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지금 여기에서 돌아보는 그 시절의 자화상, 연극 '바니타스'의 최은 작가

글 입력 2023.06.15 13:3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연극-바니타스-공연사진3_윤진솔[제공=지구엔터테인먼트].jpg

 

 

지금 여기에서 돌아보는 그 시절의 자화상

연극 '바니타스'의 최은 작가

 

 

원래의 것을 회복한다는 뜻의 '복원'은 사실상 과거의 것을 오늘 재구성하는 과정을 가리킨다. 사물 본디의 모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오늘'에 방점이 있는 것인데, 이는 복원의 어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회복할 복(復)'자는 성을 되돌아가는 모습을 그린 '갈 복(复)'자와 사람이 걷는 모양인 '조금 걸을 척(彳)'자를 결합한 것으로, 길을 다시 돌아가는 모양을 가리킨다. 되찾은 과거가 아닌 미완된 현재, 완성된 결과가 아닌 노력하는 과정 그 자체가 바로 복원인 것이다.


1980년대를 소환하는 연극 <바니타스>의 작업도 마찬가지다. 요절한 천재 팝 아트 작가 '윤지호'와 그의 자화상을 복원하려는 미술품복원전문가 '한예준'의 여정은 1980년대 한국을 지금, 여기에 불러낸다. 작품 속 미스터리를 따라가다 보면 항쟁의 열기가 뜨거웠고, 안타깝게 스러진 개인들이 무수했던 그때가 나오는데, 다시 이는 2023년 지금의 대한민국을 생각하게 한다. 미완된 현재와 회복을 위한 노력의 과정을 보여 주는 연극 <바니타스>. 극본을 쓴 최은 작가는 이 작품이 2023년에 올라온 이유가 있다고 밝혔다.

 

 

2023바니타스_POSTER_최적화.jpg

 

 

 

성장한 자식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먼저 작가님께서 공연을 보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자식을 바라보는 부모 마음이 이런 것 아닐까 싶어요. 유대감이 있지만 '나'는 아니고, 또 속속들이 아는 것 같지만 자식 고유의 캐릭터, 가치관, 삶이 있는 것처럼 작품도 그런 것 같아요. 원작(원래 대본)의 구조와 스토리는 거의 가지고 가지만, 각색과 연출을 거치면서 차이가 생겼거든요. 


 

작품이 성장한 자식 같다는 거네요.

 

네, 자식이 없어서 잘은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을까요? 왜냐하면 자식은 부모의 기대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자라잖아요. (부모 입장에서는) 세상에서 제일 잘 아는 사람이지만 '나'는 아닌 거죠. 그래서 아쉽고 섭섭하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하는데, 작품을 보는 제 마음도 비슷해요.

 

 

작품이 연극이라서 더 그런 걸까요? 대본과 구현된 공연 사이에 차이가 커서 그런 건지 궁금하네요. 

 

각색이 있어서 그래요. 원작을 각색하면서 방향이 달라진 부분도 있고, 서사의 디테일이 추가된 것도 있고, 강약점이 바뀐 것도 있어요. 연출님이 각색하고 연출하셨기 때문에 그분이 보시는 이 작품의 장점 또는 방향에 맞춰서 바뀐 거죠. 원작의 모습은 유지하는데 오롯이 내가 알던 건 아니니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자식이 교육도 받고 친구도 만나고 누구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자기 살 길을 찾아가는 느낌? 저는 각색부터는 방향성에만 동의해 드렸고 구체적으로 글을 쓰는 과정에는 거의 참여를 안 했기 때문에 이 작품이 어떤 생명력을 얻어서 가게 될까 궁금해하면서 지켜보는 입장이거든요. 

 

 

2022년 리딩 쇼케이스를 거쳐 올해 초연으로 올라온 건데, 생각보다 원래 대본과 본 공연의 차이가 큰가 봐요.

 

전체 구조는 같은데, 극적 효과나 캐릭터의 강화 또는 메시지를 위해 내용이 추가된 신들이 있어요. 있던 신이 없어지기도 하고 없던 신이 생기기도 했죠. 예를 들어 원작에서는 백골단이 직접 등장하지 않고 목소리로만 나왔거든요. 그런데 공연에서는 백골단이 등장하면서 지호 캐릭터를 한 번에 보여 주는 식으로 바뀌었죠.


