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3분만에 뚝딱! 순식간에 지나간 마크 제이콥스의 런웨이 [패션]

글 입력 2023.07.13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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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컵라면이 익는 시간 혹은 특정 브랜드의 간편 짜장이 생각나는 시간, 마크 제이콥스의 런웨이에 걸린 시간은 오직 '3분'이었다.


마크 제이콥스는 누구보다 실용적이고 상업적인 파슨스의 뉴욕패션을 잘 이해하고 있는 디자이너이다. 페리 엘리스에선 'Grunge' 컬렉션을 선보여 현재까지 회자되는 그런지룩을 하이패션계에 처음 제시하였고, 루이비통의 디렉터로서 16년간 활동하며 보수적인 매니아들의 호불호와는 별개로 루이비통 백을 지금의 '모두의 명품'으로 상업화시킨 장본인임은 틀림없다.


코로나 팬더믹 기간에는 자신의 방에서 마크 제이콥스의 화보를 촬영한 그는 이번 런웨이 역시 패션계에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였다.

 

 

 

마크 제이콥스의 '3분 런웨이'


 

〈MARC JACOBS RUNWAY FALL 2023〉

 

 

코로나 팬더믹 이후 그의 가을 런웨이는 항상 뉴욕 공립 도서관의 대리석 로비에서 진행되었다. 역시 같은 장소에서 이루어진 이번 런웨이는 몇 가지 특별한 이벤트를 가지고 있었다.


먼저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한 런웨이는 3분 후 7시 33분에 마무리되었다. 런웨이는 피날레를 장식하듯 29명의 모델이 함께 한 방향으로 워킹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구성되었다. 그 후 관객에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 잠깐 주어졌으며 마크 제이콥스의 마지막 인사와 함께 쇼는 마무리되었다.


평균 10분에서 20분가량 진행되는 런웨이와 달리, 각각 모델과 컬렉션에 대해 제대로 판단할 시간조차 없던 이번 런웨이에선 평론가의 역할을 대신하는 특별한 친구가 함께하였다. 바로 ChatGPT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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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웨이 좌석에 배치된 쇼 노트>

 

 

많은 디자이너는 런웨이가 시작하기 전 자신의 의도와 취지를 담은 쇼 노트를 런웨이의 게스트와 기자에게 전달한다. 이번 마크 제이콥스의 런웨이에서도 쇼 노트가 지급되었는데 놀랍게도 작성자란에 "OpenAI, ChatGPT"를 확인할 수 있다.

 

ChatGPT가 작성한 쇼 노트는 남성적인 테일러링과 여성적인 우아함의 놀라운 융합이라고 그의 런웨이를 명명하고 여성을 위한 남성 테일러링과 플랫 슈즈, 블랙타이즈 등 콘셉트에 대한 설명이 기록되어 있다.

 

언뜻 보면 꽤 탄탄하게 작성된 쇼 노트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소개부터 그의 런웨이가 남성복의 테일러링과 여성미를 혼합한 혁신적인 접근법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고 미리 결론지었으며, 쇼 노트에 쓰기에는 지나치게 경직되고 어색한 문체를 가지고 있고, 단순히 콘셉트에 대한 단락과 결론이 반복되어 이어져, 다양한 디테일에 대한 설명 역시 결여되어있다.

 

하지만 추후 기사를 통해 다시금 그의 컬렉션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마크 제이콥스의 '3분 런웨이'에서는 평론가마저 자신의 눈이 아닌 AI가 만든 '조악한 쇼 노트'에 의해 정보를 이해해야만 하였다.

 

 

 

어쩌면 가장 현대적이며, 어쩌면 가장 전통적이다.


  

최근의 패션쇼를 상상해 보면 여러모로 과거의 패션쇼와 많이 변질한 것을 알 수 있다. 웅장하고 정교한 세트와 수십명의 오케스트라의 라이브 음악, 80명이 넘어가는 모델은 패션쇼의 '명시적인 크기'의 성장을 체감하게 한다.

