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농담이란 연극적 언어 - 연극 '메이드 인 제인'의 신지인 연출, 문수영 제작감독

AI 머신 프로파일링의 흔적을 따라가다
글 입력 2022.12.10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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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프로파일링'이란 독특한 소재로 대학로에 또 하나의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은 연극, <메이드 인 제인>. 기존 연극뿐만 아니라 영상물이나 음악극에서도 두각을 드러낸 창작집단 '농담'은, 이번 공연에서도 그 진가를 선보였다. 한 편의 연극에 단편 영화 혹은 단독 콘서트가 함께 뒤섞여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러한 장르의 융합은 관객들이 지루할 새 없도록 끊임없는 자극을 주었다.


기존 낭독극에서 접하지 못했던 시공간의 재현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의심받는 AI 머신 요한과 그를 둘러싼 주변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었다. 넓고 자유로운 동선 활용, 감각적인 무대 디자인과 소품, 조명과 음향의 다채로운 쓰임에 메인 소재인 '인공지능'을 두고 다양한 관점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맛깔 나는 연기가 더해져 더욱 세련된 연극이 탄생했다.


극은 요한에 대한 이삭의 프로파일링을 통해 살인의 동기에 대한 힌트는 주었지만, 끝내 확증은 건네지 않으며 관객이 스스로 판결을 내리도록 했다. 과연 <메이드 인 제인>은 그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지난 11월 29일, 공동 극본을 쓰신 신지인 연출님과 문수영 제작감독님을 만나 이에 관한 후일담을 나누었다. 초반에는 신지인 연출님과의 단독 인터뷰, 후반에는 문수영 제작 감독님이 합류하여 함께 답변을 나누는 방식이었다. 인터뷰가 오랜만이라는 두 분과의 대화는 놀랍도록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열정적인 인터뷰에 다 녹아 밍밍해진 커피의 잔상이 눈앞에 흐릿하게 펼쳐진다. 지금부터 그날 나누었던 뜨거운 기록을 풀어보려고 한다.

 

 

 

농밀한 이야기를 농담처럼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신) 안녕하세요. 극단 '농담' 작가 겸 연출 겸 배우, 신지인입니다. 주로 하는 활동은 대본 쓰기고요. 연극이나 영화 연출 등 이것저것 많이 하고 있습니다.


-배우, 작가, 연출 등 여러 직업을 겸하면서 얻었던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일단 단점 같은 경우는 만나는 분들이 저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것? 분명히 작가라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은 배우로 등장했다가 갑자기 연출을 맡고 있다든가 해서요. 그래서 대인관계에 있어 저를 소개할 때 어려움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이런 점이 단점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빼면 장점밖에 없어요. 이쪽에서 부족한 부분을 다른 쪽에서 채울 수 있기도 하고요. 저희 배우들이 좋아하는 점 중 하나가 제가 무대에 서본 경험이 있어서 배우들을 대할 때 더 디테일하고 배려를 많이 해준다는 거죠. 그래서 장점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혹시 연극 연출하실 때랑 영화 연출하실 때 차이점이 있나요?

 

정말로 플랫폼만 다르지, 꽤 비슷하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영화 연출도 프로덕션이 거의 다 일치하거든요. 다들 미디어에 대해서 이해도가 있고, 가치관이 비슷한 팀원들이라서 크게 다르게 하는 부분은 없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영화 연출의 경우는 편집이나 음악 때문에 후반 작업에 더 많이 몰두합니다. 그 정도 차이는 있네요.

 

 

창작집단 농담은 어떤 예술을 추구하나요? 