가장 큰 차이는 스토리텔링의 화자가 바뀐 거예요. 원래 예준이가 주인공인 작품이었거든요. 원작에서는 예준이의 복원 과정을 따라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지금은 지호가 이야기를 끌고 가고 예준이는 상황을 더 원활하게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입장이 된 거죠. 아파트 구조가 똑같아도 집집마다 다른 모습인 것처럼, 전체 구조는 같은데 신의 배치나 방향성, 캐릭터의 비중이 달라진 거예요. 그래서 바뀌었는데 안 바뀌었다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고, 안 바뀌었는데 또 바뀌었다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어요(웃음).

 

 

연극-바니타스-공연사진2[제공=지구엔터테인먼트].jpg

 

 

 

지금 여기서 해야 하는 이야기



작품을 처음 구상하신 건 언제쯤일까요?

 

재작년 연말에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작년 2월쯤에 썼어요. 그러고 5월에 리딩을 한 후에, 이야기를 발전시키면서 6~7개월 가까이 수정했고요. 처음엔 솔직히 공연 올릴 마음이 없었어요. 근데 작년 하반기를 겪으면서 내년에 꼭 올려야겠다, 그리고 올려야 한다면 이야기가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연출님과 각색 방향에 관해 토론을 굉장히 많이 했고, 결국 지금의 공연이 나온 거예요. 

 

 

올해 올려야겠다는 다짐은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사실 정치적인 배경과 많이 붙어 있어요. 처음 대본을 쓸 때는 선거를 치르기 전이었거든요. 원래는 내가 재미있어하고 신기하게 생각하는 분야를 탐구하고 싶고, 그걸로 정말 예쁜 이야기를 써 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런데 작년의 여러 상황을 겪고 나서 메시지가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러지 않았다면 그냥 예쁜 사랑 이야기로 공연이 올라왔을 수도 있고, 메시지가 달랐을 수도 있고…. 어쨌거나 지금 모습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공연을 올려야겠다는 다짐과 작품에 메시지가 붙은 게 같은 이유 때문이네요.

 

네,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과 작품 속 일들이 많이 연결돼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89학번이라 운동권 끝자락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거든요. 그때도 시위가 많았고 여러 사람이 잡혀가기도 했는데, 그 마지막을 본 사람이다 보니까 (특히) 충격이 컸죠. 그래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지금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토대 자체는 굉장히 예술적이고 문화적이고 사랑에 기반해 있다 보니까 ‘그때가 얼마나 대단했는 줄 알아?’ 이런 느낌은 주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 상황에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만나고 헤어졌는가, 그런데 이들이 언젠가는 사람 대 사람으로서 회복되면 좋겠다, 그게 복원이라는 분야와 잘 맞겠다, 해서 쓴 거였죠. 

 

만약 (지금 우리 사회가) 평화로웠다면 그냥 추억팔이하는 예쁜 이야기로 리딩만 하고 끝냈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때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뭘까 생각하게 되면서 이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된 거예요. 사랑 이야기는 맞는데,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어떻게 존재하느냐, 사회의 어떤 구조, 이념, 체제 속에 있느냐에 따라 선택도 달라지잖아요.

 

 

연극-바니타스-공연사진1[제공=지구엔터테인먼트].jpg

 

 

크게는 자화상 복원과 80년대 민주화 운동이라는 두 항으로 작품을 끌고 가는데, 두 분야가 생각보다 잘 붙어서 재미있었어요. 소재는 어떻게 떠올리셨던 걸까요?

 

자화상 복원이라는 소재는 유튜브를 보다가 떠올렸는데요. 제가 그림을 좋아해서 우연히 외국 복원가의 채널을 보게 됐어요. 그중에 젊고 잘생긴 금발 남자의 초상화인데 쫙 찢어진 게 있었거든요. 이 초상화를 닦고 붙이는 과정을 보면서 ‘이렇게 멋진 남자의 초상화가 찢어진 이유는 뭘까?’ 궁금했고, 그것 말고도 옛날 그림, 천, 목판 등의 원래 모습을 찾아 주는 걸 보면서 이 이야기를 쓸 수 있겠다 싶었어요.


