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치한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시리어스한 음악도 재미가 있지만, 들었을 때 가사라던지 풍기는 분위기가 예전 프리큐어를 떠올리게 만드는 유치한 음악들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밝은 느낌과 순수하고 귀여운 가사를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내가 정의하는 유치한 노래는 병맛 콘셉트와는 또 다른 유형의 노래이다. 투니버스 전성기 시절 TV를 틀면 흘러나올 것 같은, 빠르지 않게 밝은 노래들을 일컫는다.
이런 유치한 노래의 정수를 잘 담아내는 소속사가 있다. 바로 SM엔터테인먼트이다. 최근 NCT WISH가 기존 일본 노래 ‘boy meets girl ‘을 리메이크했는데, SM식 유치함과 아주 잘 어울리는 곡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어 번역판 무대에서도 가사도 너무 아름다워서 요즘 자주 듣고 있는 곡이다. 이처럼 이런 유형의 노래들을 SM엔터테인먼트는 비슷한 감성으로 꾸준히 발매해왔다. 강렬하고 특이한 노래들도 리스너들을 사로잡지만, SM식의 밝은 노래들도 팬덤뿐 아니라 대중들에게 명곡이라 불리며 꾸준히 사랑받아 두터운 지지층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SM식 유치함은 정확히 무엇일까. 단순히 밝고 귀여운 멜로디를 사용하는 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핵심은 감정을 숨기지 않는 데 있다. 사랑한다는 말을 어렵게 돌려 말하지 않고,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하고, 영원했으면 좋겠다면 영원하기를 바란다고 노래한다. 멜로디는 대체로 밝고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으며, 보컬은 지나치게 무겁지 않게 감정을 전달한다. 그래서 처음 들었을 때는 다소 어린 느낌을 받지만, 곱씹어보면 그 안에는 의외로 정직하고 진지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이번 글에서는 남자 아이돌을 중심으로 대대로 내려오는 SM식 유치함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구동방 수록곡이 진짜 명곡이 많거든요
동방신기는 「O-正.反.合.」이라던지 「Rising Sun」처럼 전형적인 SMP를 내는 대표적인 아이돌이지만, 「Hug」처럼 몽글몽글한 노래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동방신기의 보컬적 스펙트럼이 넓다 보니 다양한 콘셉트를 시도할 수 있었고, 그만큼 여러 장르의 곡들을 가지고 있는 아이돌의 교과서이기도 하다.
「Crazy Love」나 「Flower Lady」, 「Love Is…」 같은 곡들은 동방신기 특유의 탄탄하면서 호소력 있는 보컬을 한층 부드럽게 활용한 곡이다. 강한 성량과 화려한 고음이 장점인 보컬들이 오히려 이런 곡에서는 푹신함을 표현하는데에 사용된다. 그래서 사랑에 빠진 남자의 마음을 수줍게 전하는 가사와 만나면 보컬의 또 다른 면이 드러난다.
특히 이런 노래에서는 사랑을 거창한 사건으로 다루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것, 함께 있는 것, 사소한 말 한마디에 설레는 것처럼 아주 작은 감정들을 음악의 중심에 놓는다. 그래서 가사의 내용 자체는 단순하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곡의 분위기를 만든다. 사랑을 지나치게 성숙하고 세련된 언어로 포장하지 않는 것이다.
슈퍼주니어와 함께 부른 「Show Me Your Love」도 빼놓을 수 없다.
“네 전화 속에 수많은 사람
그 속에 아무인 나는 싫어요~!”
이런 가사가 바로 내가 말하는 유치한 노래의 필수 조건이다. 지금 생각하면 조금 간지럽고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 시절의 아이돌 음악에서는 이런 직접적인 사랑 표현이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특히 여러 명의 멤버가 번갈아 가며 가사를 주고받는 방식은 한 사람의 독백보다는 친구들이 함께 사랑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진지한 사랑 노래라기보다 한 편의 청춘극에 가까운 것이다.
내 동년배들 다 꽃보다 남자 좋아한다
다양한 시도를 하며 독보적인 컬러를 가지고 있는 아이돌 샤이니도 SM식 유치함에 빠지지않는 팀이다.
「Stand by Me」는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OST로, 유치한 노래가 가장 잘 어울리는 드라마의 OST가 되었다. 지금 들어도 상당히 직선적인 사랑 노래지만, 그 단순함이 오히려 드라마의 청춘 판타지와 정확하게 맞아떨어진다.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내 곁에 있어달라’는 메시지를 반복하면서 사랑의 감정을 가장 쉽게 전달한다.
샤이니의 경우 이와 같은 밝은 곡에서도 멤버들의 보컬 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감정을 밀어붙이는 대신 멤버들이 한 구절씩 감정을 나누면서 곡 전체가 가볍게 움직인다. 이 때문에 곡의 감정이 특정한 한 사람의 절절한 고백으로 남기보다, 그 시절의 청춘 전체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으로 남는다.
