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꽃이 눈에 밟힌다. 햇빛 아래서 반짝이는 길가의 꽃이 예쁘고, 화병에 고이 담긴 꽃이 어여쁘고, 꽃다발 속에 아름드리 담겨 누군가의 품에 안긴 꽃이 아름답다. 틈만 나면 아름다운 것을 찾으려 애쓰는 습관이 든 탓이 아닐까 싶다. 취미로 사진을 시작하고 그게 무르익을 무렵부터 어떤 걸 담을지 생각하며 돌아다니니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것만 좇는 눈을 가져버렸다.
덧붙여 빛을 쫓아다닌다. 고도로 발달한 찍사는 날벌레와 다를 바 없다. 벌레들은 매일같이 밤이 되면 불빛을 찾아 유난스레 날아다니다 빛에 타 바스러지고, 낮의 찍사들은 볕 잘 드는 곳과 그 빛 아래 놓인 아름다운 피사체를 찾아 헤매다 골병이 난다. 허리는 당기고, 다리는 아프고, 손목이 시큰거리고, 여름부터 가을 무렵까지는 뙤약볕에 등이 뜨겁게 달궈지며 땀을 비처럼 흘린다. 그럼에도 마음에 드는 사진 하나 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그 고통은 잊어버린다. 그렇다고 그 상처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요즘은 필름으로 사진을 찍는다. 아버지의 필름 카메라를 우연히 물려받은 걸 계기로 여기에 취미가 생겨서 나갈 때마다 챙겨 다니는 중이다. 처음에는 리코의 SR-10d를 썼다. 다른 카메라도 써보고 싶어서 코니카의 C35 AF2를 샀다. 그러다 집에서 아버지의 니콘 FM2를 발견해서 지금은 이 녀석을 길들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기계식 카메라다 보니 초점부터 셔터 스피드, 조리개까지 하나하나 손으로 조정해 내가 원하는 사진을 찍게끔 맞춰줘야 하는데, 사진을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이 아니라 쉽지 않다. 렌즈도 아직은 50mm 하나뿐인지라 원하는 풍경을 담는 법도 잘 모르겠다. 아이폰으로 찍을 때는 줌으로 당기면 바로 해결될 문제였는데 디지털 기술이라고는 없는 아날로그 쇳덩이랑은 가까워지는 게 영 쉽지가 않다.
무료함과는 꽤 사이가 좋은 사람이다. 이것도 금방 질려버리겠거니 했는데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적어도 1~2년 이상은 필름 카메라로 사진 찍는 걸 손에서 놓지 않을 것 같다. 나는 전기로 빠르게 돌아가는 기계의 모터 소리를 상당히 싫어한다. 그만큼 사람의 손을 타고 맞물리는 부품의 소리를 좋아한다. 조리개를 돌릴 때, 필름을 다시 감을 때, 셔터막이 올라갔다 다시 내려올 때 나는 모든 소리와 내 손을 타고 전해지는 감각이 꽤 중독적이다. 거기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한은 아마 이 필름 카메라라는 물건을 늘 챙겨 다닐 게 뻔하다.
또는 추억이다. 갤러리 앱을 열고 사진을 보는 것도 추억을 되돌아볼 수 있지만 필름은 좀 더 각별하다. 물론, 이건 인화까지 했을 때의 이야기다.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건지려고 부단히도 애쓰느라 근육이 고통받았던 기억과 내 손에 잡힌 사진의 감촉, 오직 필름으로만 구현할 수 있는 특유의 질감과 색감에 담긴 추억이 온몸을 한 번 휩쓸고 간다. 필름에는 겨울날 부엌에서 요리하느라 굳어가는 몸을 녹여주던 가스레인지 불꽃처럼 팍팍해지는 하루하루를 보듬어주는 온기가 남아 있다.
필름을 빛으로 종이를 태워 사진으로 남긴다. 사람은 불이나 열로부터 꽤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끼는 듯하다. 잊지 못할 청춘을 뜨거운 나날이라고 부르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 20대를 젊음의 열기라고 부른다.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산불은 화마라고 부르면서 두려워한다. 사람이 가장 큰 아픔을 느끼는 고통도 화상이라고 들었다. 내 몸에는 작은 흉터가 하나 있는데, 그 흉터를 볼 때마다 다쳤을 때의 모든 감각과 기억이 마치 지금인 것처럼 다시 솟아오른다. 나는 자상이었지만, 화상이었다면 아마 지금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감각과 그때의 순간들은 더 선명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 달에 36번의 화상(畫像)을 입힌다. 작열하는 뙤약볕에 타오르고 남은 재를 모은다. 아름다운 순간이 까맣게 태워버린 그을음으로 그 상처를 덮는다. 이미 흉터가 남아 지울 수 없는 사라지지 않을 화상 자국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을 되새긴다. 어차피 떠올릴 순간이라면, 어차피 남을 흉터라면, 무엇보다도 아름다웠으면 한다. 꽃의 상을 남기고, 되돌아보고픈 삶을 남긴다. 나로 말미암아 남겨질 것들에 흉터라는 이름이 붙더라도 그것들은 결코 흉한 모습이 아닌 아름다운 모습으로 아름드리 피어오를 화상(花像) 자국이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