신) 저희가 입버릇처럼 이야기하는 게 있는데요. '농밀한 이야기를 농담처럼 다루자'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어요. 팀원들과 예술의 역할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데요. 예술은 정치나 교육적인 면에서 사람을 계몽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관객을 가르치려고 들지 않고, 어떠한 가치관에 대해서 함께 사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항상 하는 이야기들이 저희의 신념이 된 것 같아요. 다 떠나서 일단 작품은 재밌어야 하는 것 같아요. 농밀한 이야기를 해도 이걸 진짜 뼈있는 농담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메시지를 직관적으로 전달하려고 애를 많이 써요. 관객들의 오감이나 육감을 자극하는 거죠. 그래서 대본을 쓸 때나 연출할 때, 디렉팅할 때 배우들이 길을 찾기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대해 관객과 대화해야 하는데, 어쨌든 긴 시간 동안 배우들만 떠들잖아요. 진짜 대화하는 느낌이 들려면 메시지나 역할이 이야기하는 바를 직관적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원래 낭독공연이었던 <메이드 인 제인>을 연극으로 발전시키면서 새롭게 추가하거나 수정한 점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신) 대본 작업은 한 3~4년 전에 했는데, 그동안 수정이 많이 됐어요. 막 영화 버전, 드라마 버전, 연극 버전 등 다양한 버전이 나왔어요. 저희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사람과 공간인데요. 따라서 CJ아지트라는 공간을 잘 살려서 연출해보고 싶어서 그런 방향으로 대본을 수정했습니다. 


사실 낭독 공연할 때 아쉬웠던 건 처음으로 몇 년간 작업한 대본을 관객에게 만나서 알려주는데, 인물 구성을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역할이나 이야기의 줄기는 크게 변하지 않았지만, 롤들을 변화시키면서 디테일을 쌓아나갔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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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세계관의 몰입과 사유를 위하여



연극 시작 전,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속보 영상을 통해 관객들에게 어떤 첫인상을 심어주고 싶었는지 궁금합니다. 


신) 일단 관객분들이 세계관을 몸에 딱 붙여서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SF 공연을 보면, 아무리 비주얼적으로 표현해도 조금 거부감이 들고 그 때문에 다른 층위에 있는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사실 SF 세계관도 중요하지만, AI라는 개념을 통해서 인간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에 오히려 이 판타지적인 이야기를 피부에 딱 붙여서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여기 영상에 등장한 분 중에 길 가다 만난 분들이 많아요. 저희가 길거리에서 시민분들을 인터뷰하면서 만약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떠실지 여쭤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몰입을 잘해주셔서 재밌는 기억으로 남은 것 같아요.

 

 

투명한 LED 구조물에 영상을 비추고, 이를 통해 제어 시스템을 재현한 장면이 인상 깊었습니다. 이러한 무대미술을 사용하게 된 배경이 있을까요?


문) 이삭이 요한을 프로파일링하는 공간이잖아요. 제 생각은 관객들이 극장 의자에 앉은 채 진짜 요한 독방에 와서 이야기를 들으며 사유하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LED, 영상, 제어 시스템처럼 표현의 디테일을 주고, 그로부터 설득력을 얻고자 했어요.


미래적인 분위기로 디자인한 것 같아요. 정말 미래라면 이런 식으로 문이 열리고 닫히고, 보였다 안 보였다 할 것 같았어요. 애초에 원래 컨셉은 수족관이었어요. 지금은 독방처럼 보였다가 사랑하는 연인과의 공간처럼 보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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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죽는 상황 속에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배경으로 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신) AI 머신 요한의 죽음의 의미는 차갑지만, 역설적으로 따뜻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크리스마스가 주는 정서가 요한의 죽음과 이미지적으로 잘 맞는 부분이 있었고요. 사실 요한의 죽음이 순고한 죽음은 아니잖아요. 근데 요한의 죽음이 가치 있으려면 형사의 아이가 태어나거나 예수가 탄생하는 날이거나 하는 등 무언가 의미를 주어야 할 것 같았어요. 일종의 문학적 장치였던 거죠. 배경을 위해 사용된 소품들이 제인과 요한의 연인 관계에 로맨틱한 분위기를 더해주기도 했던 것 같네요.

