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ject 당신] 비겁해서 쓴다

에세이 큐레이션
글 입력 2024.05.15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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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개와 만나, 아무개와 종일 떠들고, 아무개와 헤어지고 집에 와 노트북을 연다. 지옥철의 숨 막힘이 익숙해졌을 때. 거기서 그러면 안 됐는데, 거기서 말을 왜 그렇게 해가지고. 왜 또 아무개에 상처를 줬나, 아무개를 찝찝하게 만들었나. 뭐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걸, 쓴다. 쓰다 보니 그 말이 왜 상처가 되고 어떻게 찝찝했을지가 공감된다. 그걸 아는 놈이 왜 그런 말을 했나, 후회한다. 그래서 쓴다. 미안해, 잘못했어, 내가 모자라서.

 

 

 

사랑해요, 양희씨 (20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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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아무개는 엄마였다. 우리 엄마는 근사한 사람이다. 날 때부터 동생들 뒷바라지에 헌신 항체를 기른 우리 엄마는, 지금도 남편, 자식, 부모 뒷바라지에 헌신한다. 일상적으로 헌신적이라 하지 말아야 할 말들을 너무 쉽게들 한다. 그중에 내가 제일 쉽게 해서, ‘사랑한다’라는 말이 무섭다. 헌신만 받아놓고는 그 말이 왜 또 그렇게 어렵다. 엄마는 들을 자격이 있는데, 나는 말할 자격이 있나, 모르겠다. 입으로는 힘들어서 글로 말한다. 운이 좋아 공모전서 상을 탔고, 트로피와 작품집을 받았다. 엄마가 잠깐 나간 사이, 식탁 위에 트로피와 작품집 353P ‘사랑해요, 양희씨’를 펼쳐놓고 도망쳤다. 엄마가 카톡으로, 전화로 좋아했다. 좀 많이. 다행이었다. 좀 많이. 좀 많이 좋아한 만큼, 좀 많이 다행이었던 만큼 미안하다. 나는 우리 엄마에 앞으로도 미안해할 거 같다. 나는 그게 좀 슬프다.

 

전문 읽기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8835

 

 

 

우리는 운이 좋았다 (20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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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뉴스를 봤다. 군대 훈련소에서 같은 건물을 썼던 동기가 자대배속 뒤 자살을 했다. 그의 얼굴이 어떤지, 이름은 뭔지 나는 정말 모르는 건지, 기억이 안 나는 건지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같은 방송을 듣고 일어나 같은 얼차려를 받고 같은 밥을 먹고 같은 계단을 밟았다는 사실이 슬프다. 우리 부대였다고 뭐가 달랐을까. 우리 부대에도 따돌림이 있고 폭력이 있었다. 나는 그 친구를 돕고 싶은데, 그 친구가 내 곁에 오면 피했다. 멀어지면 그 친구를 괴롭히는 사람들에 분노하다, 가까워지면 그 친구를 왜 싫어하는지 공감했다. 경계에 서 입만 뻐끔대는 내가 미치도록 한심했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쓴 뒤에 내가 조금은 달라졌던 거 같다. 그 친구가 조금씩 적응해 나갔다. 그게 우연이라면 미안하고, 거기에 내 도움이 있었다면 다행일 텐데. 나는 그 친구에 지금도 자주 미안하다.

 

전문 읽기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8834

 

 

 

쌍방잘못 (20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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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은 친구와 싸웠다. 친구와는 일을 같이 하게 됐다. 역할 상 내가 갑이 됐고, 친구가 을이 됐다. 우리는 친구라지만 일은 일이니까. 싫은 소리를 다양하고 꾸준하게 했다. 히히덕거리다 같이 망하는 것보다 일이 되게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니까. 그러니까 별 죄책감이 없었다. 그날따라 싫은 소리를 조금 더 싫게 했다. 다음날 전화를 받지 않는다. 그 기간이 길어지며 그사이 일이 엎어졌다. 나는 갈수록 화가 나 우리가 나눈 문자와 전화와 대화를 돌아봤다. 남자 새끼가 쫌스럽게 삐져서 잠수나 타고, 라고 씨부렁대다 내가 택한 단어와 어투가 양심에 걸린다. 너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나 때문에 일이 엎어졌다는 걸, 내가 너무 늦게 알았다. 그래서 미안한데, 남자끼리 그 말이 너무 남사스러워 이번 주 마감을 우리 이야기로 때웠다. 내 글을 읽고 웃으며 네가 받은 전화가 나는 부끄럽다.

 

전문 읽기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9144


나 때문에 엎어지고, 상처받을 일들이 슬프다. 그 뒤에 숨어 키보드나 뚜드리는 내가 싫다. 나라는 인간의 정체성이 비겁함으로 굳어가는 시간이 별로다. 둥근 너와 달리 각진 내가 한심하다. 나는 언제쯤 이런 글을 쓰지 않고, 언제쯤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언제쯤 이런 몸짓을 할 수 있을까 막막하다. 저놈은 원래 그러려니, 나중되면 미안하다 하겠지 라고 기다려줬음 하는 바램이, 절박하다. 나는 버려지고 싶지 않다. 나는 아무개와 만나 떠들고 헤어지는 게 좋다. 그래서 나는 비겁하다. 비겁해서 쓴다.

 

 

[윤제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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