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법정에 선 현대미술, <코미디언>의 표절 공방 [시각예술]

글 입력 2023.06.1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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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Comedian), 2019> <이미지 출처> Washingtonpost

 

 

2019년 12월 마이애미에 붙어있던 작은 바나나는 놀랍게도 예술계를 벗어나 전세계를 뒤흔드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바로 현재 7월 16일까지 서울 리움미술관에 전시되는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의 작품 <코미디언(Comedian)>이다.

 

 

 

테이프로 붙힌 바나나, 그 작은 도화선에 대하여



항상 논란을 몰고 다니는 예술계의 악동, 마우리치오 카텔란은 작품 <코미디언>을 아트바젤 마이애미 비치에 전시하였다. 작품에 대한 호불호와는 별개로 해당 작품은 전시되는 순간부터 예술계를 넘어 주류문화의 대중을 논쟁에 장으로 끌어들였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이 탄생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거론되던 이 논쟁은 작품의 이름처럼 '코미디'하게 다시금 세상의 화두에 올랐다. 12만 달러로 두 점, 마지막 작품은 15만 달러로 총 39만 달러에 판매된 <코미디언> 세 점은 설치에 대한 가이드와 진품인증서를 함께 지급하는 방식으로 전달되었다. 이 소식은 아트 페어에서 <코미디언>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바나나라는 이름으로 관람객에게 인식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코미디언>은 순식간에 '테이프로 붙힌 바나나의 가치'가 12만 달러로 측정되는 예술계에 풍자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벨벳 로프로 통제가 이루어질 정도로 인파가 몰린 마이애미의 작은 바나나를 앞에 두고 누군가는 '최고의 작품'이라고 찬양하고 누군가는 '예술이 아니다'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특히 전시가 된 지 사흘이 되던 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 바나나는 배가 고프다고 하는 누군가의 입 속에 들어가며 자신의 놀라운 숙명을 마쳤다. 바로 자신의 행동을 'hungry artist(헝그리 아티스트), 2019'라고 소개한 행위 예술가 데이비드 다투나(David Datuna)이다. 그는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수백만명의 기근을 보고 12만 달러에 바나나가 판매된 것에 회의감을 느껴 이 같은 행동을 하였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바나나가 사라진 지 몇 분 지나지 않아 다시 <코미디언>은 새로운 바나나로 만들어지고 이 소동은 끝을 맺게 되었다. 이 소동은 예술에 원본성과 본질에 대한 논쟁을 이끌어내며 또 한번 세상에 충격을 전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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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BBC

 

 

이렇듯 전시되자마자 충격적인 사건을 이끌어낸 <코미디언>은 SNS를 통해 전파되며 논쟁에 중심에 서게된다. <코미디언>은 하나의 밈(Meme)으로서 여러 사람과 예술가, 기업은 벽에 붙은 바나나를 모티브로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작품과 <코미디언>의 차이는 무엇이며 그 차이가 12만 달러의 가치를 지니는 지에 대한 논쟁을 확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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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지하철의 한 모습 <출처> Artnet News

 

 

 예술계를 넘어선 <코미디언>의 논쟁은 사회적인 반향을 야기했다. 마이애미 청소 노동자들은 "플라타니토 시위"라는 운동을 진행하였다. 그들은 보라색 유니폼에 바나나를 테이프로 붙히며 <코미디언>은 청소 노동자들의 격렬한 노동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그들은 작은 바나나의 가치와 자신의 가치를 비교하였는데, 아침 청소 근무를 마치고 시위에 참여한 펠리파 카르데나스(Felipa Cardenas)는 마이애미 뉴 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요? 분명히 바나나 한 개가 우리보다 더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라고 답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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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의 한 장면 <출처> Artnet News


 

 

코미디언의 표절 공방, 바나나는 독창성을 인정받았다



 미국 마이애미의 미술가 조 모포드(Joe Morford)는 22년 자신의 'banana & orange, 2001'를 마우리치오 카텔란이 표절하였다고 소송하였다. 그리고 올해 미국 플로리다 남부 지방법원 판사 로버트 N. 스콜라 주니어는 6월 9일 판결에서 카텔란의 약식명령 신청을 받아들여 사건을 종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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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측 작품 'banana & orange, 2001' <이미지 출처> 사건 판결문에서 발췌

 

 

스콜라 판사는 두 작품의 유사성이 불충분하고, 카텔란이 자신의 작품을 보고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모포드의 주장이 설득력이 없다며 저작권 침해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하였다. 스콜라 판사는 판결문에서 "<코미디언>은 사용된 바나나, 바나나가 놓인 각도, 배경에 테이프로 붙이는 방법, 배경 자체, 코미디언의 디스플레이를 위해 카텔란이 개발한 엄격한 기준 등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라고 결론지었으며 "그렇지 않다고 판단하면 모포드의 저작물을 침해하지 않고 합법적으로 바나나를 벽에 테이프로 붙일 수 있는 방법은 한정될 수 밖에 없습니다."라고 덧붙혔다.

 

또한 스콜라 판사의 판결문은 모포드의 주장의 근거가 된 두 가지 형식적 유사성, 즉 각 작품의 바나나가 수직면에 부착된 각도와 접착 테이프가 바나나를 가로지르는 각도에 대해 매우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스콜라 판사는 "바나나를 벽에 붙일 수 있는 각도는 매우 다양합니다(정확하게는 360도, 도 단위 이상으로 세분화하지 않는 한), 하지만 그런 미세한 구분을 하는 것은 법원에서 벗어나 예술가들의 손에 맡기는 것이 가장 좋은 불합리한 지점에 도달하는 것입니다."라고 작성하였다.

 

테이프의 배치와 관련하여서는 "솔직히 말해서 당연한 선택입니다. 테이프를 바나나와 평행하게 배치하면 바나나가 가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바나나(또는 과일이나 기타 가정용품)를 벽에 테이프로 붙이려는 아티스트는 '아이디어를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만 남게 되는데, 이 모든 방법은 바나나를 평행하지 않은 각도로 가로지르는 테이프 조각을 사용하는 것입니다."라고 서술하였다.

 

 

 

예술의 본질은 어디에 있을까?



스콜라 판사의 판결문은 모포드의 주장의 근거가 된 두 작품의 외관의 유사성에 대한 반박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모포드의 작품에는 '<코미디언>의 논쟁과 충격'이 담겨있을까?

 

우리는 <코미디언>을 볼 때 단순한 테이프로 벽에 붙힌 바나나로 인식하지 않는다. 이것이 <코미디언>과 다른 바나나를 구별해주는 가장 큰 핵심이다. 카텔란이 설계하고 대중들이 덧붙힌 수많은 개념은 작품에 입혀져 그 작품의 의미이자 본질이 되었다. 우리는 이것을 '개념미술'이라고 정의한다.

 

<코미디언>의 외관은 테이프, 바나나, 벽이 합쳐져 이루어진 하나의 이미지이다. 하지만 <코미디언>의 이미지를 보았을 때 우리는 그 이미지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작품으로서 만들어낸 정보와 의미를 연상하여 받아들이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과연 예술의 본질은 어디에 위치해있을까?

 

만약 <코미디언>의 정보를 몰랐다면, 우리는 모포드의 작품에서 <코미디언>이 만들어낸 논쟁과 충격을 연상할 수 없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두 작품이 표절이 아닌 이유이다.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진부해 빠진 질문을 묻고싶다, "당신이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인가?"



[신효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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