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림책 독서를 위한 컬러풀한 도움닫기 - 라키비움J 다홍

글 입력 2023.05.07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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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이사를 할 때 이삿짐을 미리 추려두지 않았던 나는 이삿날을 며칠 앞두고 다소 충동적인 버리기를 단행했다. 당연히 버리고나서 후회한 물건들의 목록이 생겼다. 대표적인 것이 초등학교, 중학교 즈음의 내가 그린 그림이 빼곡했던 스프링 연습장들과 엄마 아빠가 더 어린 나를 위해 고심해서 고른 양질의 그림책들 몇 권이었다.


“아빠, 이 책 버린다?”

“그림이 좋은데 왜 버려.”


이런 말을 듣고도 ‘공간만 차지하고, 이제 더 안 볼 테니까-’라고 무심하게 넘겼다. 그 책을 버릴 당시만 해도 그림책은 아이들이 보는 책이라 여겼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나는 해가 갈수록 그 때 버린 몇 권의 그림책을 그리워하고 아까워하게 되었다. 아이가 잘 생기지 않아 고민이던 새 부부가 다른 동물들의 알을 가져왔다가 소동이 일어나고 결국 하나의 알을 소중하게 키우게 되는 줄거리의 그림책이 우리집에 있었다. 지금은 줄거리와 몇 개의 이미지로만 기억하는 그 이야기를 독특한 기법의 그림과 함께 다시 생생하게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 떠오를 때가 있다.


동아리 활동과 관련되어 북큐레이션을 하며 그림책 또한 여럿 접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 나는  그림책을 다시 보게 되었다. 어릴 때는 흥미본위로 스펀지처럼 그림책을 빨아들였다면 지금은 색채와 기법 등에서 작가의 노고가 세밀하게 눈에 보이며 감탄하며 그림책을 감상하게 되었다. 물론 항상 분석적으로 감상하는 것은 아니다. 그림책 속 세계라는, 사려깊게 마련된 치유 혹은 일상 낯설게 보기의 공간을 음미하는 것은 일상의 긴장을 풀어주었다.  친구가 그림책 작가가 된 것도 그림책에 관심이 가는 데 한몫했다.


그렇게 그림책의 세계에 퐁당 빠지고픈 마음으로 살아가는 요즘, 그림책 전문 잡지 [라키비움J]의 문화초대 소식을 보게 되었다. 그림책 전문 잡지라니. 다양하고 좋은 그림책도 많이 접하고 그림책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표지.jpg

 

 

 

라키비움J


 

라키비움J라는 잡지 이름의 뜻이 궁금했는데, 책의 앞부분에 이름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Library(도서관)의 L, Archives(기록관)의 Archive, Museum(박물관)의 Um을 합쳐 Larchiveum이 된 것이다. 라키비움 뒤에 붙은 J는 다양한 뜻을 가진다 Journey, Joy, Journal, Jay-즉, 여행, 즐거움, 저널, 작은 새 등의 의미를 끌어온다. 언어유희를 더하면 제2, ‘첫 번째보다 더 설레는 제2’라고도 한다. 그림책 전문 잡지 [라키비움 J]는 호수를 숫자가 아닌 색상명으로 하고 있는데, 이번 일곱 번째 책의 색상명은 다홍이다. 이처럼 이름 한 글자 허투루 쓰인 것 없이 고심한 흔적이 보이는 잡지여서 페이지를 넘기는 기대감은 더욱 커져갔다.

