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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눈썹도 마음도 티가 나고 마는 것이 사람인데 - 2026 서울시향 얍 판 츠베덴의 모차르트 ‘주피터’

그 밝음에 내 손이 닿지 않아서

by 장유진 에디터
2026.10.1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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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썹이 짙어졌다. 머리카락은 진갈색에 가까운데, 눈썹만 유난히 까맣다는 걸 처음 알게 된 건 고등학생 때였다. 한동안은 별다르게 신경 쓰지 않고 지냈다. 눈썹도 탈색할 수 있다는 것, 눈동자보다 옅은 색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건 최근에야 알았다.


      이제는 거의 주기적으로 눈썹을 탈색한다. 조그만 원형 통에 담긴 탈색약을 눈썹 위에 올려두었다가 닦아내면, 조금 전보다 옅어진 눈썹이 남는다.


      다시 옅어지고 나면 괜시리 얼굴에 힘을 덜 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습관적으로 미간을 찌푸리던 버릇마저 잠시 잊은 얼굴처럼 인상이 한결 부드러워진다. 나도 모르게 신경 쓰고 있던 모난 부분 하나도 함께 옅어진 기분이 든다.


      참, 원래 색이라는 건 금방 제자리로 돌아온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옅어진 눈썹 사이로 까만 결이 다시 올라온 걸 발견하면 아, 또 이만큼 시간이 지났구나 싶어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옅었는데 어느새 다시 짙어져 있다.


      눈썹이 다시 짙어지는 걸 보며 시간이 지난 걸 알아차리듯, 올해는 서울시향의 정기공연을 따라가며 계절을 셌다. 서포터즈를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가을 한가운데다.


      돌아보면 봄과 여름은 적응하느라, 칙칙폭폭 앞으로 가느라 뒤를 볼 새가 없었다. 그사이 같이 공연을 보는 사람들과도 안면을 텄고, 인터미션이나 밤 9시가 다 지난 시간에 짧게라도 대화를 나누는 일이 이제는 별스럽지 않다.


      어느새 10월이 왔다. 서울시향이 이달엔 무슨 노래를 하려나. 프로그램을 슥- 봤는데, 이게 웬걸. 모차르트가 가득하다. 온통 그였다.


      10월 서울시향의 정기공연은 두 프로그램으로 예정되어 있는데, 두 프로그램 모두 무대에 오르는 곡이 모차르트였다. 이유가 궁금해 월간 SPO 매거진을 펼쳐보았다. 올해가 모차르트 탄생 270주년이란다. 아, 그래서 ‘모차르트 페스티벌’이구나. 선택엔 다 이유가 있다.


      다만 한 가지 사실을 밝히자면, 소올직히 나는 아직 모차르트에게 그렇게까지 끌리진 않는다. 지금까지 만난 작품 가운데 마음 안에 쿡 박힌 곡을 꼽으라면 금방 답이 나오지 않는다. 적어도 내게 찾아온 레퍼토리 안에서는 그 유명세를 온몸으로 납득해본 적이 없었다.


      요즘은 더 그렇다. 날씨는 청명하고 낮 12시 무렵의 공기도 제법 온화한데, 이상하게 나는 설레지도 들뜨지도 않는다. 굳이 방향을 잡자면 마음이 자꾸 뒤로 기운다.


      무언가를 가볍게 좋아할 만한 여유도 잘 생기지 않는다.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이 있고, 적어도 당분간은 풀리지 않을 문제 하나도 마음에 걸려 있다. 누가 따로 괴롭히지 않아도 가만히 있으면 생각이 제 무게를 늘려가는 때다.


      마음이 무거운 날에는 자연히 밝고 가벼운 것보다 애조 어린 노래 쪽으로 손이 간다. 혹은 아예 지금의 버거움과 아무 상관없는, 완벽하게 만들어진 다른 세계 안으로 정신없이 파고든다. 모차르트의 음악은 어느 쪽에도 쉽게 들어맞지 않았다. 하필 지금의 나에게 그의 밝음은 조금 더 멀게 느껴졌다.


      적당히 혼잡한 출근 시간대의 지하철 안에서 팔짱을 끼고 눈을 감은 채, 반쯤 심드렁한 얼굴로 명랑한 선율을 들었다. 근래의 나는 까맣고 군청에 가까운데 음악 안에는 에메랄드와 밝은 노란빛이 가득했다.


