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멋대로 세계, 그림책 - 라키비움J 다홍

그림책 잡지 『라키비움J』 다홍 호
글 입력 2023.05.0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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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키비움J』는 ‘당신과 그림책 세상을 연결’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진 독자 기반의 그림책 잡지다. 그동안 각 호에 레드, 옐로, 민트, 보라, 롤리팝 등 색깔 이름을 붙여왔는데 이번 7호는 다홍 호, 밝고 명랑한 빨강을 머금고 있다. 목차를 읽다 특히 어릴 적 작고 붉은 열매를 따 돌멩이로 절구 찧는 흉내를 냈던 기억이 떠올라, 이시내 에디터의 ‘작은 존재의 반란’을 가장 먼저 펼쳐 보았다.

 

대학에 막 입학한 새내기 시절의 끝 무렵이었다. 당시 친구는 한 학기 간 초등학생들의 독서 멘토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친구가 책상 위에 활동 도서를 올려두었길래 ‘후루룩’ 잠깐 구경을 할 생각으로 마키타 신지의 『틀려도 괜찮아』를 손에 넣었다. 또 포도알처럼 동그랗고 작은 얼굴들과 그들을 한 품에 껴안은 어른이 그려진 친숙하고 귀여운 책표지에, 부담 없이 그림책 세계의 문을 열어볼 수 있었다.

 

주인공은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유치원에서 학교라는 더 크고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 그는 교실의 경직된 분위기에 겁을 먹고 또 발표에 주눅이 들기도 하는데, 그가 느끼는 감정들이 그보다 10년의 경험치를 더 쌓은 나의 것과도 아주 비슷했다.

 

‘자꾸자꾸 말하다 보면 자꾸자꾸 틀리다 보면 하고 싶은 얘기의 절반 정도는 말할 수 있게 되는 거야.’라는 문장의 운율이 좋아 소리를 내어 읽으면 꼭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멜로디가 붙는 것도, ‘틀리면서 정답을 찾아가는 곳’이기 때문에 ‘틀려도 괜찮’다는 따뜻하고 단순한 말씨가 어린 시절 산타와 마법전사들의 힘을 믿었던 때의 마음처럼 의심 없이 그림책이 건네는 위로에 잠기도록 하는 것도 모두 좋았다.

 

이시내 에디터는 이 기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림책 속 인물의 도전과 승리가 아이에게 성공의 사례로 차곡차곡 쌓여 가길 바란다. 그렇게 용기를 밝혀 주는 그림책이 있기에 아이와 함께 양육자인 나도 자란다. 풍덩! 물속에 빠질지라도 비상을 꿈꾸며 서로의 승리를 맘껏 기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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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 속 눈이 100개 달린 괴물인 ‘아르고스’처럼, 한 권의 그림책을 읽는 다각의 관점과 이야기를 담은 코너 ‘아르고스’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아르고스의 시선은 코리 R.테이버의 『간다아아!』에 닿아 있다.

 

이 책을 쓰고 그린 코리 R.테이버의 인터뷰에서는 스케치부터 더미 제작, 여러 미술 용품을 사용해 적합한 표현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 그리고 부모와 그림책 애호가로서의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세세하게 듣고 또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실험을 좋아해 물과 물감이 어떤 효과를 낼지 알 수 없는 수채화를 좋아한다는 취향과 ‘모든 가능성을 고려하는 것을 좋아한’다는 작가의 답변에서 그림책 장르만의 고유한 매력이 자연스럽게 묻어남이 인상적이었다.

 

『간다아아!』는 물총새 멜의 용감한 도전을 그린 책이다. “간다아아!”하며 날아오른 멜은 아래로, 아래로 떨어지지만 그 아찔함도 잠시, 물속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입에 물고 위로, 위로 날아오르는, 상승과 하락의 동적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인터뷰에서는 인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태도가, 자라는 어린이와 함께 성장하는 어른의 모습과 닮아있어 그 부분이 새로운 배움이 되었다. 떨어지는 멜을 보며 “멜이 위험해! 어떡하지?” 함께 걱정하고, 멋지게 솟구쳐 오르는 멜에는 “내가 걱정한 것이 멜에게 방해가 될 수도 있었구나.” 깨닫고 또 함께 기뻐하기도 했다는 그는 창작자면서도 곧 독자이고, 작품 세계 속 멜의 엄마나 부엉이 가족이기도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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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물성과 디자인 세계는 언제나 새롭고 흥미롭다. 이번 호에서는 ‘그림책 물성 안내서’ 코너를 통해 ‘다이컷(Die-Cut) 기법’으로 구멍을 뚫어 만든 그림책을, 또 아르고스의 또 하나의 눈으로 타이포그래피와 세로 판형 그림책에 대한 기사 두 편을 만나볼 수 있었다.

 

『간다아아!』는 멜의 수직 방향의 움직임이 주요한 만큼 세로 판형을 통해 멜의 모험을 생동감 있게 표현했다. 독자가 페이지를 아래에서 위로 넘기면서 멜의 하강을 감각적으로 느끼고 또 몰입해 체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기사를 통해 알게 되면서, 종이책의 물성이 이렇게나 많은 입체적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굉장하게 느껴졌다.

 

뿐만 아니라 멜이 물속에서 물고기를 잡음과 동시에 책은 “이 책을 접지선 방향으로 돌리세요.”라고 독자에게 요구하는데, 상상할 수 있듯 책을 반 바퀴 돌리면 멜은 곧 아래에서 위를 향해 치솟기 시작한다. 이미리 에디터의 표현대로, ‘작가의 의도대로 책의 방향을 바꾸면 독자는 가만히 앉아 책을 읽는데도 롤러코스터를 탄 듯 급격한 방향 전환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책을 넘기는 등의 보편성을 뒤집는 기발하고 신선한 그림책 활용법들을 하나씩 체험하기 시작하면 어느덧 놀이의 성격을 띤 독서, 책읽기의 즐거움에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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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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