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떤 과학의 다정함 [도서/문학]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와 <식물의 방식>을 읽고
글 입력 2023.01.05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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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과학은 죄가 없다



문과인가 이과인가, 한국의 모든 고등학생은 입학 후 처음으로 중대한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뼛속까지 문과인 나에게 선택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가끔은 이과가 된 나의 삶은 어떠했을지 상상해 본다. 이 같은 문·이과의 이분법적 구분은, 그런데, 사실 유별난 한국 교육 정책의 결과라고 한다.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는 친구는 고등학교 3년 내내 철학을 공부했다가도 지금은 수학과로 전향했고, 경제를 좋아하던 다른 친구는 미대에 입학했다. 양분된 관심사에 국한 받지 않고 다양한 영역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친구들을 보면서, 어쩌면 내가 문과라고 결정했던 바로 그 순간 다른 분야에서의 무궁한 가능성을 차단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게서 가장 두꺼운 벽으로 분리되어 있던 분야는 과학이었다. 한국 입시 제도하에서 수학은 싫어도 이 악물고 공부해야만 하는 과목이었지만, 과학은 원한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과학에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던 이유는 애초에 자주 접할 기회가 없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과학에 대해 가졌던 일련의 편견 때문이었다.


과학이라 하면 이유는 모르겠지만 차갑고 쌀쌀맞은, 냉혈한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도 그럴 것이 아리따운 동심의 세계에서 산타클로스에 대한 환상을 산산이 조각낸 범인도 바로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한 마디였다. 오늘의 운세도, 타로 궁합도, 요정도, 맑음 인형도, 소원을 들어주는 별똥별도! 자꾸만 과학적 근거를 찾아 대는 문장들은 순수하고 따뜻한 세상을 부수지 못해 안달이 난 것만 같았다. 게다가 과학은 전쟁 무기 또는 인종차별의 근거로서 냉혈한에 의해 실제로도 종종 악용되어 왔다. 그래서였을까, 따뜻하고 물렁물렁한 세계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차갑고 딱딱한 과학이 조금 미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앞으로 소개할 두 권의 책을 읽고 내가 깨달았던 점은, 과학은 죄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세계 대전에 쓰인 핵폭탄처럼 과학은 파괴적이고 잔학한 목적에 충분히 남용될 수 있고 우리의 역사 속에서 그러한 과오는 종종 반복되어 왔다. 그러나, 동시에, 어떤 과학은 인간의 한없이 따뜻한 면을 비추어 주기 마련이다. 다정한 과학과 친구가 되고 싶다면, 당신에게 다음의 책 두 권을 추천한다.

 

 


2. 첫 번째 도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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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생존의 논리는 아주 오랫동안 야생의 자연뿐 아니라 인간 사회 깊숙한 곳까지도 지배해 왔다. 세상은 냉정한 곳이다,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될 뿐이다. 경쟁 사회에 내던져진 우리들은 도태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타인을 밟고 올라가라는 명령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으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적자생존은 오해다'라는, 아주 도발적인 주장으로 서문을 연다. 그는 신체적으로 가장 강한 최적자가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의 흔한 통념에 반대하며 최종 생존자는 오히려 '다정한' 자였음을 드러낸다. 책에서 제시하는 한 흥미로운 실험을 살펴보자. 과학자들은 과일이 산처럼 쌓여 있는 방에 보노보 한 마리를, 그리고 여닫을 수 있는 철창으로 분리된 방에는 다른 보노보들을 들여 실험을 진행했다. 놀랍게도, 보노보는 먹이를 독차지하지 않고 직접 철창을 열어 다른 보노보들에게 과일을 나누어 주는 모습을 보였다. 심지어 그 보노보는 같은 무리가 아닌 처음 보는 낯선 개체와 과일을 나누는 데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또한, 학자들은 보노보와 침팬지의 번식 결과를 비교했는데, 조사에 따르면 가장 다정한 성격의 수컷 보노보와 정반대 성격의 수컷 침팬지를 비교했을 때 보노보가 훨씬 많은 새끼를 낳으며 성공적으로 살아간다. 즉, 침팬지의 폭력성보다 보노보의 다정함이 적자생존에서의 승리를 이끌었다. 이처럼, 진화 과정에서의 생존자는 다른 이들을 지배하는 폭력적 개체가 아닌 상호 호혜성을 지니고 협력하는 개체다.


인간이 살아남았던 이유 역시 '다정하기' 때문이다. 저자에 따르면 호모 사피엔스 외에도 최소 4개의 인간 종이 있었고 모두 기술, 문화, 언어 수준까지도 비교했지만, 딱 한 가지 호모 사피엔스만이 사회 연결망의 급속한 확장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이 연결망을 이용해 호모 사피엔스는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기술을 발전시키고 더 많은 식량과 자원을 확보하였으며, 다른 세 종의 멸종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인간이 유약한 신체 조건을 가지고도 이토록 오랫동안 살아남았던 비결이 바로 여기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독자에게 단순하고 모호하게 그저 '다정해지세요'라고만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다정함이 불러일으킨 치명적인 부작용까지도 꿰뚫어 보고 있다. 그는 '엄마 곰'을 통해 이것을 설명하는데, 엄마 곰은 아기 곰을 너무나 사랑하여 새끼 앞에서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모습이다. 그러나, 만약 아기 곰을 조금이라도 건드린다면, 아기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엄마 곰은 순식간에 잔혹하고 흉포한 모습으로 돌변하게 된다. 

