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발견으로 설레고 낭만으로 포옹하는 '주거'의 모험 - 도서 '집이라는 모험'

글 입력 2022.12.15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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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가로 돌아온 후 제일 마음에 드는 것은 창문만 열면 들려오는 새소리였다. 서울 도심에 있던 원룸은 창을 열면 공사 소리와 근처 가게의 음악 소리, 지나가는 행인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기는 힘든 소음들이었다. 본가에 와서 또 한 가지 마음에 들었던 것은 공원이 가까이 있다는 점이었다. 정해진 거리를 두고 떨어진 가로수들과 달리 고독해 보이지 않는 나무들을 보며 걷는 것은 심리적 여유를 주었다.

 

내가 사는 집의 주거형태는 아파트이다. 만약 지금 사는 환경보다 훨씬 더 자연에 가까운 집에 살아야 한다면 나는 그 집을 택할까?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익숙해지겠지만 분명 쉬운 선택은 아니리란 생각이 든다. 나는 도시의 아파트 관리 시스템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사람이고, 공원 걷기를 즐긴다고 해서 자연에 존재하는 게 당연한 벌레까지 친숙해진 건 아니다.

 

무엇보다 학부 시절 답사를 갔을 때 나는 도시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임을 느꼈다. 산과 절과 마애불을 열심히 보러 다닌 그 답사에서 며칠째 풀이 무성한 자연을 보고 있자니 회색 건물이 그리워질 건 또 뭐람.

 

그럼에도 자연 가까이서 살아본 사람의 경험은 궁금했다. 각자 한 번뿐인 생에서 경험해 볼 수 있는 주거환경은 한정적이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와 다른 형태의 집, 다른 환경 속의 집에 사는 이의 솔직한 경험담이 늘 궁금했고, 마침 신순화 작가의 <집이라는 모험>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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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자연 속의 주택에 살고 싶었던 저자는 우연한 기회로 자신의 오랜 꿈의 집인 마당 딸린 이층집을 만나게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은 모두 땅에 있으니, 층층이 쌓인 구조의 아파트가 아니라 주택에 살고 싶었다는 그는 그 꿈의 집에 들어갔을 때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고 한다. ‘…이 집이다. 마침내 만났구나.’(p. 16) 집을 여럿 보다 보면 뭔가 오, 하는 울림이 있는 집이 있게 마련이라던데 저자 또한 그런 기분을 느꼈던 모양이다.

 

그러나 보는 것과 직접 사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다. 저자는 바로 ‘이 집에서의 삶은 하루하루 모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통창, 벽난로, 모닥불, 여러 손님을 불러 모을 수 있는 2층의 공간, 그리고 이 집을 품은 자연 그 자체가 이 집의 낭만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집의 낭만을 이루는 요소들은 그 자체로 불편함을 갖고 있기도 했다. 지은 지 수십 년이 된 집은 단열과 방풍이 허술했고, 멋들어진 풍경을 집 안까지 들여주는 통창 역시 겨울에는 한기의 통로가 되었다. 벽난로는 가족끼리 오붓한 분위기를 내기 제격이지만 그을음과 재를 관리하는 일을 동반했다. 모닥불도 피울 수 있는 너른 마당은 여러 과실수가 있어 아름답지만 그만큼 과일을 노리는 날벌레도 많다. 어디 날벌레 뿐일까. 수풀과 밭에는 뱀도 존재했다. 그리고 마당을 가진 자, 마당을 관리해야 하는 숙명을 지니게 될 지니 잡풀을 뽑고 또 뽑아야 하는 노동의 멍에를 지게 되기도 한다.

   

집을 둘러싼 환경에는 자연환경 외에도 사람이라는 요소 또한 존재한다. 저자의 집은 ‘문도 담도 없는 집’이기도 하여 저자는 간혹 상식을 저버리는 주민이나 방문객들로부터 황당한 일을 겪기도 했다. 전에 살던 사람은 어떠했다며 상의도 없이 마당 안의 과일을 따는 주민이나 저자의 집 주변을 임시 주차장 정도로 여기는 외지인들이 저자를 당혹케 한 것이다.

 

여기에 넓고 넓은 밭을 관리하고 농작물을 거두는 일과 큰 개 두 마리, 열댓 마리의 닭 키우기, 이 집을 드나드는 길고양이들의 사료를 챙겨주는 일 등이 합쳐진다고 한다. 그러니 저자와 그 가족들이 이 ‘자연 속의 마당 있는 이층집’을 지키고 가꾸기 위해 들였을 지난한 노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듯하다. 실제로 계절마다, 농사의 주요 시기마다 집에 필요한 자원을 미리 들여두는 노력, 오래된 집을 사람 살기 편하게 갈고 닦는 노력이 이 책의 곳곳에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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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험이 위험하고 사람을 지치게만 할 뿐이라면 수많은 모험가를 그 속으로 끌어들일 수 없었을 테다. 예상치 못하게 마음을 울리는 발견-그것이 감동이든, 놀라움이든, 호기심의 충족이든-이 있기에 모험이라는 여정은 사람들의 모험심을 자극한다.

