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정답과 오답 사이 [사람]

우리가 지향하는 곳
글 입력 2023.10.13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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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년 수학 과정 내내 나를 괴롭혔던 과목이 있다. 바로 수학이다. 뼛속 깊이 문과계열의 과목을 선호했던 나에게 수학은 가는 길목마다 진로를 막고 선 불량 급우와도 같은 존재였다. '수학' 또는 꼬불탕 글씨를 보고 나면 '에라' 하고는 망설임 없이 유턴해야 했다. 그것이 시간을 절약하는 방법이었다.


왜 싫어했느냐, 자주 틀려서였다. 나는 분명히 문제를 풀어 낼 수식과 방법, 루트들을 모두 알고 있는데도 풀어 보면 결국 오답이었다. 왜 틀렸는가 돌아보면 사소한 계산 실수 때문이었던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수학은 헤아릴 수 없는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을 때 비로소 실력을 얻는 분야라지만, 그것에 쏟아부어야 하는 것들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기에도 바쁜데 굳이 굳이 노력 '씩이나' 할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엔 무궁무진한 길들이 놓여 있으니까.


내가 좋아했던 것은 '이야기를 만드는 일'과 '발에 땀나게 뛰어다니는 일'이었다. 이제 보니 극과 극이다.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이 세상 어딘가엔 분명 존재할 이야기를 내 것인 양 각색하는 일, 그리고 어떠한 것의 성취에 나의 손을 보태기 위해 직접 달리는 일. 그 두 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은 어려웠다. 근데 하나만 하고 싶진 않았다. 앉아서 몰두하다가도 생생한 현장의 열기 속에서 뛰어다니고 싶었다. 앉아만 있기엔 발이 간지러웠고-안 씻은 게 아니다-, 뛰어만 다니기엔 체력이 약했다.


처음으로 찾은 진로는 '드라마 작가'였다. 나는 유독 드라마를 좋아하기도 했다. 아직도 '태양의 후예' 전 회차의 대본을 집에 가지고 있다. 인물들 간에 오가는 대사가 핑퐁 핑퐁, 티키 타카, 재미있었다. 오글거리는 대사와 줄거리도 즐겼다. 그것이 나의 지루한 학교생활을 다채롭게 만들어주는 요소였다.


직접 대본을 써 보고 싶어서 고등학교 방송반에 들어갔었는데, 기대만큼 그리 재밌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봐 왔던 드라마들의 대사를 만들어 내려면, 나부터 드라마 속 인물들 만큼은 살아봐야 되겠다는 생각만 굳건해졌던 것 같다. 경험의 부재는 아이디어의 상실을 낳았고, 아이디어가 고갈되니 글 쓰는 게 재미 없어졌었다. 의무감 속에서 꾸역 꾸역 이어 나가던 방송반 생활의 낙은 장비를 들고 뛰어다니며 학생들의 모습과 이야기를 담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고등학교 생활에서 얻을 건 다 얻었지, 싶을 때 진학 희망 학과를 정해야 하는 타이밍이 왔다. 원래였다면 글 쓰는 과를 지망했겠지만, 방송반 생활을 하다 보니 더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다. 사람과 대면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내가 채워줄 빈 부분이 있는지 물어보고. 그러면서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알게 되리라 믿었다. 그래서 '문화예술경영'을 선택했다.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더 다양한 사람들과 연결되는 능력을 기르기에 딱 적합한 곳처럼 보였다. 아니, 딱 적합한 곳이었을 거다. '코로나'가 터지지 않았더라면.

 

*


뭐 좀 집에 있다 보면 금방 괜찮아지겠지.

 

곧 학교에서 수업 들으러 강의실로 오라고 부르겠지.

 

막연하게 가졌던 확신은 점차 흐려졌다. 연결은 개뿔, 차단이었다. 간단하게, 우리 집 대문이 닫혔고 나의 방 문이 닫혔다. 하필 코로나 환자가 가장 먼저 들어온 지역에 살고 있었다. 연초에 계획했던 여행길조차도 막혔다.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의자 아니면 신발 위가 가장 편했던 내가 침대를 가장 사랑하게 됐다. 누워서 릴스 보고, 심심하면 책이나 보고. 가끔 꽂히는 단어가 있으면 인터넷 서핑에 서너 시간을 그냥 보내 버리기를 밥 먹듯 했다. 답답했다..(쩜쩜쩜)


글쓰기는 종종 했다. 꽂힌 단어에 얽힌 신기한 이야기들을 발견했을 때, 또는 온라인 강의 내용에서 마주한 콘텐츠가 내게 영감을 주었을 때 쫌쫌따리 쓰는 식이었다. 그마저도 모두에게 다 보이는 곳에 쓰진 않았다. 아마 소수의 지인들만이 내가 쓴 글을 보았을 거다. 아무짝에도 쓸모없고 볼품없는 글을.


