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대, 나에게 위로의 몸짓을 - 서울세계무용축제, 최수진의 'Alone' [공연]

글 입력 2023.09.1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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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월부터 9월 17일까지 개최되었던 제26회 서울세계무용축제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올해는 한국 포함 9개국(무용단 23개, 무용가 196명)이 참가하여, 과거에서부터 미래까지, 원로부터 신진까지의 무용가들의 공연을 서울 시내 주요 공연장들에서 진행했다.


특히 독일과 한국이 합작한 국제합작 프로그램이나 루시 게린(Lucy Guerin)의 <쪼개진(Split)>, 레스틀리스 장애인무용단(Restless Dance Theatre)의 <노출된(Exposed)>, 시드니의 독립무용가 류이치 후지무라의 솔로 등으로 꾸려진 호주 포커스, 해외 초청 공연과 같이 뛰어난 실력을 지닌 국제 무용뿐만 아니라 국내 무용가들의 높은 작품 수준과 다채로운 라인업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 내가 주목하고자 하는, ‘댄싱9’에서의 첫 출범부터 큰 주목을 받았던, 최수진의 무대도 준비되었다.

 

그녀가 선 무대, 'Alone'은 9월 9일(토)부터 10일(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쿼드(SFAC theater QUAD)에서 공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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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격렬했고, 활기를 띠었다.

 

나는 공연을 즐기는 동시에, 주연이 되는 예술가들을 관찰하기도 했다. 이렇듯 예술에 몰두한 사람을 물끄러미 보고 있자면, 궁금증이 피어오를 때가 있다. 어떻게 이토록 예술에 자기 자신을 맡기고, 혹은 예술 자체를 자신의 몸으로 치환하여 기꺼이 자신을 지우고 예술의 객체가 될 수 있을까? 이렇게까지 이들이 우리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고민을 거듭해도 풀리지 않는 의문에 집중하는 대신, 나는 예술가와 그의 작품을 조금 더 눈여겨보기로 했다. 그녀는 이 공연을 통해 우리에게 공감과 위로를 건네고자 했다.

 

자신을 지워 예술의 객체가 된 그녀가 전달하고자 하는 공감과 위로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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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함을 전달하는 무용가, 최수진



11살에 무용을 시작한 최수진은 예원학교, 서울예술고등학교에서 발레를 전공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실기과에서는 현대무용을 수학했다. 한예종 재학 중에는 뉴욕 앨빈 에일리 학교(Alvin Ailey School)의 장학생으로 선발됐다. 이후 한국인 최초로 3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뉴욕 시더 레이크 컨템퍼러리 발레단에 입단,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단원으로 활약했다.


귀국 후 국립 현대무용단 창단 무용수로 입단, <댄싱9>, <뮤즈 오브 스트릿맨 파이터>에 출연해 현대무용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 2019년에는 런던 램버트 무용단(Rambert Dance Company) 단원으로 발탁돼 한국인 최초로 머스 커닝엄(Merce Cunningham) 탄생 100주년 기념공연에 참여했다. 같은 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장관 표창장을 받았다.


손짓, 눈짓, 몸짓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그녀는 이번 공연에서 개인에게 다소 힘겹게 느껴질 수 있는 감정을 표현한다. 상실감, 화, 무력감, 우울감 등 혼자서는 헤쳐나갈 수 없는 기분을 무용으로 표현함으로써 함께 느끼자고 온몸으로 말한다. 그렇게 그녀만의 위로를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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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무력감으로부터 


 

보통은 부정적인 감정이 생성되면 공감받고, 위로받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녀는 공감받기보다는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공감하기를 택한다. 자신의 몸짓으로, 느꼈던 감정을 표출하는 누군가의 목소리로, 이 모든 것을 하나로 만드는 음악으로, 결국은 커다란 감정의 교류를 선사한다.

 

어딘가 슬프고, 화나 있고, 끝으로 갈수록 행복해 보이는 몸짓은 공연을 이루는 그 외 요소를 포함한 관객들과도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시간이 갈수록 응어리진 감정을 해소하는 것처럼 달뜬 숨을 내뱉었다. 덕분에 나 또한 몰입감과 해방감에 휩싸여, 해소되어 가는 감정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안도에 벅차있었다.


그녀의 현대 무용은 일종의 '한'을 담고 있다. 감정의 스펙트럼이 구분 지어지지 않는 만큼이나 동시대 사람들이 복합적으로 느끼는 문제들, 풀리지 않는 응어리들은 일정한 틀에 가두어지지 않는다.

 

설령 그것이 잘 표현된 하나의 단어라도, AI는 감히 공감하고 이해하고, 설명하지 못할 만큼 어려운 것이므로 우물쭈물하는 AI 대신에 정해진 공간에서, 자유로운 춤으로, 위로의 형상으로 가닿으려 한 것이다. 이러한 창작의 과정을 객관화시키고, 창작의 기반과 결과를 모두 납득 시킬 수 있는 수단으로 인공지능은 기능할 수 있을 뿐이다.

 

또한 공연에서 조명의 역할도 명확했다. 강조할 부분을 강조해 시각화해 주는 것. 'Alone'의 조명은 제각기 다른 물줄기 같았다. 어떤 장면에서는 샤워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 또 다른 장면에서는 수도꼭지에서 콸콸 쏟아지는 물 같았다.

 

조명은 최수진 무용가를 비추기도, 그녀를 깔아뭉갠 천을 비추기도, 감정을 나타내는 단어와 이를 소리 내 말하는 AI를 비추기도 했다. 이러한 조명의 위치를 따라 유려하게 흘러가는 빛과 물 같이, 공연 또한 흘러가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결국 조명과 안무, 인간과 음악은 한 몸임을 공연에서 다시금 느낄 수 있었으며 이 중에 한 가지 요소라도 어긋나서는 안 되고, 어긋나지 않는 영역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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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을 교류하는 무용 


 

개인이 모두의 감정을 이끌어 나가는 것에는 큰 의미가 있다.

 

그녀가 온 몸 바쳐 그리고자 하는 예술의 의도는, 아마 우리가 우리의 몸을 맡겨 그저 따라가는 것일 테다. 다른 말로, 개방성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과 함께 하는 한 우리는 열린 마음과 평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설령 우리가 이해하지 못해도 받아들여지는 유구한 것. 언어 모델이 흡수한 것이 아닌 인간이 가장 잘 전달해 줄 수 있는 것을 따라가며, 다소 쓸쓸하기도 한 위로와 공감을 그녀에게서 받았다.

 

때로는 몇 마디 말보다 한 차례의 다독임이 따스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그녀의 춤으로 충분히 위로받았기를, 그리고 더 많은 이들이 위안 삼기를 조용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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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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