또 제가 런던에서 공부할 때 동유럽 종교화를 복원하는 친구가 있었거든요. 그 친구가 당시 스물넷, 다섯 정도였는데, 문득 그때 생각이 나면서 복원이란 작업은 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다 싶더라고요. 젊은 복원가의 이미지는 그 친구에게서 빌려왔어요. 성질도, 실력도 대단한 친구였는데(웃음) 자기 할 말 다하는 예준이의 모습이 사실은 그 친구 성격의 일부예요. 

 

 

자화상 복원과 1980년대는 어떻게 연결하신 걸까요?

 

처음엔 어떤 얘기가 재미있을까? 우리나라 관객들이 즐거워하고 신기해할 배경은 뭘까? 많이 고민했어요. 대영박물관, 내셔널갤러리, 루브르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하는 누군가로 할까? 또 그림 대상은 어떻게 할까? 헨리 8세 몇 번째 부인의 알려지지 않은 초상화로 할까?(웃음) 온갖 생각을 다 하다가 그냥 제가 아는 이야기를 하면 쉽게 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 보고 싶었던 이야기이기도 했고요.


우리나라에서 이념과 개인의 갈등이 가장 심했던 시기가 전쟁 빼고 언제였을까 생각해 보니 제가 대학생일 때였어요. 운동하다가 군대로 잡혀간 선배들, 잡혀갔다가 복학한 선배들이 있었고, 저희 언니도 살짝 발 담갔다가 아버지한테 끌려나오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그때 실제로 살았던 사람들을 아니까 그 이야기를 하는 게 더 현실적이고 우리한테 맞지 않을까 싶었어요. 물론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야기로 쓸 수도 있겠지만, 내가 아는 이야기를 썼을 때 더 생생하게 나올 것 같았죠. 

 

 

연극-바니타스-공연사진6_김민수[제공=지구엔터테인먼트].jpg

 

 

그리고 이미 사회가 민주화 운동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섣부르게 건드리는 건 아닐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 안에는 여러 면이 있지만, 어쨌든 사람들이 있었고 이들이 부딪치면서 누구는 앙금을 가지고 몇십 년을 살아오기도 했고, 또 누구는 앙금을 해소하지 못한 채 먼저 떠나기도 했잖아요. 그런 상황들을 엮을 수 있겠다 싶었던 거죠. 


그리고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처음에는 이걸 예쁜 이야기로 만들어 보려고 했어요. 힘든 상황에서도 예쁜 이야기, 안타깝지만 아름다운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나? 싶었던 거죠. 얼마나 정의로웠는가, 얼마나 큰 불의였는가만을 강조하는 게 아니라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떤 선택을 했나 보여 주고, 스토리 자체가 마음에 예쁘게 남도록 말이에요.

 

 

그래서 처음에 러브 스토리로 쓰신 거군요.

 

작품을 처음 쓰기 시작했던 때의 사회 환경도 그랬고, 여러 가지가 복합돼서 이럴 때 예쁜 이야기를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나 영화 <건축학개론>처럼 약간 노스텔직한 러브 스토리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갈등하면서 성장하는 인물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이라는 거대 배경이 있지만, 그 안의 서로 다른 개인이 갈등하면서 서로를 이해해 가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더라고요.

 

각색으로 더 많이 살아난 것도 있어요. 저는 두 사람이 서로 이해 못 하고 다투도록 만들었는데, 연출님은 이해하면서 다가가는 모습을 많이 그려 주셨어요. 제 이야기 속에 생략된 것들을 끄집어내신 거죠. 그래서 캐릭터도 조금씩 달라요. 지호도 원래는 많이 나이브하고 유유자적한 캐릭터였고, 그 대척점에 있는 은수랑 쨍하고 깨졌다가 다시 붙었다가 했어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쟤랑은 정말 성격이 안 맞는데 그래도 너무 좋아서 손잡고 끝까지 가 보려는 거. 그래서 이게 사랑 이야기였던 거죠. 

