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꺼이 끌어안은 어둠으로 만든 빛의 연극 - 오필리아와 그림자 극장 [도서/문학]

아주 작고 낮은 곳에서 시작된 이야기,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
글 입력 2024.04.1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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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오래된 어느 도시에 결혼을 하지 않은 할머니가 혼자 살고 있었어요. 할머니의 이름은 오필리아였습니다. 오필리아가 태어났을 때 엄마, 아빠는 오필리아가 이 다음에 커서 아주 훌륭하고 이름난 연극 배우가 될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이름도 연극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의 이름을 본떠 지어 주었어요. 어린 오필리아는 엄마, 아빠처럼 뛰어난 문인들이 지은 위대한 시어에 흠뻑 빠져 들었지먼,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고는 그게 전부였습니다. 오필리아는 유명한 연극 배우가 될 수 없었어요. 그러기엔 목소리가 너무 작았거든요. 하지만 오필리아는 아무리 하잘것없는 일이라 해도 연극과 관련된 일을 꼭 하고 싶었답니다.

 


미하엘 엔데의 그림책 『오필리아의 그림자 극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야기가 시작하는 위치가 인상적이다. 작고 오래된 도시에 혼자 사는 목소리가 아주 작은 할머니. 오필리아라는 이름을 가졌을 정도로 연극과 연이 깊지만, 결코 그녀는 무대 위에 설 수 없다. 분명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았던 작고 낮은 부분에서 시작되는 오필리아의 이야기는 분명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위치에 머문 채 존재한다. 서사가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위치에 머문다는 것, 그 지점이 주는 울림이 강하다. 


이야기에 관한 공부를 하면 할수록 나의 삶을 더 잘 알고자 하는 마음이 커진다. 꾸며낸 이야기가 어떻게 실제 삶과 연결이 되는지, 만들어낸 것이 어떻게 실존하는 것과 연결이 되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했던 예전의 내가 떠오른다. 하지만 서사란 삶과 연결되기 위해 향하는 그 ‘과정’의 결과라는 것임을 이제야 조금씩 깨닫고 있다. 삶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혹은 더 잘 연결되기 위해서 우리가 선택하는 이야기들은 아주 작고 낮은 부분에서 시작한다. 보는 것만으로 통쾌하고, 기쁘고, 명징한 감각을 깨우는 이야기들이 자주 소비되는 것과는 다른 맥락으로 말이다. 작고 낮은 부분에서 시작되는 오필리아의 이야기는 결코 위로 솟지 않는다. 앞으로 향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서, 겹으로 쌓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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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극장이 문을 닫고 오필리아는 일자리를 잃게 된다. 연극 무대엔 설 수 없어도 연극의 아주 일부에서나마 자신의 자리를 직접 정하며 살고 있던 오필리아는 그 하잘것없는 자리마저 빼앗긴 채 남겨졌다. 하지만 남겨진 그곳, 여전히 작고 낮은 그 자리에서 오필리아는 그림자들을 만나게 된다. ‘장난꾼’, ‘어둠’, ‘외로움’, ‘밤앓이’, ‘힘없음’ 등. 분명 존재하지만, 누구에게도 환영받지 못하고 주목되지 못하는 이름을 가진 그림자들이 그녀를 찾아온다. 그 ‘남아도는’ 그림자들을 모두 받아들인 오필리아는 소외자인 자신을 비롯한 모든 소외된 존재들과 함께 그들만의 연극을 만든다. 


모든 소외된 그림자들을 수용하여 그들만의 연극을 만들던 오필리아에게 마지막으로 찾아온 그림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죽음’이다. 오필리아는 그마저 흔쾌히 껴안는다. 삶의 외곽으로 계속해서 밀리던 오필리아에게도 결국 죽음이라는 삶의 종결점이 찾아왔다. 하지만 죽음을 포용하기로 선택하고 만나게 되는 것들은 빛이라고 할 만큼 눈부시다. 젊은 날의 어떤 것들과도 닮아있다. 쫓겨남의 대상이자 포용의 주체인 오필리아는 끝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에서 새로운 연극을 시작한다. 아무렴 이제 위치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도달점 따위도 중요하지 않다. 


오필리아는 이야기 내내 어딘가로부터 혹은 누군가로부터 쫓겨나게 된다. 쫓겨나서 도착한 곳은 계획했던 삶의 공간은 아니지만, 여전히 삶의 시간은 흐르고 인간의 행위도 계속된다. 그 자발성이 주는 위안이 진정 삶을 살아가는 생명력의 힘과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오필리아와 그림자 극장』이 택하는 서사의 중요한 부분은 삶의 위치가 아니다. 삶이 향하고 있는 그 직선의 어느 부분이 아닌, 삶이 어디에 위치하던지 간에 지금 존재하는 그곳에서 넓혀지는 현재의 공간감이다. 

 

외곽에 위치한 사람의 삶에도 이토록 빛나는 삶의 확장이 있다는 것의 울림이 돌연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는 이제껏 얼마나 달리는 이야기들만을 선망하고 소비해왔는가. 수치로 여겼던 내 삶의 외곽마저 끌어안고 싶어졌다. 사회가, 그리고 내가 명명한 ‘소외된 존재’라는 프레임은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손쉽게 사용된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생각이고, 과연 오필리아 혹은 그림자들을 단순히 ‘소외된 존재’라고만 뭉뚱그려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물론 주류에서 벗어난, 외곽의 존재이지만 그들은 그들 자신을 소외된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그 자리에서 살아낼 뿐이다. 타자와 나의 위치에 대한 비교 판단 따위가 중요하지 않은 그들의 행위들이 진정 삶을 살아내는 존재들이구나, 싶은 생각에 부끄러움과 동경을 동시에 느꼈다. 그들은 소외되었기 때문에 자유롭고, 자유롭기 때문에 빛나는 삶이다. 


기꺼이 끌어안은 나의 그림자들이 가져온 빛의 연극. 오필리아가 직접 살아낸 그녀의 삶이 어떻게 스스로를 구원하고, 또 숨 쉬게 했는지 깊이 생각해보게 되는 경험이었다.

 

 

[차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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