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밤에 대하여

'밤'을 그리라고 하면 까만 하늘 위 빛나는 별들을 그릴 것이다. 단순하고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봤을 밤의 표준화된 모습이 아닐까.
하루 일과를 마치고 이어폰을 꽂은 후 밤하늘을 올려다보곤 한다. 별생각없이 지나칠 때도 있지만 밤이 찰랑이는 물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혹은 평소보다 짙은 어둠처럼 보일 때도 있다. 그날의 기분과 처한 상황에 따라 밤의 감상이 달라지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그런데 예술가들은 오죽할까.
'추억과 위로를 전하는 밤의 역사'를 101개의 그림으로 찬찬히 알아보기 위해 <화가가 사랑한 밤: 명화에 담긴 101가지 밤 이야기>는 탄생했다. '화가가 사랑한 것들' 시리즈 중 101가지 작품을 모아 화가들의 개성과 숨은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책으로 과연 정우철 도슨트는 화가들의 밤을 어떻게 보여주게 될까?
장 프라수아 밀레 외 열 다섯 명의 화가들의 밤
["The night is more alive and more richly colored than the day. 밤은 낮보다 더 강한 생명력과 풍부한 색채를 가지고 있다."] - 빈센트 반 고흐
가난을, 시대적 상황을 그림으로 대면한 화가들. 죽음 이후에 인정받은 화가들도 있지만 끝까지 자신만의 화풍과 가치관을 고수하며 그림을 그린 것은 열 여섯 명의 화가의 공통된 특징이다. 밤은 대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데, 밤의 아름다운 장면들을 수집하여 설명함으로써 우리가 몰랐던 밤의 다양한 색감과 그 속에 담긴 감정을 깊이 느낄 수 있다. 어둠 속에서 빛이 더 밝게 빛나게 보이는 것처럼 책 속 그림들의 빛은 강렬하다.

[Anne Magill 앤 매길]
추억 속 시간이 멈춘 밤
"그녀의 작품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순간을 포착합니다."
위 작품은 앤 매길의 <자정>이다. 두 연인이 서로의 허리를 감싸며 부둣가 앞에 서 있다. 여인의 옷은 어둠 속에 더 빛나는 노란색이다. 늦은 시간, 여자와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뒷모습이라 두 사람의 표정을 알긴 어렵다. 하지만 표정 대신 뒷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마치 영화 속 남녀 주인공이 산책을 하다가 부둣가 앞에 서 지난 시간을 추억하고 있는 감정이 극대화된다.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기에.
정우철 도슨트는 앤 매길의 작품을 이렇게 해설한다. 앤 매길에게 빛과 인물은 언제나 인생을 탐구하는 데 중요한 주제였고, 그녀의 작품은 시간의 흔적이 쌓여 빛바랜 사진을 보는 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또한, 그녀가 뒷모습을 자주 그린 이유를 얼굴이 나오지 않기에 그 누구의 추억도 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
분명 그림인데 필자는 처음 그림을 마주했을 때 사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과 사진을 분간하지 못할 정도로 작품의 순간에 빠져들었고 그녀의 그림 속 뒷모습들은 얇고 긴 여운을 남겼다.

[Jean George 장 베로]
낮보다 아름다운 파리의 밤
장 베로는 조각가였던 아버지에게 예술성을 물려받았지만, 네 살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그는 화가의 꿈을 꾸며 초기 아카데미 화풍으로 인정받은 레옹 보나의 화실에서 정확한 소묘와 고전적 규범을 철저히 시키는 교육을 받게 된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해 그는 아카데미 화풍의 규격화에 싫증을 느껴 인상주의 화풍으로 전향하고, 평생을 예술에 바치게 되었다.
위 작품은 장 베로의 <술 마시는 사람들>이다. 정우철 도슨트는 장 베로의 작품을 이야기하기 전에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소개했는데, 영화 속에서 예술가들과 조우하는 과정에서 만난 파리의 모습들이 장 베로의 그림과 닮아 있다. 영화에서 시간 여행을 하며 만난 벨 에포크 시대 파리의 일상을 로맨틱하게 그려낸 화가가 바로 장 베로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술이 '압생트'라고 하는데, 엄청난 중독성을 가진 술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압생트 판매량이 와인 판매량을 능가하자 당시 와인 판매자들이 경계하기 위해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말도 있다. 확실한 건 아니지만, 사실 압생트 도수가 45도~74도 사이라고 한다면 쉽게 중독될 수 있다는 건 틀린 말이 아닐 지도 모른다.
밤의 명화를 진심으로 사랑하기에
101가지 작품들 중 필자의 마음에 꽂힌 두 작품만 소개했다.
<화가가 사랑한 밤>은 소박한 농민의 숭고의 밤, 평화가 넘실거리는 따스한 밤, 고독과 상처를 치유하는 밤, 혼란한 도시와 평온한 시골의 밤, 사랑의 꽃이 피는 짙고도 푸른 밤 등 밤의 색채를 다양하게 수집하고 배열했다.
저자가 도슨트인 만큼 그림을 이해하기 쉽게, 그리고 천천히 들여다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어쩌면 난해하여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는 작품을 배경과 도슨트의 감상과 함께 엮어 설명하는 일은 투철한 직업 정신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림을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지 않으면 나오기 힘들다. 명화를 더 빛나게 만들어준 정우철의 밤도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