      음악을 들을수록 나와 모차르트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벌어졌다. 어찌나 일관성이 있던지 거의 기계적으로 느껴질 정도의 ‘완벽한 미소’가 가득했다. 지금보다 조금 평온한 때에 만났다면 이 밝음을 더 쉽게 받아들였을까.


      그래도 몇 자라도 모차르트에 관해 써야 했다. 잘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조금 더 오래 서 있는 심정으로, 10월의 모차르트를 몇 번이나 다시 들었다.


      10월 7일. 몇 번을 다시 들어도 나는 비슷한 자리만 맴돌고 있었다. 밝다, 매끄럽다, 나와는 잘 맞지 않는다. 이 정도만 붙들고 공연장에 가면 그냥 멍만 때리다 나오겠지 싶었다.


      사실 잠깐의 공연에 뭐 그리 머리를 쓰나 싶겠지만, 같은 음악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들려오는 게 달라지지 않던가. 음악 말고 사람 쪽을 한 번 들여다보기로 했다. 내가 듣기에 밝은 모차르트 말고, 실제로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찾아보고 나서야 내가 알지 못했던 그의 시간들이 눈에 들어왔다. 모차르트가 서른다섯 살에 세상을 떠났다는 것도, 그렇게 화사한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을 작곡한 1775년의 그가 열아홉 살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후에는 잘츠부르크를 벗어나 새로운 자리를 찾아 만하임과 파리로 향했던 시간이 있었다. ‘주피터’를 완성하던 1788년 여름에는 어린 딸을 먼저 떠나보냈다.


      그런 시간들은 음표의 표면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티가 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듣기에는 그랬다. 어떻게 삶의 표정과 음악의 표정이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었을까. 


      나만 해도 글을 몇 줄 쓰면 오늘의 기분이 금세 들어가 버리고, 쓰는 동안에도 감정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모차르트의 음악에서는 왜 그런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없을까. 돌이켜보면 나는, 내가 알고 있던 밝은 얼굴 안에도 어떤 ‘상심’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애초에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처음부터 한 번 들어보기로 했다.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



       

       

      I. Allegro — 빠르게

       

      내가 너무 까만 곳에 있어서 어디 말 붙일 틈도 부족한데, 선율이 자꾸 내 근처를 맴돈다. 가까이 오기는 하는데 끝내 맞닿지는 않는 느낌이 손끝 곳곳에 남는다. 내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데도 바이올린은 딱 그 정도의 거리에서 자리를 뜨지 않는다. 그러니 뭘 하나 구경할 수는 있는 것이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가 그야말로 대화를 하면서 움직인다고 한다는데, 나는 그걸 오냐오냐 지켜보기보다 그냥 아... 가세요? (가든지 말든지.) 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바라봤다. 뭐가 있든 말든 하는 심보로, 내가 없던 그때에도 내가 듣고 있는 이때에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소리가 무슨 말을 하나 들어보시라.


      뭔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고, 멀리 떨어진 채로 그냥 있자. 아름답긴 하지만 내려꽂혀올 정도는 아니고, 흥미롭지만 흥미진진하진 않은 그야말로 보기 좋은 ‘즐거움’을 어깨 위로 받아들여볼지 말지는 내 선택이다.


      지금 기분이라면 이 9분은 그냥 흘려보내겠다. 나도 마침 시간이 필요하고, 저쪽도 예열을 하고 있지 않겠는가? 무엇보다 다음 악장에서는 손끝 하나라도 담가볼 것이 아닌가?


      II. Adagio — 느리게

       

      내가 무뎌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유려한 사운드가 있는데도, 나는 감사한 줄도 모르고 그 생김새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막 너무 얇아서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편안하기만 해서 졸림이 몰려오지도 않는다.


      일단 확실한 건, 이 음악은 나보다 조금 높은 곳에 떠 있고 나는 그 아래쪽 어딘가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도 내가 아직 보지 못한 공간은 생각보다 드넓었다. 손을 뻗으면 언제든 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손을 뻗는 일 앞에 이제는 ‘주저함’이라는 단어를 먼저 세워두고 나니 이 2악장이 오늘의 일이 아니라 옛일만 같아졌다.