 

저자는 이 집에서 발견한 계절의 아름다움을 얘기한다. 어느 계절에 어떤 나무가 먼서 새순을 보이기 시작하는지, 몇 월이 되면 무슨 식물이 꽃을 피우는지 알아가고, 첫물 채소로 요리를 해 먹으면 몸에 얼마나 원기가 도는지 몸소 느끼고, 마당에서 만나는 새와 나비의 이름을 도감에서 찾아보고, 여름이면 개구리 가족이 우는 소리를 듣고, 겨울이면 집 근처 언덕에서 눈썰매를 타는 일상. 사시사철의 발견을 열거할 때 저자의 기쁨과 자연에 탄복한 감정이 고스란히 묻어나 읽는 이도 조용히 미소 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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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 발견과 노력의 과정 속에서 가족의 유대감이 더 깊어지는 것을 저자는 이 집에서의 생활하며 얻게 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가치라고 말한다. 사실 도시의 아파트에서 살다가 교외 마당과 밭이 딸린 집으로 이사 오면서 가족들이 겪은 불편도 현실이었다. 이 불편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가족의 유대감이 더 강해졌다 느끼는 데에는 노동과 이 집에 대해 저자가 가지는 기본적인 태도 때문일 것이다.


 

이 집에 오면서 각자 감당해야 할 불편함이 생겼다. 남편은 직장이 더 멀어져서 그만큼 출근 시간이 빨라졌다. 새벽 다섯시 반에는 나서야 한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커진 집에서 농사와 관리, 개와 닭을 돌보는 일까지 내 일도 몇 배는 늘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학교를 오가고 친구를 만나는 일이 더 힘들어졌다. 자연과 마당을 선택한 만큼 감수해야 하는 불편이었다. (p. 234)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하게 되는 것, 마당 넓은 집에서 살며 겪는 일이다. (p. 219)

 


그는 매일의 수고로움마저 이 꿈의 집의 특징으로서 감내한다. 저자가 이 집에 가지는 기본적인 태도는 다분히 낭만적이다. 그는 ‘낭만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 말하며 노동 또한 모험의 당연한 요소로 받아들이는 것만 같다. 낭만에 수반되는 불편이란, 낭만을 맛볼 때면 사르르 녹아 그 다음 불편도 그 다음 낭만을 위해 기꺼이 감수할 수 있다는 듯이.


자연 속 집에 살며 변화하는 것은 새로운 경험의 유무만이 아니다. 자연관과 생명관 같은 커다란 가치관도 변화한다. 자연 속에 살며 겪는 만남과 이별, 생명과 죽음에 대한 담담한 받아들임이 저자의 글에 들어 있다.

 

 

이 집에서는 매일 무수한 생명들이 새로 오고 또 죽어간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죽음이란 길에 널린 돌만큼 흔하다. (...)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물통에 빠져 죽고 만 병아리를 처음 본 날은 눈이 붓도록 울었지만 이젠 어떤 죽음을 마주해도 담담하게 묻어주게 되었다. 생명은 태어나고, 번성하고, 다시 생명을 남기고 죽어간다는 것을 이제 아이들도 안다. 사람도 다르지 않다는 것도. (p. 182)

  

 

물론 처음부터 죽음에 담담했던 것은 아니다. 로드킬을 당한 길고양이나 몸이 아파 죽은 고양이 노랑이, 길고양이들에게 죽은 산새들을 보며 마음 아파했던 작가였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작가의 집에서 키우는 닭이 낳은 유정란을 빨리 꺼내오지 않았다가 닭이 알을 품어 달걀 안에서 병아리가 자라고 있었고, 저자는 그것을 모르고 평소처럼 계란 요리를 하려고 계란을 깼다고 한다. 노란 계란 위로 핏물이 번진 것을 보고 놀란 저자는 한동안 계란을 먹지 못했고, 자신이 먹는 것이 생명이었다는 생각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들어 이후로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계란을 마트에서 사 먹던 때와는 너무나 다른 경험, 다른 감정이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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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양한 것을 가르쳐 준 집이었으나 이별의 때는 다가온다. 저자가 사는 동네에도 개발의 바람이 불면서 집주인이 집을 매물로 내놓게 되었다. 저자와 남편은 12년간 가꾸고 살아온 집을 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농사일도 손에 잘 잡히지 않고 한동안 마음이 붕 떠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붕 뜬 마음을 달래준 것도 결국은 이 집에서 지낸 열두 번의 열두 달이 선물한 추억들이었다.

 

나는 저자와 달리 아직 내가 살 집을 온전히 내 손으로 골라본 적은 없다. 자취를 할 원룸을 고를 때도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다. 내가 내 조건을 따져서 직접 고른 집에 살며 세를 내고 집에서 생기는 문제도 내 손으로 해결하며 사는 것이 어른의 삶의 조건 중 커다란 하나라고 여긴다. 그래서 그러한 선택 아래 감내하고 기뻐하며 산 열두 번의 열두 달이기에 저자의 마음을 다시 곧게 일으켜 세워준 것이라 생각된다.

 

책의 말미에서 저자는 가족이 새롭게 둥지를 틀 곳을 찾고 있음을 보여준다. 쉽지 않겠지만 그는 또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모험을 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의 또다른 모험을 응원하는 동시에, 앞으로 내가 살아갈 집과 해나갈 모험에는 어떤 풍경이 있을지 상상해 보며 책을 덮는다.

 

 

[신성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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