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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올가을에는 앤 카슨을 읽어볼까요? [도서/문학]

노벨문학상의 계절, 가을이 왔다.

by 윤선주 에디터
2026.10.14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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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10월도 어김없이 서점가 베스트셀러 순위를 노벨문학상 작가의 책들이 점령했다. 뭘 그렇게 유난이냐며 안 좋은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나는 매년 이 시즌이 즐겁다.

       

       

       

      가을은 노벨문학상의 계절


       

      민음사 편집자들이 하는 노벨문학상 발표 중계를 라이브로 보고, 결과를 알자마자 독서 모임 카톡에 “앤 카슨이래요!” 하고 속보를 전하고, 교육청 도서관과 구청 도서관과 동네 도서관 사이트에 들어가 책을 예약하는 그 일련의 과정이 즐겁다.

       

      전 세계가 한 작가의 작품을 1년 동안 함께 즐긴다는 것. 마치 거대한 독서 모임에 참여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모임의 일원이 된 것처럼 작가의 책을 읽게 된다.

       

      그렇다고 매년 읽는 것은 아니다. 누가 수상했는지 정도만 확인하고 읽지 않은 경우도 있고(사탄 탱고가 그랬다), 평소 좋아하던 작가(아니 에르노)가 상을 받았던 적도 있고, 한국 작가가 상을 받아 놀랍고도 기뻤던 순간도 있었다. 올해엔 누가 받을지 예상해 볼 정도로 폭넓은 독서를 해 온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매년 가을이 즐거웠다.

       

       

       

      앤 카슨의 문학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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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작가는 앤 카슨. 나로서는 읽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작가다. 신화를 시로 다시 쓰고, 시 같은 에세이를 쓰고, 에세이 같은 소설을 시처럼 쓰고,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한 작가라고 한다. 글이 어렵다는 말도 많다보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막막하다. 스웨덴 한림원이 밝힌 선정 이유는 이렇다.

       

      “고전 전통과 유희적 대화를 통해 현대문학의 새로운 형식을 창조한, 대담하고 독창적인 작품 세계를 구축했습니다.”

       

      이유를 읽으니 더 어려운 것 같다. 고전 전통과 유희적 대화를 새롭게 창조했다고...? 문장의 구조와 리듬까지도 새롭게 만들어낸 작가라고 하는데 과연 내가 이 작가의 책을 읽어낼 수 있을까. 이쯤 되면 올해는 그냥 포기하자고 넘겨버릴 만도 한데, 몇몇 책이 눈에 들어온다.

       


       

      앤 카슨의 작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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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강의 자서전》(1998)

       

      그리스 신화 속 헤라클레스가 화살로 쏘아 죽인 빨강 괴물 게리온의 이야기를 현대로 가져왔다. 주인공은 헤라클레스가 아닌 게리온. 빨강 날개를 가진 소년 게리온이 아름다운 소년 헤라클레스를 사랑한단다. 이걸 안 읽어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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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의 아름다움》(2001)

       

      제목이 흥미롭다. 남편이 얼마나 아름답기에 이런 제목을 쓴 걸까. 그의 아름다움을 보는 아내의 심정은 어떨까. 행복할까 아니면 불안할까. 주인공인 아내는 너무나 아름다운 남자에게 매혹돼 결혼까지 하지만, 그의 배신으로 결국 이혼하게 된다.

       


      그 무엇에도 충실하지 못했던 

      내 남편. 그럼 나는 왜 소녀 시절부터 우편으로 이혼 판결을 받은 늦은 중년의 나이까지

      그를 사랑했느냐고?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그건 비밀이랄 것도 없다. 나는 아름다움 때문에 그를 사랑했다고 말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그가 가까이 온다면

      다시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아름다움은 확신을 준다.

       

      - 12p (책을 따라 문장을 분절함)
       

       

      사랑과 결혼과 배신과 이별의 과정을 탱고로 쓴 ‘허구’의 에세이라니. 내용은 흥미로워 보이는데 형식이 얼마나 새로울지, 그 새로움이 독서 경험을 얼마나 힘들게 할지가 관건이다.

       

       

       

      중간부터 시작하세요


       

      앤 카슨은 노벨상 위원회의 제니 뤼덴과의 인터뷰에서 입문작으로 ‘빨강의 자서전’을 추천했다. 어떤 책부터 시작하든 상관없지만 많은 이들이 그 책으로 시작한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한 마디를 덧붙인다. “제가 늘 하는 말이지만, 중간부터 시작하세요.”

       

      어려운 글을 굳이 처음부터 꾸역꾸역 읽지 말고, 눈을 사로잡는 문장부터 읽어보라는 뜻일까.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글을 쓰는 작가다운 조언이다.

       

      앤 카슨의 글쓰기 원칙 또한 ‘중간부터 시작하는 것’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은 두려우니 중간부터 시작하라. 작가 지망생에게 해주는 조언도 같은 말이다. “중간부터 시작하라.”

       

      올해 가을과 겨울은 앤 카슨을 읽으며 보내려 한다. 완독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읽어내기 어려운 책에 도전해보는 과정만으로도 즐거움이 있으니까. 읽다가 막히면 중간부터 읽었다가 다시 앞부분을 읽었다가 하며 느긋하게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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