뛰어다닐 순 없었다. 방 문이 닫혀서. 대신 배달음식에 맛을 들였었다.


그러다 우연히 맛본 커피와 디저트가 주는 포근함과 편안함이 좋았다. 그래, 학교도 못 가는데 다른 거라도 해 보자. 이력서를 들고 여러 카페의 면접을 보았었다. 처음 뵌 사장님들 앞에서 어버버, 하다가 떨어지고. 붙을 것 같았는데 떨어지고. 내일부터 나오라고 해서 좋았는데 대뜸 전화가 와서는 다른 아르바이트생을 뽑았다고 하시는 사장님도 보았었다. 면접의 달인이 될 때쯤 한 프랜차이즈 커피 전문점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게 되었다.


나중에 가서 점장님께 내 면접 그 뒷이야기를 들었는데, 나의 첫인상이 그리 달갑진 않았나 보다. 마른 여대생인데, 아르바이트 경험도 없다고 했고, 가진 것은 반짝거리는 눈빛밖에 없어 보였다고 말씀하셨다. 오래 일할 사람 아닌 것 같았다고. 당장 바쁘니 일단 뽑자 싶으셨던 게 아닐까.


그곳에서 1년 반 조금 넘게 일했다. 정말 많은 유형의 사람들을 만났다. 처음엔 손님의 요구와 매장의 매뉴얼 사이에서 쩔쩔맸는데 날이 갈수록 유연해졌다.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 손발을 맞추는 것도 재미있었다. 오래 일한 동료가 그만두면 조금 섭섭하기도 했다. 아쉽지만 그곳 아니면 다시 만날 방법이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그러다가도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고, 다시 함께 일하다 보면 끈끈한 무언가가 생겨 있곤 했다.


연결되고자 갔던 학교로부터 차단당하고 이젠 길이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또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다 보니 그곳에 새로운 사람이 있었다.

 

*

 

오래 살진 않았지만, 겪은 게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쓰다 보니 길어진다.

 

아무튼, 커피와 정든 동료들도 좋았지만 코로나가 후퇴하면서 학교로부터 다시 나오라는 전갈을 받았다. '다시'라고 하기 민망한 게, 나간 적이 없었는데. 하여튼!


신기하게, 학교에 가 보니 뭔갈 만들어 낸 동기들이 많았다. 학교에서 오지 말라고는 했지만, 또 길이 있었나 보다. 이제 보니 '코로나'는 이유도, 명분도 아닌 '인질'이었던 것 같다. 그냥 나는 조금 공부를 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학교에 있는 사람들은 또 달랐다. 열성적이고, 강한 주장을 가지고 있었다. 유연해지는 법을 막 배웠던 내게 또 다른 새로움이었다. 어릴 땐 주입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고, 사회에서는 흔들리며 조율하는 법을 배웠다면, 학교에서는 비로소 주장하는 법을 배울 수 있겠다 싶었다.


쉽진 않았다. 타인의 의견에 흔들리다 종내는 너덜 해진 나의 줏대-의 찌꺼기-를 발견하는 일이 많았다. 괜히 상처받기도 했다. 아니, 어차피 수용할 생각도 없으면서 왜 반박하는 건지. 그냥 본인 의견만 쓰든가, 나 참.


아직도 주장하는 법은 배우는 과정인 것 같다. 좀 뻔뻔해지긴 했다. 이젠 적시에 배 내밀 줄도 안다.


세상에 정답과 오답이 존재한다고 믿었을 적이 있었다. 수학과 과학의 존재 이유는 답을 찾기 위해서라고 생각했다. 이성과 감정은 분명히 나뉘어 있으며, 사람의 성향은 기다 또는 아니다로 구분된다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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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냥, 포기했다. 확실한 정답과 오답은 없다. 정답에 가까운 오답도, 오답에 가까운 정답도 있을 수 있다. 진짜로 추구해야 하는 것은 옳고 그름이 아닌 호불호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을 확실히 알 때마다 성장하고 나아갈 수 있다. -짚고 넘어가는 건데, 옳고 그름이 중요할 땐 확실히 옳고 그름을 따질 줄도 알아야 한다. TPO는 불문율이다.-


수학과 과학도 다음 세기의 누군가에 의해 다르게 정의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정의할 새로운 '사람'이다. 나는 작은 사회를 하나, 둘, 셋 정도 겪어 보면서 좌절과 실망감을 느꼈었지만 결국 사람에 의해 치유받고 사람에 의해 성장했다. 정정하고 우회하는 것도 방법이다. 길이 꼭 길이 아닐 수도 있다. 아무렇게나 산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쨌든 살고는 있지 않나? 회피가 아닌 새로운 도모를 통해.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들에게 미리 감사한다. 당신들 덕분에 지금의 준비를 버틸 수 있고 미래가 기대된다.

 

 

[유서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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