 

이처럼, 내집단에 대한 극도의 다정함은 종종 외집단에 대한 폭력성을 불러일으킨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모든 차별과 폭력의 원인이, 아이러니하게도 내집단에 강한 동질성과 애정을 느끼는 '다정함'에 있던 것이다. 그리하여,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 이 책은, 동시에 어떤 경고를 던지고 있다. 타인에 대한 손쉬운 비인간화와 타자화를 경계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열린 마음으로 접촉하라고. 


혐오가 팽배한 현대 사회에서 이 책은 단순히 흥미로울 뿐 아니라 시의적이다. 특히, 과학 책인 만큼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언어를 사용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다정함'이라는 주관적인 개념이 왜 필요한지 설명할 명료한 언어를 선물 받은 듯했다. 왜 다정해야 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가끔은 내가 너무나도 이상주의적인 사람인지라 모호한 감성에 취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 생물학적 관점에서는 생존을 위해 다정함이 '필요'하다는 설명을 읽으니, 마음속 답답함이 가시는 기분이었다.

 

 


3. 두 번째 도서, <식물의 방식>



두 번째 도서는 베론다 L. 몽고메리의 <식물의 방식>이다.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가 포유류 중심의 동물을 위주로 설명을 이어갔다면, 이 책은 식물로부터 인간 삶에 필요한 교훈을 찾는다.


동물에게도 감정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는데, 과연 식물도 그럴까? 물론 이 책에서 식물의 정서를 다루지는 않지만, 대부분의 경우 식물에 감정이 있다는 생각은 쉽게 하지 못한다. 그것은 식물이 대체로 '음식' 또는 '경치'와 같이 인간에게 종속적이고 정적인 대상으로서 인지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흔한 예측과는 달리, 식물은 독자적으로 다양한 환경에서 생존하고 번성하며, 공생 관계를 형성하고, 다른 유기체와 협력하고 소통하면서 자신이 속한 공동체인 군락에 기여한다.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식물의 공동체적 기여 대목이었다. 나는 화단 한구석에 클로버가 무더기로 피어 있는 모습은 보았지만, 그 광경을 보며 '이것은 클로버 공동체다'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이타심과 이기심의 개념을 떠나, 식물 자체에 공동체를 이룰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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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식물은 '군락'이라는 이름의 공동체를 형성하며, 군락에 속한 각 개체는 서로 도우며 성장한다. 연구자들은 몇몇 사례로부터 '보모 식물'의 개념을 도출해 냈는데, 이는 나이 든 식물이 더 어리고 작은 식물을 돕는 현상이다. 식물은 한 개체만 고립되어 있을 때보다 여럿이 함께 자랄 때 더 잘 생장하는데, 보모 식물과의 호혜성이 그 이유였다.


예컨대 숲의 각 식물은 뿌리를 연결한 '균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이때, 나이 든 나무들이 균근 네트워크를 통해 어린 나무에게 당분을 운반하고, 이를 통해 어린 나무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 그런데, 이 관계는 단순히 어린 식물뿐 아니라 보모 식물에도 혜택을 제공한다. 예컨대 보모 식물 밑에 퇴적된 낙엽은 어린 식물의 양분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박테리아와 균류의 공생관계를 강화해 토질을 개선하여 보모 식물이 더 많은 꽃을 피울 수 있게 한다. 이처럼, 식물 군락에서의 상호 협조는 개체와 공동체 차원 모두에서 식물에 유용한 셈이다.


심지어 식물들은 위험 알림 체계 역시 갖추고 있다. 많은 식물은 초식동물과 같은 천적이 나타났을 때 휘발성 유기 화합물 형태의 신호를 보낸다. 이렇게 발생한 신호는 식물 자신을 보호하는 데도 쓰이지만, 무엇보다도 이웃 식물에 경고하는 역할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견고한 체계를 가지고 상호 협력하는 식물의 모습은, 인간에게 서로 도우며 상생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식물이 서로 돌보고 지원하면서 전체 군락의 상생을 이끌었듯이, 인간 역시 보모 식물과 같은 멘토와 그의 리더십이 발휘된다면, 지역사회 내 긍정적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다.


 

 

4. 나가며


 

나는 줄곧 과학이 차갑고 딱딱하다고만 생각했지만, 그건 과학을 핑계로 타인을 미워하고 멸시하는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경우를 너무나 자주 목격했기 때문이었다 -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산타 클로스를 뺏어 갔던 유년 시절의 사건은 바꿀 수 없지만.

 

과학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의 학문은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한없이 차가워질 수도 따뜻해질 수도 있다. 아름다운 시와 소설도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칼이 될 수 있고, 경제의 무심한 숫자는 소외된 이들을 보지 못하며, 권력 투쟁의 논리는 때로 타인을 객체로서 대상화한다. 그러므로, 내가 배우고 공부하는 모든 것들을 사회의 선한 영향력으로 따뜻하게 환원하고 싶다는 다짐과 함께,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김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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