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키워드 인터뷰] 은밀하게 어느 날, '동물원 탈출' - 김소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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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자신의 그림책에 어울리는 키워드를 선정하고, 해당 키워드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인터뷰입니다.
#동물원 #숨바꼭질 #자유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재미있고 유쾌한 그림책을 많이 만들고 싶은 그림책 작가 김소리입니다.
이전에 작업하신 그림책 <정글 버스>의 주인공도 동물인데, 언제부터 동물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어릴 때 꿈이 사육사일 정도로 원체 동물을 좋아했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게 초등학생 때 프로그램 ‘동물농장’이 휴일 이른 아침에 방영했었거든요. 그걸 보려고 알람을 맞춰놓고 일어났던 기억이 납니다.
특히 동물의 어떤 부분을 좋아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동물들이 가지고 있는 형태들이 사람의 형태와는 다르게 그림으로 변형하면 재미있는 이미지들을 만들 수 있어요. 작업할 때 그런 점에 끌렸던 것 같아요.
KEYWORD 1. 동물원
첫 번째 키워드는 ‘동물원'이에요. 동물원은 동물권과 관련된 이슈로 잘 떠오르는 제재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동물원 없이 동물들이 존재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동물원'에 대한 이슈는 바라보는 관점과 방식에 따라 취할 수 있는 입장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멸종위기종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명목으로 운영되는 동물원의 기능을 무시하기 힘든 부분이 있죠. 그런데 우리나라 서식지와 상관없는 동물들이 동물원에 있다면 이건 다시 생각해 봐야 할 문제예요. 그런 명분도 결국 인간의 시각에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해요.
지방에 있는 한 공원에 딸린 작은 동물원에 간 적이 있는데, 관리가 잘 안된 곳이었어요. 병든 악어가 자기 몸만 한 공간에 갇혀있다시피 하고 새들은 날지 않고. 폐허 같은 곳이었는데 그때 동물원이란 어떤 곳인가, 생각했었어요.
관리가 열악한 동물원에 방치된 동물들이 꽤 있더라고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데, 인터넷 카페에서 어떤 동물원을 추천하는 글을 본 적 있거든요. 사진을 보니 동물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보였어요. 그런데 가서 동물을 직접 만질 수 있고 볼 게 많다는 이유로 추천하더라고요. 이렇게 관리가 안 된 곳인데 그저 아이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이유로 데려간다는 게 회의감이 들었어요. 그저 인간 입장에서 동물들이 오락 거리가 되는 상황이 참 안타까워요.
우리가 지금 나눈 얘기를 시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더 깊이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림책이 이 주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시각적인 놀이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동물권이라는 주제를 직접적인 방법으로 다루고 싶진 않았습니다. 단순히 의문만 남겨도 좋을 것 같았어요. 심각한 사회 이슈에 관한 대화는 간단한 의문에서 시작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그림책은 그런 질문을 끌어내기만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특히 그림책은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림책을 보면서 ‘왜 동물원에서 탈출했을까?’ 이 질문부터 시작하면 저희가 앞에서 나눈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이들뿐 아니라, 이 문제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어른들도 함께 생각하는 기회가 되겠죠.
KEYWORD 2. 숨바꼭질
그림이나 형태적인 시퀀스로만 이야기를 파악한다면 ‘숨바꼭질'이 주제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길을 가다가 신호등이나 표지판을 보면서 ‘되게 동물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이 작업의 시작점이었죠. ‘만약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저렇게 몸을 숨기고 살아가는 동물들이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으로까지 확장되었습니다. 이야기에 살을 붙이는 과정에서 동물들이 뜬금없이 숨어있기보다는 동물들이 탈출했다는 구체적인 설정을 넣게 되고, 그들을 좇는 경비원의 존재를 만들어 이야기에 긴장감을 주고자 했습니다.
동물의 형태를 숨기고 드러내는 방식을 고민하셨던 과정이 궁금합니다.
