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 [영화]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悪は存在しない)> (하마구치 류스케, 2023)
글 입력 2024.05.2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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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명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선과 악의 경계는 오래전부터 탐구되어 온 주제이다. 절대적으로 구분되는 선악은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아마 가장 일반적인 입장일 것이다. 무교이며 구조주의적인 관점이 익숙한 나 또한 어느 한쪽만을 골라야 한다면 존재하지 않는다는 편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영화는 이미 익히 얘기된 주제의 지루한 반복일까?

 

하지만 또한 우리는 일상적으로 선악을 구별하며, 미시적인 인간관계에서부터 세계사적인 사안에까지 주체, 행위의 도덕적 차원은 결코 사소하지 않다. 이것이 선이요 저것은 악이로다, 노골적인 선언을 조잡하다고 비웃는 일은 쉽다. 그러나 실은 가장 냉철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판단조차 기저에는 선악을 판단하는 경향이 은연중에 깔려있지 않냐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실제의 세상에서는 도덕의 잣대가 이리저리 걸쳐져 있는데, 조감도를 보면서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명제의 의미를 이해한 척하는 것이 때론 버겁게 느껴진다. 특히 내 안에선 절대 양보 될 수 없는 선한 가치인 것이, 다른 가치와 견주어 우위를 증명할 수 없으며 판단 기준에 따라 저 아래의 우선순위로 강등되기 일쑤라면. 그런 경험의 누적은 무력함을 느끼게 만들기까지 한다. 선악의 모호한 상대성은 가치를 옹호하려는 의지를 꺾어 놓는다.

 

이런 내게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 명제를 단언하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흔히 단언되는 명제의 의미에 닿기 위해 진정으로 사유해 본 적이 있느냐, 그 혼돈을 정말로 감당할 수 있느냐 하는 시험에 가깝게 느껴졌다. 내뱉어진 문장의 가부는 중요치 않다. 중심에 자리한 것은 그 안에 내포된 감각의 체현이다.

 

이 영화는 가장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쉬지 않고 시청각 이미지들이 충돌하고 이탈한다. 그러나 그 긴장과 돌출은 서사를 위해 복무하지 않는다. 청정한 자연이 보존된 외진 산골에 난데없이 글램핑장 건설 계획이 추진된다는 중심 사건을 둘러싸고 인물들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다가, 극의 말미에 갑작스럽게 실종과 살인 사건이 발생하지만, 이 서사는 익숙한 오르막의 지형에 안착해 있지 않다. 오히려 이미지를 통해 고조되는 것은 사건이 이끄는 서사보다는 공백의 무사한 상태이다.

 

가령 이 영화의 이미지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면 절대 빼놓을 수 없을 오프닝 시퀀스에서부터 이런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뭔가를 보기에 앞서 먼저 들리는 것은 잘게 떨리는 드럼 심벌 소리 위로 일렉 기타 리프가 도발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음악이다. 그리곤 잎이 다 떨어진 앙상한 나뭇가지와 침엽수로 균열이 간 하늘이 나타난다. 음악은 서정적인 듯 불길한 듯, 어떤 방향으로든 의미심장한 느낌을 주는 현악기 선율로 이어진다. 완전히 누워 하늘을 정면으로 계속 올려다보며 같은 높이에서 수평으로, 일정한 속도로 이동하는 트래킹 쇼트는 3분을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지속되며 이 흐리고 희끄무레하며 날카로운 겨울 하늘이 끝도 없이 화면 위쪽으로 상승할 것만 같은 노골적으로 이질적인 시점에 관객을 가둔다. 중간중간 난데없이 크레딧을 띄운 검은 화면이 짧지도 않게 끼어드는 것은 이 이질적인 느낌을 더욱 배가시킨다.

 

 

오프닝 시퀀스-down.jpg

 

 

그러다 높은 음량으로 연주되던 음이 채 맺어지지 않고 뚝 끊기는 어떤 순간에 픽스 쇼트로 전환이 일어난다. 갑작스러운 고요와 정지가 발생하는 순간을 모두가 인식할 정도로 충분히 부자연스러운 컷 전환이다. 수평으로 상승하는 이미지에 적응된 눈앞에 곧은 나무들이 수직으로 늘어선 공간이 나타나고, 이내 아이가 화면의 아래쪽에서부터 디디고 올라서며 불쑥 등장한다. 아이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렇다면 이전까지 계속된 의미심장한 겨울 하늘의 이미지는 이 아이의 시점을 나타내는 쇼트였던 것일까?