 

캐릭터들이 원형은 갖고 있는데, 새로운 이야기에 조금 더 맞춰졌어요. 사랑만을 다루는 게 아니라 사랑, 인연, 관계에 대해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뀐 거죠. 결국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세상 이야기를 하고, 개인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집단 이야기를 하게 된 것 같아요. 이 시대, 시점에 맞게 잘 바꿨다고 생각해요.

 

 

이 시점에 맞게요?

 

만약에 다른 시기였으면 이렇게 바꾸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하거든요. 연출님과 저, 둘 다 단지 사랑 이야기로만 표현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에 동의했어요. 개인의 이상과 사회의 상황 같은 것들이 잘 표현될 수 있도록 각색되면 좋겠다, 캐릭터들의 발전 방향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 너무 전형화되지 않았으면 좋겠고, 그러면서도 관계에 핵심이 있으니 이걸 흔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죠.

 

 

인물들이 점차 성장하는 것도 매력적이었어요. 원래도 성장을 염두에 두셨던 걸까요?

 

원작에서도 성장을 하는데, 표현 방식이 좀 달랐어요. 주인공이 예준이에서 지호로 바뀌면서 공연에서는 예준이의 성장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보이는 게 있죠.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다 보여 줄 수 없으니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거고요. 


가장 많이 달라진 부분은 은수와 관련돼 있어요. 원래 지호 이야기 속의 은수는 지호가 자신에게 유리하게 각색한 모습이거든요. ‘쟤는 딱딱하고, 반응도 없고, 운동만 열심히 한다.’고 느꼈을 수 있는데 그 역시 지호의 관점인 거예요. 지호의 대화 속, 기억 속의 사람으로 은수를 그리다가 제일 마지막에 은수의 실제 모습을 보여 주고 어떤 과정을 겪어서 오늘날 국회의원이 됐는지를 길게 보여 주려고 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했고, 연출님은 지호가 이야기하는 모든 신의 은수 역시 진짜 은수였다고 가정하고 작품을 만드신 거죠.

 


연극-바니타스-공연사진5_고유나[제공=지구엔터테인먼트].jpg

 

 

작품에서 말하는 자화상 복원 작업이 실제에서 모티브를 따 와서 작품을 만드는 픽션 작업과 비슷하다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렇죠. 예를 들어 렘브란트의 자화상도 20대, 40대, 60대가 다 다르고, 그린 사람의 의도가 있겠지만 보는 사람들은 또 다르게 해석하잖아요. 흔히 ‘젊은 날의 자화상’이란 표현도 하는데, 그렇게 고정된 모습이 과연 맞을까? 사실 그런 메시지도 있어요. 

 

 

‘진짜 그랬을까?’라는 물음이 있었던 거네요.

 

네, 그게 진짜 그 사람의 모습일까? 아니면 은수라는 사람이 가장 사랑했던 모습일까?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이 있고, 다른 사람이 사랑하는 내 모습이 있잖아요. 그게 어떤 모습일까? 지호는 ‘네가 가장 사랑했던 내 모습이다.’라고 주장하지만 은수는 아니라고 얘기하거든요. 그러면 그건 뭐지? 자기 최면인가? 그런 질문도 생기는 거죠. 사실 자화상이 아니라 은수를 그린 걸로 설정하면 굉장히 편해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는 건 당연한 거니까. 근데 자화상을 그리게 함으로써 ‘결국 그렇게 남은 건 누구의 이미지지?’ ‘누구의 생각, 기억, 추억이지?’라는 물음을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자화상을 그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뭘까 생각했는데, 은수는 운동하는 친구라 신분이 밝혀지면 안 되잖아요. -공연에서는 명확한 이유가 나오지 않지만-그래서 자기 얼굴 그리는 것도 싫어하고 사진을 찍는 것도 싫어하니까 처음에는 지호가 은수의 암호명인 백장미를 그리고, 나중에는 은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자기 자신을 그려요. ‘네가 가장 사랑했던 내 모습이 이거잖아.’ ‘내 마음을 받아 줘’인 건데, 제일 예쁘게 나온 사진을 주고 싶은 마음이랑도 비슷해요(웃음). 심지어 인물을 안 그리는 지호가 자화상을 그렸을 때는 비밀이 커지면서 스토리에 흥미를 더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런 면에서 한번은 자화상을 보여 주지 않을까 했는데, 관객에게 직접 노출하지는 않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림을 보여 주는 걸로 대본을 썼어요. 예를 들어 차은우가 그림 속에 있는 거죠(웃음). ‘그런 그림이 찢어졌어, 어머!’ 이런 생각을 하면서 쓰기는 했는데 작품을 발전시키면서 그림을 보여 줘야 하는가 고민이 들더라고요. 결국 공연을 하면 사람들은 눈앞에 제시된 실물을 보고 모든 것을 판단할 텐데 특정한 얼굴 때문에 편견이나, 호감이 한순간에 생길 수 있잖아요. 작품을 이해하는 데 먼저 선을 그어버린다는 생각이 들어서 보여 주면 안 되겠다 싶었어요. 