처음 영감을 받은 대로, 건축물이나 구조물에 동물의 형태를 연결하고 맞추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어요. 최대한 동물의 형태를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방법은 무엇일지 드로잉을 계속했죠. 예를 들어 홍학이 나오는 장면은, 다리의 교각 부분을 이용했는데 최대한 홍학의 형태를 살리면서 너무 홍학처럼 보이지는 않아야 하고 다리의 형태감도 잃지 않는 방향을 찾아나갔어요. ‘머리를 어떻게 숨길까, 어떤 방향으로 놓아야 할까, 어떻게 겹칠까’ 등등 생각하면서요.
작업 과정 Ⓒ김소리
경비원은 거의 기호에 가까운 모양이에요.
경비원들 모습이 이렇게 된 데에 관한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이유는 있는 것 같아요. 원래는 사람의 형태에 더 가까운 모습이었는데 그리고 나니까 매력이 없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이미지를 더 매력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그림의 가독성을 해치지 않고 많은 수의 경비원들이 일사불란하게 뛰어가는 느낌을 줄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여러 고민 끝에 일직선으로 동물을 포획하는 이미지를 상상했고, 그런 느낌을 주고 싶어서 수정을 거치다 보니 사람이 점점 그물 형태로 바뀌었어요. 그래서 자세히 보면 경비원들의 손도 두 개를 맞붙잡은 모습이 아닌 하나로 합쳐진 형태예요.
작업 과정 Ⓒ김소리
‘동물들이 동물원에서 탈출하고 경비원들이 찾는다.’ 단순한 내러티브예요. 그런데 여기에 이야기를 더 보탤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처음엔 경비원에게도 작은 이야기를 붙이려고 했어요. 지금은 얼룩말이 담장의 형태를 띠지만 초반에는 의자 형태였거든요. 의자 형태로 숨은 얼룩말에 앉아 쉬고 얘기도 한다는 식의 설정이었죠. 그런데 작업을 진행하면서, 병정들은 계속 동물을 찾기만 하는 방향으로 바꾸게 되었어요. 군더더기를 제거하는 과정이었어요. 그러다보니 그림책 전체가 마치 파도가 일렁이는 것처럼,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까 ‘동물원'에 대해 나눴던 심각한 내용과는 달리 이 책은 참 웃기고 재미있기도 한데, 의도하신 걸까요?
이야기 장르를 굳이 구분한다면 코미디 같은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림책이 가진 기능 중 하나가 그런 게 아닐까 생각해요.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를 정통으로 다루기보다는 독자에게 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것. 저는 그림책은 즐겁게 읽는 매체였으면 좋겠어요.
제목이 아예 ‘숨바꼭질' 이었으면 어땠을까요?
그랬다면 동물원에 대한 주제가 흐려졌겠죠? 반대로 ‘동물들이 도시에 숨는다'는 사실에 초점이 맞춰졌을 것 같아요. 지금 이 제목은 동물들이 숨바꼭질하게 된 이유를 명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인간과 동물이 함께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질 수도 있고, 시각적인 유희도 즐길 수 있는 책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KEYWORD 3. 자유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자유란 어떤 건가요?
내가 딛고 있는 땅의 표면을 느끼고 내가 무엇을 할지 인지한 채 나아갈 방향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는 게 자유가 아닐까 합니다. 내가 나를 인지할 수 없다면 아무리 내 몸이 자유롭다고 해도 그건 진정한 자유가 아닌 것 같아요.
자유라는 주제도 초반에 생각하셨나요?
처음부터 거대한 주제를 갖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어디서 보았는데 한 유명 소설작가는 소설을 쓸 때 자신이 그 이야기에 개입하는 게 아니라 등장인물의 흐름을 좇아가며 집필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것처럼, 저도 동물들과 병정들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좇아가다 보니 이 이야기는 자유까지 말할 수 있는 이야기겠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었어요. 동물원을 탈출한 동물들이 도시에 잠시 숨을 수는 있겠지만 계속 살아갈 수는 없을 테니까, 결국에는 자유를 찾아 떠난다는 결과까지 자연스럽게 이른 것 같아요.
