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50년 넘은 한국인 갓생의 역사 [문화 전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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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엄마는 종종 젊은 시절 자기 자신에게 너무 가혹했다며 나에게 토로했다. 위 새마을 운동 노래의 가사처럼 엄마는 새벽같이 일어나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운동까지 하며 자기 전에는 완벽하지 않은 자신의 단점들을 질책하며 잠들었다고 한다. 항상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 시대는 정말 혹독했구나’ 비교적 한국 사회가 풍요롭고 안정적인 현재를 감사했다.
하지만 엄마의 시대와 지금이 별반 다르지 않구나, 아니 더 심화되었음을 깨달았다. 몇 년 전에는 ‘힘든 일도 버티자’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는 ‘존버’가 유행하더니 요즘은 완전히 반대 성향을 띤 '부지런하게 타인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자'라는 ‘갓생’이 인기를 통해서 말이다.
갓생 그 자체인 요즘 아이돌들
갓생에 대한 생각들이 전개된 계기는 한 기사를 읽고 난 후부터였다. 이전에 ‘마르고 예쁘고 무해한 여자’들이 주를 이루었던 달리 요즘 여자 아이돌들은 ‘능력’, ‘금수저’, ‘사랑받고 자란 티’까지 갖추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공감이 갔다. 여성 아이돌 전성시대라고 불리는 요즘, 유튜브에는 당당하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노래들이 넘쳐난다. 인스타그램에 돌아다니는 숏폼들만 보아도 하기 싫어도 하고 마는 아이들들의 영상을 모아놓은 ‘어떻게든 해내는 여성들 모음 zip’, 가족들에게 사랑을 받는 모습을 담은 ‘사랑이 넘치는 00가족’과 같은 영상들이 좋아요를 받으며 돌아다닌다.
아무도 모르게 이러한 키워드들이 팬들에게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내는 데 역할을 한 것이다.
'살, 성형, 이력, 나이, 사생활, 과거, 가난, 가족사, 갈등, 출신을 모조리 도려내면서 지금 걸그룹의 안티프래자일한 자기애의 세계관이 유지되고 있다. 뒤집으면 어리고 완벽한 여성 청년에게 조금의 티끌조차 견딜 수 없는 이 시대는 너무나 프래자일하다'
- 한겨레21 '뉴진스에는 광야 같은 세계관이 왜 없을까(도우리 작가)' 중
아이돌이란 번역하면 우상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많은 여성들이 되고 싶은 모습이 곧 ‘마르고 예쁘고 강인한 여자’라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차라리 ‘강인한 여자’였으면 어땠을까. ‘마르고 예쁘고 강인한 여자’는 비현실적이고 모순적이다.
부딪히면 아프고 상처가 나는 게 인간인데, '괜찮아' '아프지 마'와 같은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들이 더 이상 와닿지 않는, 뭐든 이겨내야만 하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2023년도도 1970년대 새마을 운동과 비슷하다. 달라진 것은 하나 있다. 새벽종이 울리면 새 아침이 밝아 일어나 너도 나도 일어나 ‘새마을’이 아닌 ‘내 마을’을 가꾼다. 공동체를 위해서 열심히 사는 것이 아닌, 오로지 내가 잘 되기 위한 염원을 담는다.
엄마의 젊은 시절 이야기에 기겁했던 나조차도, ‘갓생’에 집착하고 있었다.
이번 겨울방학, 가만히 있는 내가 도무지 참을 수 없었던 난 알바, 약속, 학원 등으로 두 달을 꽉 채우고 있었다. ‘갓생’에 별 관심 없었던 나도 어느새 분위기에 휘말려 ‘갓생’을 위해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설정해 놓은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하루의 끝자락에는 나를 몰아세우고 자책했다. 많이 먹고 행복한 순간에는, 마음 한편 ‘마르고 예쁘고 강인한 여자’에 멀어진 자신을 깎아내리는 마음이 스멀스멀 자라고 있었다.
이 모두가 자신에게 눈물 한 방울 허락하지 않으려는 메마른 사회가 과연 안전할까. 사랑받은 사람을 찾지만 사랑은 주지 않는 사회. 햇빛, 눈, 비 다 거절된 가뭄 속에서 병들어 가고 있다면, 그럴 필요 없다고. 비가 오면 비를 환영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신유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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