 

또한 프런트 로우에 수십, 수백에 인플루언서가 앉아 그들의 행동, 패션이 런웨이 자체보다 파급력을 가지게 된 것은 이미 오래된 이야기이며 이들을 위한 시간으로 인해 예정된 시간에 시작되는 런웨이조차 보기 드물어졌다. 특정 셀럽과 인플루언서는 직접 모델이 되어 부족한 실력에도 콜라보에 가까운 바이럴을 선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마크 제이콥스의 이번 런웨이에서는 모델의 워킹조차 선보이기 부족한 시간으로 인해, 엄청난 크기의 패션쇼와 수많은 인플루언서를 위한 공간과 시간은 모두 제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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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이사의 의류 공장>

 

 

이번에는 최근의 패션에 대해 생각해 보면, 과거 H&M, ZARA 등을 일반적인 패션과 구분하기 위해 존재하던 개념은 '패스트 패션'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패스트 패션은 SPA브랜드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의 하이패션 브랜드의 런웨이를 보고 그 제품을 구매하기까지는 반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2016년 이후 몇몇 하이패션 브랜드는 런웨이를 보고 즉시 제품을 구매 할 수 있도록 변화하였고, 런웨이가 홈쇼핑이 되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재 대부분의 하이패션 브랜드에서 이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다.

 

또한 하이패션의 모델의 수가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지는 이유는 소셜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 많은 하이패션 브랜드는 현재 패스트 패션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콜렉션을 제작하고 콘셉트를 소비하며, 하나의 아이템이 SNS를 통해 바이럴되기를 기대하고 수많은 제품을 선보인다. 즉 패스트 패션의 비판에 앞장섰던 하이패션은 어느새 그들과 전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변화하였다.

 

마크 제이콥스는 30명이 되지 않는 모델과 컬렉션으로 이러한 하이패션의 변화를 꼬집는다.

 

즉 마크 제이콥스의 런웨이는 가장 현대적인 시간과 가장 현대적인 기술을 활용하였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패션쇼와와 패션의 전통에 가까운 런웨이를 선보인 아이러니를 보여주었다.

 

 

 

소비되는 문화, 짧아지는 콘텐츠


 

'틱톡', 인스타그램의 '릴스', 유튜브의 '쇼츠', 콘텐츠는 최근 끊임없이 '짧아지고' 있다. 이번 마크 제이콥스의 런웨이 역시 이러한 콘텐츠에 영향을 받았으며 또한 인스타그램의 '릴스'로 업로드되어 있다. 범람하는 콘텐츠 속에서 짧은 시간으로 쉬운 접근성과 핵심만을 보여주는 간결성, 간단한 조작성을 가지고 있는 '숏폼' 콘텐츠는 현재 모든 문화에서 메인스트림으로서 활약하고 있다.

 

이러한 효율성과 습관적 소비성에 기반한 극단적인 숏 콘텐츠는 가장 현대적인 문화 소비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한 화에 한 시간 정도를 수 십편씩 송출하던 드라마와 애니메이션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으며 영화계와 출판계 역시 유례없는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소비 현상은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혹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우리의 사고와 생각 과정에도 영향을 주었다. 우리의 활동과 빅데이터를 교집합해 선별된 정보가 자동 재생되는 콘텐츠에는 우리의 사유가 들어갈 장소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의 사유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해지며 우리는 자연스럽게 '생각하기'를 포기하게 된다. 즉 우리의 눈앞에 흩뿌려지는 수많은 정보는 우리의 눈앞을 지나갈 뿐 우리의 머릿속에서 헤엄치지 못한다. 이로서 생각하기를 포기한 현대인에게는 여러가지 문제가 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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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가 많아지고 콘텐츠를 재현하는 기술력이 특히 AI를 통해 날마다 현실에 더욱 다가가며 우리에겐 그에 맞는 디지털 리터러시의 수준이 요구되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리터러시에는 해당 콘텐츠가 사실인지 구별하는 것이 포함된다. 최근 1200만 회의 유튜브 조회수를 기록하며 쟁점이 된 축구 인터뷰 영상이 있다. 바로 AI로 TTS를 합성해 만든 "이강인 무시하는 일본기자 질문에 응답하는 음바페"라는 영상이다.

 

잠시만 생각해 봐도 거짓임을 알 수 있는 영상이지만 해당 영상의 조회수와 댓글은 현대인의 디지털 리터러시의 한계를 알려주며 혹은 그들은 '사실'이 중요하지 않은 '환상' 속에서 콘텐츠를 소비하길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마크 제이콥스의 이번 런웨이에서도 모피 사용 금지를 외치는 여러 명의 환경 운동가가 뉴욕 공립 도서관 옆에서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그들의 시위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마크 제이콥스의 이번 런웨이에서는 아무런 모피도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과 그로 인해 그들의 외침에 아무도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런 이유를 알 수 없는 '환상' 속에 갇힌 시위대와 마크 제이콥스의 'AI 쇼 노트'를 통해 무분별한 정보수용이 당연해진 현대인을 꼬집은 '3분 런웨이'와 어우러져 이 쇼의 아이러니에 대미를 장식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신효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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