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종합 예술가 라울 뒤피를 만나다 -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전

글 입력 2023.06.01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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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현대서울_퐁피두_뒤피_포스터1 (1).jpg

 

 

여의도는 어릴 적부터 내게 강 건너의 놀이터였다. 한강공원과 여의도공원이 있어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곳. 마포대교를 두 다리로 뛰어 거침없이 달려가는 곳이다. 

 

더 현대 서울에서 5월 17일부터 열린 프랑스 국립현대미술관전에 다녀왔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여의도에서 프랑스 3대 미술관을 만나볼 수 있는 것은 큰 행운이었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프랑스 3대 미술관을 접하는 절호의 찬스를 놓칠 수 없었다. 

 

프랑스 현지에 미술관이 있는 '퐁피두 센터'는 라울 뒤피 작품의 최대 소장처라고 한다. 마티스, 피카소, 샤갈, 칸딘스키 등 유명 작가들의 12만여 점의 근ㆍ현대 미술 작품을 지니는데, 이 중에서 라울 뒤피의 130여 점의 작품을 12개의 주제로 만나보았다. 회화와 조각, 드로잉, 판화 등 뒤피의 예술세계를 깊이있게 경험하는 시간이었다.


 

 

종합 예술가로서 라울 뒤피의 삶



Autoportrait, 1898.jpg

 

 

라울 뒤피는 프랑스 르아브르의 가난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역시 예술에 대한 뛰어난 감각은 유전인지, 그의 가족들은 특히 음악과 예술을 너무나 사랑했다고. 금전적으로 여유가 없던 집안 환경으로 일찍이 돈을 벌어야 했다. 

 

그는 무려 한국 나이로 중학교 2학년 나이인 15세부터 미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색조와 질감 자체에 관심을 두는 인상주의에 빠져든 후, 마티스 작품에 감명을 받아 강렬한 원색과 거친 형태를 특징으로 하는 야수파에 합류했다. 이 외에도 입체주의 기법, 목판화, 패션 업계의 상표 제작, 도자기 제작, 초상화 등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미술 장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다. 

 

12개의 주제로 전시된 작품들을 순서대로 보며, 한 명의 사람으로서 라울 뒤피의 삶과 철학을 존경하게 됐다. 회화, 판화, 목판화, 드로잉, 도자기 등 그가 선보인 작품들의 스펙트럼을 보고 있으니 그야말로 진정한 '종합 예술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의무적으로 작품을 만들기보다, 그저 사랑하고 감동하는 순간에 충실하며 정성 어린 마음으로 작품 생활을 이어온 바를 느꼈다. 

 

 

 

기억에 남는 라울 뒤피의 작품 & 시그널



Port de Martigues, 1903.jpg

 

 

그의 작품에는 특히 눈에 띄는 캐릭터와 표시들이 있었다. 회화에서 자주 삼각형의 도형이 보였다. 그가 반복과 나열을 통해 삼각형을 집착적으로 그렸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또한 라울 뒤피가 프랑스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다는 것도 눈에 띄었다. 프랑스 국기의 색깔 파란색, 빨간색, 하얀색을 다양한 요소에 표현하였는데, 이는 민중 예술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그의 역사를 연상케 하는 것들이었다. 

 

한편 라울 뒤피는 해안가 도시의 풍경을 자주 그렸는데, 특히 조개 껍질을 든 여인들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많이 그렸다. 전시회를 보면서 거의 '고집스러울 정도로 많이 그렸다'는 인상을 받았다. 바닷가에서 목욕을 하는 여인들을 왜 그토록 집중적으로 그렸는지 궁금하다. 

 

 

Les Cavaliers sous bois (La Famille Kessler), vers 1931–1932_아트인사이트.jpg

 

 

더불어 그는 작은 말들과 사람을 함께 그리기도 했는데, 알고 보니 고향 노르망디에서 경마장을 운영해 큰 성공을 거두었다고 한다. 예술가의 영감의 원천은 역시 일상에서 가까운 존재와 의미들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마치 내가 반려견 사진을 자주 찍고, SNS에 올리는 메커니즘과 같다고 생각하면 될까. 특별히 아끼고 사랑하는 대상은 반복적으로 작품에 등장한다는 걸 알게 됐다. 


라울 뒤피의 초상화도 매력적이었다. 아내 에밀 리엔을 모델로 삼아 초상화를 그렸다. 그의 초상화를 보면 마치 그림 안에서 사람이 살아있는 것 같았다. 뚜렷한 눈매와 크고 시원시원한 인상들을 보며 사람의 얼굴에 대한 관찰력이 굉장히 좋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전시의 마지막 섹션에서 만난 ‘검은 화물선들’은 다소 우울한 느낌을 주었다. 실제로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파괴된 고향의 항구를 묘사하고자 단일 색조를 사용했다고. 라울 뒤피는 밝고 생기가 넘치는 작품들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작품 생활 이면에는 어두움과 우물과 같은 깊이가 존재했다는 것을 느꼈다.

 

검은색으로 검게 칠해진 화물선들과 배경으로 어쩐지 위로를 받았다. 감정의 실체를 마주하는 것만으로 마음의 깊은 곳이 조금이나마 해소되는 감각을 느꼈다.

 

 

La Fée Electricité (partie gauche), 1937_아트인사이트.jpg

 

 

이번 전시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감동의 작품은 바로 대형 벽화 장식(Grands décors)이었다. 1937년 파리 세계박람회에서 전시된 전기 요정(La Fée Électricité)을 석판화로 만났다.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과 인류의 삶을 개척하는 산업의 풍경을 동시에 묘사한 것이 눈에 띄었다.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한 걸음씩 발을 떼어가며 시선은 그림에 고정한 채 움직이며 관람했다. 

 

새로운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순간에서 그가 그린 수많은 사람들의 표정, 모습들은 마치 먼 과거라기보다 현재같은 느낌이었다. 라울 뒤피의 시대나 지금이나 언제나 변화무쌍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이 제 갈 길을 찾기 위해 발버둥 치지 않은가. 

 

그는 자신의 시대를 충실하게 그려낸 것뿐이지만, 그 충실함으로 인해 미래 세대인 우리가 어쩌면 현재와 미래를 성찰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눈 코 뜰 새 없이 빠르게 바뀌는 세상 속에서 놓지 말아야 할 무언가. 삶의 중심과 가치를 찾아야 할 필요성을 생각해 보게 된다. 

 

 

[신지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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