      이 2악장은 그 중간 지대 어딘가에 머물며 높기도 하고 낮기도 한 곡선을 가로로 그어낸다. 그 곡선을 보고도 내가 더는 떨리지 않는 지금 이 순간이 반갑고, 가련하고, 마음이 저민다.

       

      III. Rondeau. Allegro — Andante — Allegretto — 론도. 빠르게 — 걷는 빠르기로 — 조금 빠르게

       

      나는 애초에 손끝 하나도 담그지 않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세 번째 악장에 들어와서야, 내가 두 번째 악장에서 젖는 줄도 모르고 느린 속도로 웅덩이 안에 들어가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웅- 하고 빠져 있다가 위로 올라온 뒤에야 알아챈 것처럼.


      모차르트가 어떤 사람인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런데 어느새 내 약지손가락 하나쯤은 그에게 붙잡혀 있었다. 별다른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갈 수 있는 길 하나쯤은 아무렇지 않게 만들어 놓았구나 싶었다.

       

       

       

      모차르트,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I. Allegro maestoso — 빠르고 장엄하게

       

      그의 다른 시간을 조금 알고 다시 듣고 있는데도, 왜 이렇게 씩씩하고, 무슨 기분이든 일단 웃고 있고, 자꾸 발랄한 쪽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단순히 쌓아 올린 아름다움만은 아닌 게 분명한데, 들려오는 편안함이 솔직히 너무 쉽게 다가오니 약간이라도 슬픈 기척이나 마음이 괴로운 흔적이 한 자락쯤 그 안에 있으면 참 좋겠다.


      내가 모차르트를 들을 때면 애초에 나와 다른 가을을 보낸 사람, 나와는 다른 이야기를 듣고 있는 사람을 마주한 기분이 든다. 나는 낙엽이 물들고 저물고 바람 부는 계절에 태어났는데, 날 찾은 모차르트는 늘 봄과 여름 그 사이에 있거나, 겨울을 다 보내고 무럭무럭 자라는 봄의 한가운데에 있거나, 물결치는 여름 파도만 같다.


      그러니까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어줄 수 있고, 아 그렇구나, 하고 긍정해줄 수도 있지만, 네가 왜 그리 말하게 되었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

       

      II. Andante — 걷는 빠르기로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서로의 끝을 받아 이어가는 동안, 음악의 기색이 앞선 악장보다 조금 가라앉자 내 쪽은 그 기울기를 따라 더 빠르게 아래로 내려갔다. 하향선을 타고 흐르다 보면 그 끝에 내가 가 있을 곳은 어디인가?


      몸 한쪽이 축- 하고 늘어져 있고, 머리는 멍한데 걷는 일마저 지겨워지는 때가 있다. 이렇다 할 변명거리도 없어 그냥 뒷걸음만 치고 싶어지는 때. 그럴 때면 울적한 마음 한 가지라도 낙엽 위에서 바스라지면 좋으련만 싶어진다. 이곳이 어디인가?


      그 무엇 하나 명확하지 않은 때에는 내가 애당초 무엇을 할 수 있나 하는 의심도 여지없이 찾아온다. 어느 순간 음악을 한 번 멈춰두고 보니 화면에는 손가락 지문 아래, 옆으로 누운 세모 하나가 있었다. 누르면 다시 이 기분 속으로 들어갈 텐데, 차마 다시 들어가도 되는가 싶은 마음에 한참 머뭇거렸다.


      그러다 결국 다시 재생 버튼을 눌렀고, 내가 있을 곳 자체를 잃어버린 것 같아 나 아닌 곳으로 도망쳐야만 하나 고민하다 보니 어느새 곡은 끝나 있었다.


      III. Presto — 지극히 빠르게


      그런데 3악장은 또 아무렇지 않게 웃는다.


      시종일관 경쾌하고 재치 있게 웃고 있는 곡선을 따라 획을 그어가다 보면 그냥저냥 할 만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모난 대로 해볼 만한 일도 있어 보인다. 꼭 위에서 아래로만 흩날려 내려올 필요는 없으니, 고단한 마음 한자리 가만 내버려둔 채 멍한 얼굴 그대로 자리에 서 있어도 나쁘지만은 않겠다는 생각이 연달아 찾아온다.

       

       

       

      모차르트, 교향곡 제41번 ‘주피터’



       

       

      I. Allegro vivace — 빠르고 경쾌하게 

       

      당당하구나. 가녀리구나. 그 교차와 엮임을 가만 구경하다 보면, 한 곡 안에서도 이렇게 다른 표정이 아무렇지 않게 맞물릴 수 있겠구나.