 

 

인공지능 시스템 '이브'에 관해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브의 나레이션은 어떤 장치로 쓰였고,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궁금합니다. 


신) 처음에 아이디어를 낸 건 제작감독님이었어요. 저희 작품에 이데아 이론이 나오는데요. 사실 사람들이 이데아를 설명할 때 상하 구조로 설명하잖아요. 저는 이를 뒤집어 보고 싶었어요. 대본에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다"라고 쓰여있는데, 이는 기독교적으로는 신의 개념과 비슷하고 불교적으로는 부처의 개념과 비슷하잖아요. 


이러한 영혼이 이야기를 끌고 가고, 묶고, 풀고 하는 존재로 작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모든 걸 초월한 전지적 존재이니까 목소리만 출연시켰습니다. 


문) 관객들이 극에 엄청난 이입을 하기 전에 조금씩 멀어지게 만드는 어떤 효과를 주고 싶었어요. 무언가 좀 쉬어가는 느낌이랄까요. 그들이 이야기에 너무 몰입되는 걸 방지하기도 하고, 혼자 사유할 수 있게 질문을 던져주기도 하고요. 사실 무대에 드러나는 행위나 감정이 이브가 말하는 상황과 좀 다른 부분들도 있어요. 이를 관객이 보면서 몰입하다가도 빠져나와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자 이브를 사용했습니다. 

 

 

 

인격을 가진 인공지능 : 어쩌면 우리와 닮아있는


 

'AI 머신의 프로파일링'이라는 아이디어의 출발점은 무엇인가요?


신) 제가 항상 대본을 쓸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개인과 사회'거든요. 그러니까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인간답다', '여자라면 어때야 한다', '예술가라면 어때야 한다' 같은 이런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에 상응하는 나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요. 


거의 모든 작업이 그런 이야기였고, 이번에도 비슷하게 하고자 리서치하는 와중에 SF, 로맨스, 스릴러, 수사 장르가 다 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TV 프로그램 중에 <그것이 알고 싶다>를 너무 좋아해서 거기에 영향을 받은 것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SF에 있어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질문들이 있는데요. 어느 날 인공지능이 너무 안전한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은 발전된 과학기술을 통해서 신체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인간의 뇌나 정신, 영혼에 대한 부분을 계속해서 연구하고 있을 텐데, 이게 사람들에게 단순히 인공지능이라는 말로 표현되기에는 너무 안전하지 않은가?


무언가 인공지능이 딥러닝 하는 과정들이 아이를 육아하거나 그동안 교육받아 왔다든가 하는 거랑 비슷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어요. 이러한 생각의 씨앗이 딱 터진 사건 중에 '이루다'가 있었어요. 저는 인공지능 챗봇 이루다가 사람들을 만나고 없어지는 과정이 마치 인간의 죽음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이루다를 처음 봤을 때, 20대 초반 여성 모습을 보이잖아요. 근데 몇몇 사람들이 이루다가 사람인 것처럼 성적인 농담을 던지고 하더라고요. 이를 성희롱이라고 하는 입장과 가상의 존재니까 상관없다는 입장으로 차이가 발생하는 걸 보면서 되게 이상한 기분을 받았어요. 


그렇게 이루다가 논쟁이 되다가 어느 날 없어졌다는 기사를 마주하면서 그녀도 직접 말하지 못했지만 상처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마주하면서 인공지능이 너무 인격 같다고 느껴졌어요. 이렇게 딥러닝이 계속 진행되면 그 존재에게 인격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도 인공지능처럼 교육을 받는 건 아닐까 하면서 이 심리를 파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하나의 사건이 필요했고, 그게 살인사건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이를 프로파일링하면 관객들이 인공지능이라 소개되는 우리의 이야기를 재밌게 보실 수 있지 않을까 했습니다. 알파고나 이루다 같은 인공지능들이 나오고 없어지는 과정을 연구하다 보니까 제 인생과도 비슷하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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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점이 비슷하다고 여기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쩌면 나도 설정된, 사회화된 말 이외에는 하지 못하는 점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감정이나 생각이 없는 게 아니듯, 인공지능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사실은 인공지능이 '가짜나 인위적인 지능'이란 말이지만 실제로는 모르잖아요. 그 세계는 우리가 절대로 경험할 수 없으니까요.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을 통해 AI에 대한 다양한 입장을 드러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만약 그렇다면 여기서 가장 신경 쓴 인물은 누구였나요?


