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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닭가슴살을 자주 먹는다.
다이어트를 위해 먹기도 하고, 그냥 닭가슴살이 간편 조리하기 편해서 먹기도한다. 다만 지금까지 닭가슴살을 먹으면서 그 맛을 설명할 때 쓰는 말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촉촉하다', '퍽퍽하다', '부드럽다'.
보통 다이어트를 위해 먹는 닭가슴살을 누가 그렇게 맛을 따지며 먹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오히려 다이어트를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비슷한 음식을 반복해서 먹을수록, 작은 식감의 차이가 한 끼의 만족도를 크게 바꾸기도 한다. 그렇다면 ‘맛있게 먹은 닭가슴살’과 ‘억지로 먹은 닭가슴살’의 차이를 촉촉하다거나 퍽퍽하다는 말만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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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각 해킹』을 읽고 나니 이 익숙한 음식에 조금 낯선 질문을 하게 되었다. 내가 닭고기답다고 느끼는 것은 정확히 무엇일까. 닭고기 향일까, 찢어지는 결일까, 아니면 씹는 힘에 따라 조금씩 풀리는 느낌일까?
음식을 좋아하지만 식품의 조리의 경험은 많지 않고, 화학적 지식도 거의 전무한 수준이다. 그럼에도 예문당에서 펴낸 음식 시리즈 ㅡ 『물성의 원리』와 『사과향은 없다』 같은 책들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이런 류의 책들이 일상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일을 과학적 인과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저자가 다르지만 예문당에서 펴낸 이 책들은 '음식 맛이 어디서 오는가'에 대해서 충실하게 설명해주는 책들이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좋은 향이 난다거나 식감이 재미있다는 감상에, 왜 그런 느낌이 생기는지를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들에서 『미각 해킹』은 좀 더 실무적인 차원 ㅡ 설계와 구현의 문제로 이어진다. 어떤 조건에서 이런 맛이 느껴지는지 알아냈다면, 그 조건을 조정해 원하는 경험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을까?
앞서 말한 개인적인 차원의 경험 덕분에 책에서 특히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닭고기 대체육이었다. '닭고기'를 재현하는 것은 닭고기와 비슷한 향을 내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삶은 닭가슴살을 찢을 때 드러나는 섬유의 방향, 입안에서 결이 풀리는 방식, 촉촉함이 유지되는 정도까지 고려해야 한다.
익숙해서 거의 의식하지 않았던 감각들이 하나씩 재현의 목표가 된다. 그다음에는 그 감각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문제가 남는다. 향이 입안에 지나치게 오래 남지 않도록 하고, 수분감을 유지하고, 튀김옷의 두께와 구조를 조절하는 일. 한 입의 인상 뒤에 생각보다 많은 설계가 있었다.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닭가슴살의 담백함을 재현하는 방식이었다. 책의 설명에 따르면, 중요한 것은 감칠맛을 무조건 약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여러 요소의 상호작용을 조절하는 일이다. 감칠맛을 두드러지게 끌어올리기보다, 다른 감각과 어울리는 강도로 유지해야 한다는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요소 하나하나를 특정 범위에서 유지하는 치밀하게 설계한 음식이, 먹는 사람에게는 별다른 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는 점이다. 나는 ‘자연스럽다’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맛의 설계를 알아차리지 못할 때 '익숙하고 자연스럽다'고 느끼는걸까? 이런 재현 식품에서는 ‘익숙하고 자연스럽다’는 느낌이 맛의 만족을 이루는 중요한 조건이 되는 걸까?
그렇다면 대체육이 겨냥하는 목표에는 고기라는 재료뿐 아니라, 우리가 고기를 먹으며 쌓아 온 감각의 기억도 들어있는듯 하다. 그래서 책을 읽는 내내 흔하게 볼 수 있는 포장지 안의 음식들을 많이 떠올릴 기회가 되었다. 이 부드러움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이 향은 왜 첫입에서 강하게 느껴질까. 식은 뒤의 맛까지 고려했을까.
여기서 ‘진짜’의 기준도 흔들린다. '닭고기'라는 재료와 '닭고기처럼 느껴지는 경험'은 얼마만큼 겹칠까? 재료가 다르더라도 익숙한 결과 향, 수분감을 느낀다면 그 경험을 어떻게 불러야 할까? 물론 비슷한 맛이 영양이나 생산 방식까지 같게 만들지는 않는다. 다만 맛의 경험을 이야기할 때는 재료의 이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남는다. 이 책은 그 부분을 분석하고 구현하려 한다. 식품 비전공자인 내가 관심을 가진 것도 이 지점이었다. 음식의 성분에 대한 설명을 읽다가, 내가 무엇을 먹었다고 느끼는지에 관한 질문으로 옮겨 갈 수 있다.
음식 밖의 조건을 다루는 부분도 재미있었다. 예를 들어, 기내식은 그릇에 담긴 재료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비행기의 낮은 습도와 달라진 기압, 지속적인 소음 속에서 먹어야 한다. 기내 소음을 모사한 실험에서는 단맛의 지각 강도가 낮아지고 감칠맛의 지각 강도가 높아지는 결과가 보고되기도 했다. 같은 음식이라도 어디서 먹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이다. 음식의 맛을 설계하는 일은 결국 그 음식을 먹을 환경까지 살피는 일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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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식을 천천히 즐기는 일을 종종 음악 듣기에 비유한다. 처음에는 한 덩어리로 들리던 곡도 귀를 기울이면 여러 소리로 나뉜다. 멜로디를 따라가다가 리듬을 듣고, 그 뒤에 깔린 악기를 알아차린다. 음식도 비슷하다. 처음 닿는 온도와 향이 있고, 씹는 동안 달라지는 식감이 있고, 삼킨 뒤에도 남는 느낌이 있다. 여기에 그날의 기분과 식탁의 분위기, 함께 먹는 사람이 더해진다. 하나의 맛이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여러 일이 시간 속에서 겹쳐 일어난다.
