 나무에게 커다란 열매를 바라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정작 나에게는 너무 큰 열매를 기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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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닌텐도 피크민 블룸 공식 홈페이지

       

       

      피크민들이 자라는 그 화분 앞에서는 그런 조급함이 이상하게 힘을 잃었다. 아무리 서둘러도 새싹은 내가 걸은 만큼만 자란다. (물론 걸음 수를 늘려주는 아이템들이 있기는 하지만) 한 번에 몰아서, 혹은 빠르게 걷는다고 갑자기 꽃이 피지 않고, 하루 열심히 걸었다고 다음 날 모든 게 달라지지도 않는다.

       

      대신 아주 조금씩, 그러나 분명하게 자란다. 그 느린 성장을 지켜보고 있자니, 나에게도 같은 속도를 허락해주어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이 게임이 알려준 건 인생이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에 가깝다는 사실이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다 보면 금방 지치기 마련이다.

       

      중간중간 내 상태를 살피고, 내 속도로 오래 걸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나에게 피크민과 함께 걷는 하루의 산책은 그 연습 같았다. 거창한 계획 없이도, 오늘 걸은 만큼의 걸음이 분명히 쌓이고 있다는 감각.

       

      그래서 불안해지는 날에는 그냥 게임을 켜고 걷게 되었다. 미래가 막막할 때 가만히 따져보면 대부분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다. 걷다 보면 그런 생각이 조금씩 뒤로 밀려난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다음 한 걸음뿐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주는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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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피크민 키링을 가방에 달고 다니곤 했는데, 몽골 여행에도 이 키링을 데려갔던 경험이 있다. 여행 내내 같이 다니다 보니 몽골의 사막 바람을 나만큼이나 많이 맞은 피크민도 나처럼 꼬질꼬질해졌고, 결국 씻겨주기까지 했다.

       

      대학생이 되어서 캐릭터 키링을 씻겨주고 있다는 사실이 웃기기도 했지만, 낯선 곳에서도 함께 걷는 존재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든든했다.

       

      돌아보면 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을 아주 거대한 무엇으로만 생각했던 것 같다. 사회가 인정하는 어른이 되는 일과, 내면이 천천히 단단해지는 일은 분명히 다른 문제인데도 말이다. 피크민 블룸은 그 둘 사이에서 허둥대던 나에게, 성장은 생각보다 훨씬 작은 걸음들의 합이라는 걸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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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닌텐도 피크민 공식 홈페이지

       

       

      나만의 길에서 자라는 피크민들과 함께 아직 나 역시 자라는 중인 것이다. 어떤 날은 많이 걷고, 어떤 날은 열 걸음도 못 떼는 날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화분 속 피크민은 그런 날들도 포함해서 나의 하루를 전부 기억해주니까.

       

      오늘도 나는 작은 새싹 하나를 데리고 걷는다. 서두르지 않아도, 지금 내딛는 걸음이 나를 조금씩 자라게 한다는 믿음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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