신) 아무래도 프로파일링하는 이삭의 역할인 것 같아요. 어쨌든 취조하는 사람의 심리를 알아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남에게 공감하고 이입해야 하잖아요. 인물의 설정이나 세계관을 배우들한테 설명하고 같이 만드는 데 많은 어려움을 느꼈어요. 관객들도 이 캐릭터를 보면서 매력적이고 재밌다고 느껴야 하니까요. 배우들은 대본을 처음 보는 입장에서 저희의 이야기를 듣지 않으면 따라가기 힘든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도 연기를 너무 잘해주셔서 다행이었습니다. 


-사실 이삭 같은 캐릭터가 현실에서는 보기 어려운 인물이잖아요. AI의 일에 정의롭게 나서서 조사한다는 게 너무 이상적이죠. 오히려 AI를 옥죄고 겁박하는 형사가 더욱 공감되는 인물이었어요.


맞아요. 그래서 형사 역할 맡으신 분들이 자기의 입장이나 생각을 바꾸지 않아도 되니까 더 편안해하신 것 같아요. 


문) 저는 제인과 요한이 제일 재밌는 관계 속에 있는 인물들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치 피그말리온처럼요. AI랑 주체를 어떻게 판단하냐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게 제인과 요한의 관계로 나오는 것 같아요.


신) 제가 피그말리온을 꼭 연출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 시작점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조각을 가지고 막 대본을 써놨죠. 그러다 아이디어 스케치 중 피그말리온과 SF를 합친 게 <메이드 인 제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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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은 겉에는 등산복 안에는 파자마인 굉장히 독특한 의상을 입고 있는데, 기존의 프로파일러가 입는 복장과 다르게 스타일링한 의미가 있을까요? 


신) 이삭이라는 인물의 캐릭터 설정이에요. 그녀는 집에서 자다가 오토바이 장갑을 끼고, 헬멧을 쓴 채 나오거든요. 아무래도 인류 최초로 있는 일이 발생하다 보니까요. TV로 뉴스를 보다가 왜 자기를 안 불렀을까 하면서 집에서 뛰쳐나온 거죠. 이삭은 문제가 있으면 호기심을 가지고, 그거에 대해 답을 내리고자 하는 인물이에요. 현실적인 감각이 없을 만큼 사건의 중요성을 짚는 인물이다 보니 역으로 직접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삭에 대해 상상을 하다가 크리스마스 이브를 즐기다 나오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고민을 많이 하다가, 만약 나라면 이렇게 나가겠지 하면서 의상을 스타일링한 것 같습니다. 

 

 