      모차르트가 무슨 생각으로 이 곡을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연말을 향해 가는 이 시점에서 들으니 이 음악은 나보다 훨씬 ‘살아 있구나.’ 그걸 금방 눈치채고 부러움을 느꼈다. 아- 저렇게 살아 움직이는 모습이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음악만 듣고 있으면 울적한 때가 있더라도 금세 일어날 수 있을 것 같고, 고개가 어느 곳으로 떨어진다 하더라도 모래 한 알에 담긴 밝은 면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괜히 나보다 더 희망차 보이는 느낌. 전진하기 위해 태어난 느낌.


      당장 무슨 말을 보탤 수 없다는 건 내가 가장 잘 안다. 그러니 두 뼘 정도 떨어진 곳에서 그저 이 활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되는 걸까? 이것 참 기뻐해야 하는 일인가? 나의 행복은 어디에 있나? 내 발길은 어디에 닿고 있나? 활기찬 이 음악을 따라가면 되는 노릇인가? 이 밝음에 내 손이 닿을 수 없어 아주 작은 유감을 느꼈다.


      II. Andante cantabile — 걷는 빠르기로, 노래하듯이


      모차르트가 산책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는 듯한 2악장이 찾아온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나 생각하며 그 옆을 따라가 보았다. 그러다 보면 하나의 말 위로 이런저런 생각이 색종이 조각처럼 하나씩 달라붙는다.


      모차르트가 나와 다르다는 건 어디서 느껴지는가? 그냥 우리가 서로에게 접속할 수 있는 세계관 자체가 다른 것 같다. 그가 슬프다 말하면 나는 그게 슬픔인지 잘 모르겠고, 그가 밝은 쪽의 말을 해도 나는 그게 정말 행복인지 잘 모르겠다.


      내 중심축이 명확하지 않은 때에 딱 만나버린 그는 괜히 어려 보이기도 하고, 유리 보관함 속 조명 하나 아래에서 빛나고 있는 도자기만 같다.


      III. Menuetto. Allegretto — 미뉴에트. 조금 빠르게


      몸을 조금 더 흔들어보는 3악장에서도 어째선지 고단함이 길게 남았다. 앞에서 이미 충분히 밝은 길을 걸어온 탓인지, 여기서는 더 덧붙일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니 오래 붙들고 있지는 않기로 했다.


      IV. Molto allegro — 매우 빠르게


      마지막 악장은 조금 다른 의미로 궁금했다. 총 다섯 개의 주제가 복잡하게 얽혀 진행되고, 마지막 코다에서는 그 다섯 주제가 동시에 모습을 드러내는 5성 푸가토가 등장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실제로 들으면서 그중 몇 가지나 셈해볼 수 있을까?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주제는 무엇일까?


      그리고 그렇게 복잡하게 얽히고도 끝내 흐트러지지 않는 이 표정 안에는 대체 무엇이 있을까? 내가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아도 공연장에서 자연히 설득될 수 있으면 좋겠다. 곡이 다 끝나고 나면 왜 그가 잊히지 않았는지 나만의 이유를 덧붙여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저토록 환하고 기쁜 음악을 쓰는 그, 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그냥 그렇다! 뭐, 아직 공연도 안 봤으니까. 눈썹은 또 자랄 테고, 모차르트는 그때 다시 생각해보면 된다.


       

       

      얍 판 츠베덴의 모차르트 ‘주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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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립교향악단은 10월 15일과 16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2026년 시즌 정기공연 얍 판 츠베덴의 모차르트 '주피터'를 선보인다. 얍 판 츠베덴 음악감독이 지휘하고, 바이올리니스트 르노 카퓌송과 서울시향 비올라 수석 강윤지가 협연한다.


      공연은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으로 시작해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를 거쳐 교향곡 제41번 ‘주피터’로 이어진다.

       

       

      Program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

      Mozart, Violin Concerto No. 3 in G major, K. 216


      모차르트,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Mozart, Sinfonia Concertante for Violin and Viola in E-flat major, K. 364


      모차르트, 교향곡 제41번 ‘주피터’

      Mozart, Symphony No. 41 in C major, K. 551 ‘Jup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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