여태 나온 곡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중하지만 듣는 사람들에게는 수줍고 귀여운 사랑 고백인 것이 기분 좋은 유치함의 특징이다.
그래서 그런지 데뷔 초 풋풋함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느낌의 SM식 곡들을 공개하기도 한다.
네게 닿을 듯한 그 입맛춤, 너를 XOXO 매일 꿈에 XOXO
엑소의 「XOXO」는 교복 콘셉트와 딱 맞춰 나온 앨범의 앨범명이면서 앨범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곡이기도 하다. 아이돌 명반 리스트에 빠지지 않는 엑소의 《XOXO》 앨범에 수록된 「XOXO」는 키스와 허그라는 뜻을 가진 제목부터 이미 이 글에서 말하는 유치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꿈속에서 너와 함께한다는 내용의 가사는 결국 ‘내게는 오직 너뿐’이라는 사랑스러운 고백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제목과 가사가 모두 굉장히 단순하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단순함은 음악적으로도 앨범의 교복 콘셉트와 맞물리면서 하나의 세계관을 만든다. 사랑을 복잡하게 해석하지 않고, 좋아하는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다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으로 되돌려 놓는다. 그래서 이 곡의 유치함은 단순한 촌스러움이 아니라 엑소의 풋풋한 이미지를 완성하는 장치가 된다.
풋풋하고 청춘 그 자체를 노래하는 NCT DREAM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사랑한단 뜻이야」는 NCT DREAM의 곡으로, 너와 내가 영원해달라는 소원을 촛불을 불면서 빌어본다는 내용이다.
“함께해 준 모든 날 고맙다는 뜻이야이럴 땐 왠지 난, 왠지 난, 왠지 난, baby
쑥스럽긴 하지만 널 사랑한단 뜻이야”
이 단순한 문장을 NCT DREAM의 목소리로 들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멤버들의 어린 음색과 여러 명이 함께 노래하는 방식이 곡의 감정을 한층 투명하게 만든다. NCT DREAM은 SM 아이돌 중에서도 돋보이는 음색을 가진 보컬들이 있는 팀이다. 그래서 이런 곡에서는 개개인의 보컬이 가진 풋풋함이 편곡의 일부처럼 작용한다. 연말 크리스마스의 몽글몽글함이 느껴지는 따뜻한 곡인 동시에, 지나고 나면 학창 시절의 한 장면처럼 기억되는 곡이다.
그리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SM식 유치함은 라이즈의 「One Kiss」다.
「One Kiss」는 앞에서 이야기한 곡들과는 조금 다르다. 재치 있는 가사나 수줍은 사랑 고백보다는 조금 더 진중하고 운명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깊은 사랑과 애정을 노래하는 곡이라 듣고 있으면 사랑하는 사람이 불러주는 것 같은 망상을 하게 만든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내가 SM식 유치함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 노래는 사랑을 특별한 사건으로 만들지 않는다. 함께 걷고, 바라보고,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 순간 자체를 사랑의 증거처럼 다룬다. 거창한 운명론을 이야기하면서도 결국 도착하는 곳은 ‘너와 함께하는 일상이 좋다’는 아주 단순한 문장이다.마치 거대한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정작 듣는 사람에게는 귓가에서 조용히 속삭이는 고백처럼 들리는 것이다.
이 노래 또한 라이즈가 갓 데뷔하고 1년이 막 지났을 무렵 공개된 곡이었다. 해외에서 찍은 브이로그 형식의 뮤직비디오 역시 이 노래의 풋풋함과 사랑스러움을 배로 만들어준다. 완벽하게 연출된 판타지보다 실제 멤버들이 여행을 다니고 웃고 장난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노래 속 사랑을 조금 더 현실적인 청춘의 장면으로 끌어온다.
우리 유치한 노래 같이 듣자
결국 SM식 유치함은 촌스러운 음악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세련되게 숨기지 않는 방식에 가깝다.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하고, 보고 싶다는 마음을 보고 싶다고 노래한다. 음악적으로는 단순한 멜로디와 반복적인 후렴, 밝은 화성과 따뜻한 보컬을 사용하지만 그 안에 담기는 감정만큼은 꽤 진지하다.
어쩌면 그래서 SM은 오랫동안 이런 노래를 만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시대가 바뀌고 아이돌의 콘셉트가 복잡해져도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만큼은 복잡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세련된 표현과 난해한 세계관 사이에서 잠시 벗어나 ‘나는 너를 좋아해’라는 가장 오래된 문장을 꺼내놓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SM식 유치함이다.
그리고 나는 앞으로도 이런 유치한 노래를 계속 좋아할 것 같다. 조금 간지럽고, 조금 촌스럽고, 그래서 오히려 솔직한 노래들. 듣는 순간만큼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굳이 멋있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음악들 말이다.
그러니 다음에 누군가에게 “너무 유치한 노래 아니야?”라는 말을 들으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래서 좋은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