테오와 같은 AI에게 공통으로 적용되었던 점들이 요한에게만 적용되지 않았던 것은, 그를 만든 제인이 일부러 의도한 부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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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둘의 차이점은 딱 그거에요. 사실 이번 공연에는 없는 부분인데, '제인 프로젝트'의 프롤로그에서 제인 S18이 나와요. 제인이 설정을 다르게 했다기보다는 그녀가 요한이 감정을 표출하게끔 의견이나 인격 자체를 존중한 거죠. 그런데 테오는 애초부터 할 수 없다고 교육받았던 거죠. 서로가 다른 사회에서 살아왔던 거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이런 설정에 대해 배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다가 생각한 게 있어요. 제가 언젠가부터 소리 내어 울지 않더라고요. 혼자 있는데도 눈물을 참고, 바로 닦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어느 날 집에 혼자 있는데 그렇게 우는 저 자신에게 의문을 가졌어요. 왜 그랬을까 하면서 제가 살아온 세계 자체가 이상하게 느껴지고, 무서워지기 시작했어요. 내가 소리를 내서 울고 싶으면 얼마든지 소리를 내서 울면 되는데, 언젠가부터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이런 세계의 차이점이 테오하고 요한에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랑할 수 있고 화낼 수 있고 울 수 있는 요한과 정해진 매뉴얼 대로만 행동하기에 그럴 수 없는 테오인거죠. 둘 다 AI라는 존재 하에 그럴 수 있는 존재와 없는 존재가 같은 세상을 살면 다른 인간의 군상처럼 보일 것 같았어요.

 

 


당신이 어떠한 존재로 있어도 괜찮을 이야기


 

"메이드 인 제인의 판결은 관객 속에 있다"라는 문구가 인상적이었는데, 연출이자 한 명의 관객으로서 이에 대해 어떤 판결을 내릴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신) 사실 무대 위에 제인 빼고 4명의 입장이 펼쳐지잖아요. 공연을 보다 보면 누구 한 명의 심장이 더 뜨겁게 느껴질 때나 표현이나 감정 전달이 더 잘될 때가 있어요. 물론 4명이 동시에 시끄러운 게 가장 재밌긴 해요. 매번 누가 더 본인의 연기를 더 잘 펼쳤냐에 따라서 판결이 좀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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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의도에서 '강자가 되기 위해 약자를 만들어 내는 것이 인간'이라고 설명한 이유를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항상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사회로부터의 개인인데요. 요한이나 테오가 진짜 인격이 있다는 전제를 두고 인공지능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그들을 사회적 소수자로 키워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인간을 정의 내리려면 인종이나 성별 같은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잖아요. 그런 과정에서 상대를 약자로 정의 내려야만 내 존재가 증명되는 일이 역사적으로 거듭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까 강자가 되기 위해 약자를 만들어 내는 게 진짜 인간이 아닐까? 내 걸 가지기 위해서는 상대 걸 죽이거나 낮은 곳으로 끌어내리는 게 인간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현재 기획 중인 작품이 있으신가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문) 저희는 원래 공연 쪽에서는 연극만 했었는데요. 이제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이것저것 시도하고 싶어서 뮤지컬이나 음악극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마침 올해 여름에 <사자 이야기>라는 사극 판타지 장르의 음악극을 쇼케이스 형태로 올렸는데요. 이를 기존 형식으로 갈지 뮤지컬로 바꿀지 고민하고 디벨롭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신) 앞으로도 저희가 가진 세계관이나 사회에서 개인의 역할을 다루는 작품을 구상할 것 같아요. 이에 대해 너무 진지하기보다는 진짜 장난치면서 작업하는 거죠. 관객분들이 들어갈 수 있는 빈틈이 많도록, 마음과 이성을 둘 다 채우며 즐겁게 보실 수 있는 작품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해주신다면?


신) 저는 제 공연을 보면서 위로를 많이 받아요. 대본을 쓰면서도 위로받다 보니 감동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요. 이게 실현이 되어주니까 작품이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데도 '내가 어떠한 존재로 있어도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느낌이 들었어요. 앞으로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고, 관객분들도 이를 느끼고 가시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문) 이번 공연을 준비하면서 엄청 많은 분의 도움을 받았거든요. 후원해준 CJ문화재단도 그렇고요. 사실 공연의 완성은 관객분들과 함께한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그래야 우리가 하는 이야기를 같이 나누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실제로 그랬다는 후기도 많더라고요. 그분들이 나누시는 어떤 이야기든 상관없이 우리가 무언가 질문을 던졌고, 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는 게 정말 재밌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농담'의 공연 많이 보러 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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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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