 

초반에는 화가한테 의뢰해서 그럴듯한 팝 아트 스타일로 그리자는 얘기도 나오긴 했어요. 하지만 그게 정말 작품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될까? 얼굴이 어떻게 생겼느냐가 그렇게 중요한 걸까? 아니면 자화상이라는 개념이 중요한 걸까? 싶었던 거죠.


그리고 멀티 캐스팅이다 보니 누구를 그릴 것인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어요. 어떻게 그릴 것인가 하는 문제를 떠나서 배우 이미지에 갇히게 되잖아요. 그래서 그림을 안 보여 주기로 했는데, 배우들이 연습할 때 빈 캔버스를 보고 있으니 아무 생각과 느낌이 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연출부가 "그럼 너희 머릿속에 있는 걸 그려 봐."라고 제안했고, 결국 지호 배우들이 직접 그린 자화상을 가지고 나오되, 관객에게는 보여 주지 않는 쪽으로 결정됐어요. 그러지 않았다면 ’저 사람이 맞아?‘ '저게 정말 화가 실력이야?' 하는 불필요한 소모전이 벌어졌을 수도 있어요.

 

 

정말 그랬을 수 있겠네요(웃음).

 

‘이게 세계적인 팝 아트 작가의 실력이야!’ 하는 것도 웃긴 거예요(웃음). 그림을 다루는 많은 작품이 실제 그림을 안 보여 주는 이유가 그림 자체가 주는 이미지의 한계성으로 작품이 구겨지고 좁아져 버리기 때문이거든요. 더구나 이건 젠더 프리 캐스팅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니까 더더욱 그런 데 갇히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관객 스스로 상상해 볼 수도 있고요.

 

실제로 팝 아트는 1960년대부터 지금까지 거의 60년간 어마어마하게 발전했고 되게 다양한 스타일이 있거든요. 물론 지호가 그렸을 90년대 후반의 스타일을 유추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팝 아트라고 하면 앤디 워홀 스타일을 떠올릴 것이고, 또 미술을 하시는 분들은 요새 스타일을 생각할 수 있단 말이죠. 그래서 스타일을 정해서 보여 주는 대신 관객들이 이 작품에 어울리는 모습을 상상하게 해 주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자신에게 떳떳한 이야기를 쓰다



주요 배역이 모두 젠더 프리로 캐스팅된 것도 특징적입니다. 원래부터 젠더 프리 공연을 의도하신 건지 궁금했어요.

 

원래 대본은 젠더 프리가 아니었어요. 지호는 남자 미대생인 ‘진호’였고, 은수는 ‘은영’이었죠. 예준이는 똑같고, 경석이는 리딩 후에 추가됐고요. 처음 이야기를 구성하려면 어떤 사람이 머릿속에 잡혀야 하니까 진호와 은영이를 남자와 여자로 설정했어요. 근데 리딩을 하고 작품을 업그레이드하면서 보니 굳이 성별에 매여 있을 이유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가진 (<바니타스>) 대본 중에 남남, 여여, 남녀 버전이 따로 있고, 각각의 서사가 더 명확하게 드러난 것도 있어요. 근데 그 모든 걸 걷어 내고 어떤 상황에 어떻게 이야기하더라도 사람들이 가장 편한 방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각색된 거예요.