과학적 설명은 감각을 더 세밀하게 느낄 수 있는 도구가 된다. ‘부드럽다’는 말만으로 지나쳤던 음식에서, 어떤 결이 어떻게 풀리는지 생각해 보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알게 된 만큼 반드시 더 맛있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별로라고 생각했는지 말할 수 있는 범위가 늘어난다. 책을 읽는 재미는 여기에 있었다. 한 끼를 먹는 일이 더 많은 질문을 품게 되었다.
다만 제목과 책에서 반복되는 ‘해킹’이라는 단어에는 여전히 쉽게 공감하기는 어렵다. 책에서 말하는 해킹은 구조를 이해하고 변형해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창조적 개입에 가깝다. 그 취지에는 공감하고, 실제로 책을 폈을 때의 의도와 책의 내용이 딱 맞다. 염분과 당을 줄이면서도 만족할 만한 맛을 만들고, 새로운 원료의 낯선 감각을 조정하려는 시도에는 분명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해킹’이라는 말에서는 작동 원리를 알아내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느껴진다. 나는 특히 기대와 감정, 기억을 다루는 부분에서 그 자신감을 조금 조심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어떤 조건이 맛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과, 그 조건으로 원하는 경험을 안정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다른 이야기다. 익숙한 향을 제공할 수는 있어도 그 향이 각자에게 어떤 기억을 불러올지까지 같게 만들기는 어렵다. 같은 연출에 누군가는 위안을 얻고 누군가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 물론 개인차가 있다고 설계가 무의미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설계의 효과를 이야기할 때는 누구에게, 어떤 조건에서, 어느 정도 작동하는지를 함께 물어야 한다.
마스킹, 전환, 증강, 인식 전환, 인지 해킹, 감정 및 기억 해킹이라는 분류도 그런 관점에서 읽었다. 음식의 어떤 감각을 억제하고 바꿀지, 감각의 전달이나 해석에 어떻게 개입할지 살펴보는 데에는 유용하다. 복잡한 설명에 이름표를 붙여 주기 때문이다. 다만 이름표가 붙었다고 각각의 현상이 깔끔하게 분리되지는 않는다. 기대와 기억, 감정은 쉽게 겹치고 하나의 제품에도 여러 전략이 함께 쓰인다. 개인적으로는 이 분류를 맛의 세계를 완전히 설명하는 체계보다는, 설계할 지점을 찾도록 돕는 실용적인 지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이러한 분류를 통해 '맛'의 구현에 대한 인상을 정리해갈 수 있다.
책의 구성과 설명 방식에서도 이런 실용적인 성격이 느껴졌다. 큰 글자와 여러 이미지는 내용을 따라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렇다고 일반적인 대중 교양 서적처럼 모든 개념을 느긋하게 풀어 주는 책은 아니다. 식품을 설계하는 문제를 따라가다 보면 전문적인 용어와 여러 조건을 함께 읽어야 한다. 그래도 익숙한 음식이 새로운 질문으로 돌아오는 순간들이 있어 계속 관심을 가지고 읽었다. 시각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것과 개념을 이해하기 쉬운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이런 책들이 미식을 즐기는 방법을 넓혀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식에 대한 관심이 방문한 식당의 이름과 지불한 금액으로만 표현되면, 우리가 그곳에서 실제로 무엇을 느꼈는지는 뒤로 밀리기 쉽다. 하지만 닭가슴살 한 조각이나 편의점 음식에도 살펴볼 것은 많다. 어떤 감각을 만들려 했는지, 나는 그 감각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이야기할 수 있다. 비싼 식사를 경험했다는 사실과 함께, 일상의 음식에서 발견한 차이도 대화의 소재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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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을 오래 붙잡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향이 좋으면 한 번 더 맡고, 식감이 재미있으면 천천히 씹는다. 그런데 음식을 즐기는 동안에도 음식은 변한다. 온도가 내려가고, 씹을수록 형태가 무너지고, 처음의 향은 옅어진다. 같은 음식을 다시 만들 수 있어도 그날의 허기와 기분, 함께 나눈 대화까지 그대로 되돌리기는 어렵다. 내가 음식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에는 이 지나가 버리는 성질이 들어 있다. 충분히 느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이미 조금은 달라져 있다는 것.
『미각 해킹』은 맛을 분석하고 설계하는 방법을 보여 주지만, 내가 책을 덮고 식탁으로 가져온 것은 함께 먹는 사람과 함께 관찰하고 질문할 말들이었다. 다음 닭가슴살을 먹을 때는 결이 풀리는 방식을 조금 더 느껴 볼 것이다. 함께 먹는 사람에게는 같은 음식이 어떻게 느껴지는지 물어볼 수도 있겠다. 한 입의 맛을 이루는 조건을 더 많이 알게 되어도, 매번의 식사가 모두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 차이를 조금 더 오래 느끼고,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해 보는 일. 이 책을 통해 내가 얻은 음식의 즐거움은 거기에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