 

그러나 시종 매끄럽게 이어지던 수평이나 동시에 상승인 운동, 그것만이 인식의 대상이 되는 여백의 쇼트의 집요할 정도의 지속, 그리고는 갑작스러운 단절, 수평과 수직 이미지의 충돌 등, 이 몽타주를 시점 쇼트로 간단히 처리하기엔 모나게 튀어나온 부분이 너무 많다. 눈 쌓인 조용한 겨울 숲을 아이가 자박자박 걸어갔을 뿐인데 이미 관객들은 혼란을 마주한다.

 

영화 내내 이러한 기이하게 이탈하는 시점의 이미지, 충돌하는 이미지들의 몽타주, 반복되는 행위를 파편화하는 시점의 변주와 운동성의 전환 등 매끄럽지 않게 두드러진 지점들이 포진하고 있다. 오른쪽으로 매끈하게 패닝하여 포착한 장작을 패는 타쿠미를 다른 순간에는 왼쪽으로 덜그럭거리며 이동하는 카메라 움직임으로 포착한다. 하나가 수직의 공간에서 하늘을 올려다볼 때 타쿠미는 균열이 간 하늘을 배경으로 가로진 통나무를 내려다본다. 관객은 강한 생명력을 지닌 야생 와사비풀의 시선으로, 다른 어떤 순간들에는 백골 사체가 된 사슴의 시선으로 극 중 인물들과 똑바로 눈을 맞춘다.

 


웅덩이 시점.jpg

 

 

이 간단한 예시들은 극히 일부일 뿐이며, 특별한 사건을 지시하지 않으면서도 긴장과 돌출을 발생시키는 이미지가 거의 매 시퀀스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그렇게 나와 타자, 이편과 저편, 어제와 오늘, 자연과 비자연, 삶과 죽음이 뒤섞인다. 시작과 끝의 무게가 같고, 빛과 어둠의 무게가 같다. 뾰족한 잎과 가지가 드리운 시커멓고 뿌연 하늘이 끝없이 상승하다가 어느 순간 삐그덕거리며 멈추는 엔딩 시퀀스에서 관객은 여전히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한다. 처음과 같은, 그러나 끝없이 확장된 혼란 속에 갇혀 있을 뿐이다.

 

갇힌 속에서 누구도 이러한 감각을 감당하며 살아갈 수 있다곤 감히 말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도덕이 정말로 부재한 혼돈을 우리는 실은 겪어본 적 없다. 인식 이전의 우주가 무질서의 혼돈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은 파악해 낼 수 있는 범위만을 현실로 규정하고 그 위에 질서와 법칙을 부여한다. 정연한 시공간에서 명확하게 초점을 맞추고 앞으로, 미래의 시간으로 걸어가는 것이 정상의 상태이며 그 외는 시정해야 할 오류나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없는 비현실로 밀려난다. 그래야만 현실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극 중 글램핑장 건설 계획 설명회에서 이루어지는 대화는 상류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이 하류에 닿을 때까지 발휘하는 파급력을 고려한 균형이 중요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나는 감독의 인터뷰에서 이러한 주제가 생각보다도 진중하게 다뤄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고 놀랐다. 영화를 볼 땐 대화의 내용 자체엔 크게 힘이 실리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설명회 장면은 길게 이어지며 양측의 입장이 엇갈리는 과정을 세세하게 보여주지만, 담아내는 방식은 건조하다. 객관을 미덕으로 삼는 다큐멘터리보다도 인물의 감정에서 분리돼 있어서, 배우들의 연기도 담담할뿐더러 의미심장한 대사에도 클로즈업 한 번을 허용하지 않는다.

 

 

설명회.jpg

 

 

혼돈 가운데 도덕은 무력하다. 그러나 어차피 본디 존재하지 않는 악을 규정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게 인간이라면, 오히려 무엇이 부재에서 실제로 거듭나고 있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하는 편이 옳다. 선악의 모호한 상대성 앞에 도덕이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는 패배 선언이 도리어 위악이며 기만이다. 그러니 혼돈을 직시한 이후의 균형에 대한 역설은 뻔하지도, 순진하지도 않다. 무의미해 보이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그것만이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선언에 대한 인간적인 답변이 될 수 있다.

 

 

[이명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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