창작 초연이고, 낯선 창작진에, 캐스팅까지 혼란스러우면 표가 안 팔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결론적으로는 잘한 것 같아요. 작품의 만듦새나 배우들의 연기 등을 보면 이게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관객 입장에서도 작품을 여러 결로 읽을 수 있어서 재미있었어요.

 

재미는 있지만, 연출부는 힘들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연극-바니타스-공연사진4_구준모[제공=지구엔터테인먼트].jpg

 

 

이 작품이 작가님의 첫 작품인 거죠?

 

무대에 올린 걸로는 첫 작품이고요. 예전에 리딩 공연은 해 봤어요. 리딩을 한번 해 보고 재밌다 싶어서 두 번째로 완성한 원고가 <바니타스>였죠.

 

 

그럼 작가님께 이 작품은 어떤 의미일까요?

 

작품 이야기와 좀 비슷한데, 결국 개인의 선택이 시대와 상황에 좌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년 상황이 그렇게 흐르지 않았으면 저는 이 공연을 안 올렸을 수도 있고, 또는 올렸다 하더라도 이 모양이 아니었을 수 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이 사회와 상호작용하면서 결정되는구나 싶은데, 그런 면에서 사람은 정말 사회를, 시대를 거스를 수 없는 건가? 싶기도 해요.

 

‘내가 왜 이런 짓을 하지?’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사람들이 봐야 할 이야기가 넘쳐나는데, 굳이 이 이야기를 하려고 욕심낸 이유가 뭘까? 컴퓨터 속에 잠자는 ‘뇌내망상’ 중 하나로 남기면 될 것을 돈을 써 가면서 작품으로 올렸을 때는 -물론 제가 하고 싶은 게 제일 컸겠지만- 옆에서 부채질하는 상황이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작품 속 그들의 선택도 그렇게 부채질했던 그 시대에서 못 벗어나지 않았나? 하지만 그러면서도 '이걸 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라는 마음이 그들에게도 있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작품 속 인물들에게 동병상련을 느꼈어요.

 

주위 사람들은 “무대에 올리니까 기분 좋지 않냐?”고들 하는데 사실은 덤덤해요. 이게 어떻게 되어 갈지, 어떤 생명력을 갖게 될지 지켜보고 싶어요. 어떤 의미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아까 자식 같은 존재라고 했지만 '마이 프레셔스~.’ 이런 건 아닌 거죠(웃음). 

 

 

그럼 거창하진 않더라도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으실까요?

 

잘 모르겠어요. 쓰고 싶을 때 또 쓰겠죠. 그런데 결국은 내가 아는 이야기를 써야 나 자신한테 가장 떳떳할 것 같아요. 내가 잘 모르는 이야기를 쓰려고 하면 상상력을 마구 집어넣게 되고, 거짓말을 하게 되니까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 이 작품에는 제가 아는 사람들이 들어와 있거든요. 저희 언니, 과 선배, 서클 선배, 건너 건너 아는 누구네 오빠 또는 저희 아버지, 어머니…. 그러다 보니 캐릭터들이 단단해졌고 각색을 거쳐도 현실성 있게 남아 있어요.

 

그리고 원래 주인공이었던 복원가가 뒤로 밀려난 게 개인적으로 미안해서 복원가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언젠가 꼭 쓰고 말겠다는 생각도 해요. 그래야 이 캐릭터한테 덜 미안할 것 같아요.


쓰고 싶은 이야기는 몇 가지 있는데, 쓸 수 있는 시기가 있더라고요. 제가 본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글이 쓰이는, 몰두가 되는 시기가 있어요. 누가 보느냐, 무대에 올릴 수 있느냐가 아니라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서 그냥 쓰고 싶은 걸 쓰는 게 저한테는 중요하거든요. 취미로 시작했던 일들이 지금은 업처럼 되긴 했는데, 공연이 끝나고 나면 어떻게 될지 솔직히 모르겠어요. 여러 가지 생각만 있어요. 물이 차오르다가 어느 순간 딱 넘치는 것처럼 어떤 시기가 지나면 뭐라도 나오겠죠?

 

 

[김나윤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2.22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트(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