   

페이지를 넘기기 전에, 잠시 이억배 작가의 그림으로 장식된 표지를 보고 가자. 책으로 만들어진 집 안에서 책을 읽는 아이가 보인다. 아이의 주변에는 한 데 모이기 힘든 현실 동물들은 물론 눈이 여러 개 달린 물고기 처럼 상상 속의 동물도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책에서 뻗어나오는 표현들이었다. 펼쳐진 책장이 날개가 되어 새처럼 날아가는 책, 책장 같은 모양의 날개를 가진 채 허공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하얀 새, 책에서 나무 줄기가 뻗어 나오고 또 활짝 핀 책 꽃 혹은 책 열매가 맺히고 있는 책 나무.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이 책 나무였다. 책 한 권을 읽을 때면 그 안에 언급된 새로운 책들이 궁금해지거나, 새로운 주제에 몰입하게 되어 또 읽을 참고도서들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책이 책을 부르는 독서의 묘미를 즐기는 나로서는 이 책 나무가 나의 독서 및 독후활동을 잘 드러내는 것 같아 반가웠다. 

 

독자는 책을 읽는 동안 상상력이 피어나고, 또 다른 책을 읽고 싶어지거나, 읽고 읽다가 자기가 직접 글을 쓰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런 독서의 속성을 보여주는 표지라고 느껴졌다. 

 

그렇다면 수많은 장르의 책 중에서도 그림책 독서의 속성은 어떤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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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속 가정의 신 헤라는 죽은 아르고스의 눈을 공작새의 깃에 옮겼고 공작새는 화려한 깃을 갖게 되었다.

 공작은 헤라를 상징하는 동물이다.  

 

 

 

한 권의 그림책을 보는 백 개의 눈, 백 권의 그림책을 꿰뚫는 하나의 시각


 

[라키비움J]는 그림책 독서의 속성, 그림책 읽기의 즐거움을 설파하기 위해 우선 그림책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얼마나 자세히 들여다 보았냐면, [라키비움J]만의 시각을 다룬 코너 이름을 신화 속 눈이 100개 달린 거인 아르고스에게서 따올 정도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가정의 신인 헤라의 권속이었던 이 괴물은 눈이 100개나 되었기 때문에 잠을 잘 때도 모든 눈을 다 감지 않았다. 그렇게 뜬 눈은 모든 방향을 다 볼 수 있었고, 이 때문에 헤라는 아르고스를 자신의 충직한 감시자로 썼다. 이 아르고스 코너에서 에디터들은 한 권의 그림책을 선정한 후 그 책을 다방면으로 분석하여 소개한다. 

 

이번 호의 선정 도서는 2022년 칼데콧 수상작인 코리 R. 테이버의 <간다아아!>이다. 책의 줄거리와 작가의 작업 의도, 작업 방식 등을 보여주는 작가와의 인터뷰가 [라키비움J]의 눈이 주목한 <간다아아!>의 첫 부분이다. 작고 어리지만 두려움을 이겨내고 독립의 날갯짓을 선보인 주인공 물총새 멜의 서사에 집중하여 작은 존재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그림책들을 소개하기도 한다.  

 

잡지의 다른 눈들은 이야기 외적인 요소지만 서사의 전달 방식과 떼놓을 수 없는 책의 물성에 주목한다. 한 에디터의 글에서는 ‘돌려 읽는 책’이라는 특징을 가진 <간다아아!>처럼 방향을 돌려 읽는 그림책들이 소개된다. 책의 물성은 비단 손에 만져지는 부분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책의 타이포그래피 역시 나는 책의 물성에서 오는 특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다만 종이와 같이 납작할 뿐이다. 글자의 예술인 타이포그래피를 통해 번안된 제목의 생동감이 더욱 살아나기도 하고 등장 인물들의 성격이 시각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예컨대 예민하고 예술적인 성향의 캐릭터의 대사는 가늘고 긴 글씨체에 끝이 세밀하게 다듬어지고 대담한 캐릭터의 대사는 보다 단순하고 부피감 있게 처리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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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다아아!>의 원제는 '멜이 떨어진다'는 뜻의 Mel Fell이다. 발음의 유사성을 노린 언어유희가 잘 보이는 제목에서 어린 물총새 멜의 저돌적인 도전의식이 보이는 제목으로 바뀐 셈이다. 전자의 원제에서는 철자 e가 기울어져 떨어져나갈 듯이 보인다. 이 타이포그래피 요소는 멜의 떨어짐을 연상시킨다. 한글 번역본에서는 이런 언어유희적인 측면과 글자가 달랑거리는 느낌 대신 바뀐 제목에 걸맞게 폰트에 속도감과 글씨마다의 크기 차이를 부여했다. 그래서 우리는 멜이 과감하게 추락하며 신나게 내지르는 소리를 듣는 듯하고 멜의 재빠른 몸짓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두 제목의 타이포그래피 모두 미추나 속도 등의 특정 감각에 대해 이미 형성되고 공유되는 인간의 미감을 활용하고 자극하고 있다. 