이렇게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는 느낌으로 작업을 했어요. 물론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맞아요. 하지만 작업하다 보면 내가 등장인물에게 길을 제시하는 역할이 아닌, 함께 달리고 호흡한다는 느낌이 더 들어요.
파란색과 보라색, 노란색과 주황색 등이 대비감이 강한 색을 주로 사용하셨어요. 이런 색 때문인지, 미스테리한 느낌이 듭니다. 그들이 어디로 갔을까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눈치채셨을진 모르겠지만 이 이야기는 아침에 동물들이 탈출해서, 밤이 될 때까지 경비원들이 하루 종일 찾아다닌다는 설정이에요. 밤이 표현돼야 하기에 가장 어두운색을 보라색으로 정하고 가장 밝은 시간은 노란색으로 작업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이 그림책에서 자세한 설명 없이 동물들은 계속 도망을 가고 병정들은 계속 쫓아 간다는 암시만 주며 끝이 나요. 목적지가 어딘지는 그들이 알겠죠. 어떻게 보면 허무한 결말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이야기에서 ‘동물들이 끝내 자유를 찾았다!’가 아닌, 자유이되 자유가 아닌 그 아슬아슬한 경계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쉽게 말해 하나의 블랙 코미디죠.
김소리 작가
그림책 재료로 어떤 걸 사용하시나요?
이 그림책 작업을 할 때는 아크릴을 주로 사용했어요. 다음 작업에서는 다른 재료를 사용해 볼까 해요.
주로 작업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나요?
어렸을 때의 나한테 물음을 던지기도 하면서 어른의 시점이 아닌 어린아이의 시점에서 세상을 보고자 노력해요. 그렇게 가만히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그 틈 속에서 이야기가 보여요. 그럼 그걸 붙잡아 정교하게 다듬어 나가는 것 같아요.
작업을 하며 좋은 점과 나쁜 점은 무엇인가요?
나쁜 점을 먼저 꼽자면 아무래도 혼자 하는 작업이다 보니 고립되기도 쉽고 길을 잃거나 해매이기도 쉽다는 점인 거 같아요. 그리고 수익이 불규칙하다는 것도 나쁜 점에 한몫하는 거 같습니다. 좋은 점은 제가 만든 이야기를 누군가가 읽어주고 좋아해 준다는 점 같아요. 내가 만든 작품이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작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자 나쁜 점을 상쇄해 주는 방파제인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는 작가가 되고 싶은가요?
아직까지는 재미있고 톡톡 튀는 그림책을 더 만들고 싶어요. 그림책을 계속 접하면서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읽어준 그림책들을 마주할 때마다 묘한 흥분감과 향수를 느껴요. 그러면서 ‘아, 그림책은 부모가 아이에게 읽어주는 책이기도 하지만 그 아이가 커서 부모가 된다면 다시 내 아이에게 읽어줄 수 있는 대물림 같은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책도 그렇게 계속 넘겨주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좋아하는 그림책 한 권 추천해 주세요.
아라이 료지의 <버스를 타고>라는 책을 좋아합니다. 그림책을 처음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 접하게 된 책이었는데 나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거 같아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처럼 펼쳐지는 이야기는 몇번을 봐도 질리지 않아요.
작가님의 다음 작업은 어떤 그림책이 될까요?
겨울에 관한 이야기를 작업 중입니다. 지금까지의 작업과는 다르게 다음 작업에서는 동물이 등장하지는 않고 눈이 내리는 순간에 대한 이야기예요. 어떤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해 주세요!
나에게 그림책이란?
제 인생의 전환점. 자포자기하던 방황의 순간에 나타난 선물 같은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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