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철학과 예술과 일상을 사랑하는 안무가와의 수다 - 펜으로 쓰는 춤

김윤정 안무가의 <펜으로 쓰는 춤>을 읽고
글 입력 2023.07.14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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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으로 쓰는 춤 표지.jpg

 

 

대학교 신입생 시절 "무용의 이해"라는 교양 수업을 들었었다. 수업 시간에 처음 본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던 안무가의 몸짓은 아직도 생생하다. 무용수의 몸짓이 충격적이게 강렬해서 문자 없이도 인간의 몸이 얼마나 한계 없이 표현할 수 있었는지 놀랐었다. 온몸으로 감정을 쏟아내는 단 한 번의 순간. 안무가들은 춤을 추면서 무슨 생각을, 또는 생각을 하지 않을까 늘 궁금했었다.

 

김윤정 안무가의 에세이 <펜으로 쓰는 춤>은 한국과 독일을 넘어 전 세계를 무대로 창작 활동을 하면서 그녀가 보고 느끼고 생각해온 것들이 담겨있다. 나 또한 철학과 여행과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녀가 풀어내는 사유에 공감하는 일이 즐거웠다.

 

"... 실존주의 작가들이 나의 의문의 실마리를 풀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은 원래 부조리하고 의미 없음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인생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무의미하며, 자신이 주체적으로 인생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그간의 정신적 방황은 일단락 지어졌다." 120p

 

그녀는 실존주의 철학을 통해 유년 시절 품었던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들에 답을 찾았다고 한다. 그 답은 "답 없음"이었다. 실존주의 철학은 내게도 우울과 무기력을 이겨내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남들은 저마다의 목표를 가지고 달려나가고 있는데 혼자만 길을 잃은 것만 같은 때가 있었다.

 

눈에 보이는 성취가 없으면 인생이 무의미하게 느껴졌을 때 만난 실존주의는 내가 존재하는 실존 그 자체가 의미라고 말해주었다. 거창한 꿈이나 목표가 없어도 존재하는 것 자체로 충만한 의미가 된다고. 철학을 통해 인생의 질문을 해결해나가는 그녀의 생각들이 글에 담겨있어 반가웠다.

 

에세이를 읽는 즐거움 중 하나는 나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똑같이 일상을 살아내는 한 인간으로서 작가와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일이다. <펜으로 쓰는 춤>을 읽으면서 에세이를 읽는 즐거움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이자벨 위페르 주연의 영화 <다가오는 것들>에 대한 글을 읽을 때는 "저도 이 영화 인생 영화예요! 10번도 더 봤어요!"라고 말하고 싶었고, 인도 여행에 대한 글에서는 21살에 첫 배낭여행으로 떠났던 인도 여행이 떠올랐다. 작가가 무인도에서 가져갈 책으로 고른 페르난두 페소에의 <불안의 서>는 꼭 읽어보리라 다짐했다. 

 

책을 다 읽고 마치 김윤정 안무가와 즐거운 수다를 떤 기분이었다. 사랑하는 철학가들, 책과 영화들, 영감을 주는 예술가들, 여행에서 만난 순간들, 그녀와 가까운 가족과 지인들의 이야기, "No Wi fi, Talk to Each Other(와이파이 없음. 서로 이야기하세요)"라는 사랑스럽고 앙큼한 팻말이 걸려있는 자주 가는 동네 힙스터 카페의 분위기까지.

 

그녀가 열거해놓은 행복을 떠올리는 순간들은 특별한 순간들이 아니다. 집안 가득 햇살이 들 때, 가슴에 와닿은 문장들을 책에서 만날 때, 낯선 거리를 걸을 때, 좋아하는 사람의 특유의 행동을 바라볼 때 등. 

 

특별하지 않은 순간들에 행복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작가의 삶은 특별하지만 특별하지 않은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 무대 위에서도 무대 밖에서도 일상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눈을 가진 그녀의 문장들은 밝고 투명하다.

 

"현실 세계로 돌아간 나는 여름날 공원을 산책하다가 그늘에 앉거나 누워서 보이는 세상을 관찰한다. 또 길을 걷거나 카페에 앉아서 보이는 광경과 소음들을 즐긴다.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사랑하고 증오하는 삶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렇게 일상이, 세상이 완벽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에 놀란다." 19p

 

 

 

에디터 명함 최은지.jpg

 

 

[최은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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