 

수많은 시간 동안 쌓여 온 미감은 신체적이기도 하나 한편으로는 다분히 문화적이다. 그러나 이런 감각의 영역을 넘어 문화적인 배경 자체를 고려해야 하는 그림책의 얼굴 같은 부분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그림책의 제목이다. 그림책의 제목은 그림책의 대문인 격으로 표지 그림과 함께 독자의 시선을 끌고 읽을 마음이 들게 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다. 이는 아름답거나 감각적인 폰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부분이다. 번역서의 경우 원제가 낯선 문화적 배경을 담고 있다면 그것을 그대로 옮겨와 폰트를 조정한다고 해서 독자의 아리송함을 읽을 마음으로 만들어줄 수 없다. 이럴 때 그림책 속 서사를 반영하거나, 특정 단어를 빼거나 추가하여 새로운 제목을 만들어 다른 문화권의 새로운 독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 Mel Fell이 <간다아아!>가 된 과정 및 다른 번역서의 제목 선택 과정을 다룬 기사를 통해 이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라키비움J]의 아르고스가 <간다아아!>를 집어든 이유에는 이 책이 2022년 칼데콧 상 수상작이라는 것이 큰 부분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림책 입문자로서는 칼데콧 상의 위치와 의의가 궁금했는데 이를 미국 현지의 분위기와 함께 보여준 기사가 아르고스 코너의 마지막으로 자리해 있었다. 이 기사를 통해 <간다아아!>의 심도 깊은 감상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앞으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그림책이 필요한가를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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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스 코너 외에도 [라키비움J]에는 더 많은 기사와 글들이 실려 있다. 뛰어난 국내외 그림책 작가들과의 인터뷰 기사들, 특집 기사들, 그리고 그림책과 놀이활동, 그림책과 학습에 대한 칼럼들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논픽션 그림책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 피오트르 소하의 말처럼 ‘모든 대상을 위한 책은 만들 수 없지만 모든 주제에 대한 책은 만들 수 있다.’ 여기에 그는 ‘하지만 어떤 주제이든 재미있고 흥미로운 사실을 보여 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말에 깊이 공감하며 역사 그림책 특집 기사인 <방구석 역사 투어 수원 화성>을 보았다. 아이들이 역사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히는 과정에 나 또한 동참하는 기분이었다. 어린 아이들이 논픽션 그림책에 관심이 없을 거라는 편견을 지적하는 칼럼도 있었는데, 그 글을 읽을 때는 나 역시 뜨끔했다. 논픽션 그림책에도 다양한 스타일이 있다는 정보를 지식으로 얻은 것은 커다란 덤이었다.

 

이외에도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나 아이들과 독후 활동을 하는 교강사라면 그림책과 놀이, 활동을 어떻게 펼쳐나갈지에 대한 고민을 해소할 수 있는 칼럼 등을 접할 수 있다. 이번 호의 다홍색은 물론 앞으로 더 많은 색과 함께 숱한 그림책에 대한 흥미도 충족할, 이 내용이 꽉 찬 그림책 전문잡지 [라키비움J]를 펼쳐 보면 어떨까. 공작새 깃의 수많은 눈처럼 한 권의 그림책도 다채롭게 읽게 되고, 수많은 그림책 사이에서 내게 필요한 책을 찾는 눈을 기르게 될지도 모른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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