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너절하지만 간절한 탈출구 - 영화 '썬더버드'

글 입력 2022.09.18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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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더버드_스타일리쉬 2차 포스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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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썬더버드>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수십 억, 수백 억… 일상에서 보기 힘든 규모의 돈이 오가는 가운데 모두가 대박을 꿈꾼다. 화려한 인테리어를 배경으로 잭팟을 터뜨린 누군가가 함성을 지르면 잘 차려입은 딜러가 다음 게임을 진행한다. 춤과 음악, 돈과 술이 함께하는 카지노는 영화에서 다루기에 여러모로 매력적인 장소다.


카지노라 하면 주로 외국을 떠올리지만, 한국에도 합법적인 카지노가 있다. 강원도 정선에 있는 강원랜드이다. 그러나 강원랜드가 주는 느낌은 우리가 봐 왔던 여러 영화 속 카지노와는 사뭇 다르다. 이 묘한 분위기를 잘 살린 작품이 있다.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2관왕을 차지한 영화 <썬더버드>다.

 

영화는 강원랜드가 있는 사북읍을 배경으로 5천만 원이 든 차 ‘썬더버드’를 되찾기 위해 뛰는 세 사람의 하룻밤을 그렸다.

 

 

 

현실에 충실한 느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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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더버드>는 카지노를 배경으로 하지만 화려한 카지노 내부 모습 대신 그 주위를 맴도는 사람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담는다.

 

태균은 사람들을 카지노로 태워다주는 택시기사다. 태균의 동생 태민은 빚쟁이에게 쫓기며 돈만 생기면 카지노로 달려가는 한량이다. 태민의 애인 미영은 도박장 주차장에서 수수료를 받고 카지노 마일리지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이른바 ‘콤프깡’을 하며 살아간다. 영화가 보여주는 건 카지노가 일탈이 아닌 일상이 된 이들의 풍경이다.


이야기는 태민이 전당포에 저당 잡힌 자신의 차 ‘썬더버드’에 5천만 원이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5천만 원이라는 돈은 웬만한 느와르 영화에서는 돈도 아니지만, 몇백만 원을 갚지 못해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태민과 태균에게는 구원과도 같다. 태균은 갚을 돈이 있기에 태민이 차를 되찾는 걸 돕기로 하고, 태민을 따라 다니는 미영 역시 자연스레 일행이 된다.


카지노 산업의 민낯을 담은 영상물은 다큐멘터리가 되거나 도박 중독을 경고하는 교훈적인 콘텐츠가 되기 십상이다. <썬더버드>는 카지노의 지극히 현실적인 모습을 담으면서도 태민 일행이 하룻밤이 지나기 전에 5천만 원을 찾아야만 하는 설득력 있는 이유를 보여주며 관객을 몰입시킨다.

 

또한 500만 원에 저당 잡힌 차를 되찾는다는, 비교적 쉬워 보이는 미션이 여러 가지 악재가 겹치며 점점 어려워지는 전개를 통해 영화적 재미를 놓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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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영화의 진짜 매력은 인물들의 여정이 파국으로 치달으려 할 때면 금세 현실적인 요소가 끼어들어 균형을 되찾는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전당포에서 주인 할머니와 실랑이를 벌이다 할머니가 뒤로 넘어졌을 때, 관객은 기어이 살인까지 저지른 태민이 큰 곤경에 처하고 사건의 규모가 커져 ‘영화 같은 내용’이 펼쳐질 거라 예상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 할머니는 타박상을 입었을 뿐이라는 게 밝혀지고, 할머니가 태균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내용이 이어진다.

 

이런 식으로 현실적인 요소를 놓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영화는 클리셰를 벗어나 신선해진다. 이런 배경, 이런 류의 인물이 나오는 분위기의 영화에 으레 있을 거라 예상되는 쓸데없이 가학적이거나 원색적인 장면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인물들의 목표와 그 목표를 이뤄야 하는 시간적 제한이 명확하기에,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한다.

 

 

 

얽히고설키는 사북읍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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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더버드>를 보는 또 다른 재미는 영화를 이끌어가는 세 인물의 개성과 그들이 만들어가는 관계에 있다.


형제인 태균과 태민은 초반에 서로 전혀 닮지 않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늘 술에 취해 있는 태민이 즉흥적이고 그저 지금 자신이 처한 일을 무마하기에 급급한 인물이라면 태균은 택시기사라는 직업이 말해주듯 목표의식을 가지고 차근차근 순서대로 일을 처리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게다가 태민이 평생 이곳에서 도박을 하며 하루살이 생활을 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태균은 어떤 이유든 서울에 나가 사북에서와는 다른 삶을 시도해본 사람으로 나온다.


처음부터 숨기는 게 없는 태민과 달리, 붕대로 감춰진 손으로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표정을 한 태균은 영화가 전개될수록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렇게 서서히 나타나는 면모는 동생인 태민과 닮은 부분이 많다. 태민과 달리 도박은 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코인에 투자했고, 그 때문에 빚을 져서 쫓기는 신세이다. 그는 늘 자신이 동생보다 나은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어하지만 관객 입장에서는 별반 다를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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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형제와 함께 다니는 미영은 이질적인 인물이다. 현실적인 성격이지만 정이 가는 사람에게 감정을 숨기지 않고, 오랜 연인인 태민의 곁에 머문다. 얼떨결에 썬더버드를 찾기 위한 여정에 합류했지만 사실 차에도 돈에도 큰 관심이 없다. 미영은 그저 권태로운 시간을 견디기 위해 하루도 바람 잘 날 없는 태민을 따라다니며 재미와 스릴을 갈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 셋 말고도 매력적인 인물이 다수 등장한다. 오랫동안 사북읍을 지켰을 전당포 할머니, 이혼 후 모종의 이유로 이곳에 들어와 택시기사로 일하는 옥선, 도와주는 척하지만 사실은 형제를 우습게 보는 카센터 사장, 삼촌을 도와 빌려준 돈을 받으러 다니는 준모… 이들은 사북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얽히고설킨 채 살아가고 있다. 각자의 욕망에 휘둘리며 서로를 먹고 또 서로에게 먹히는 모습은 마치 먹이사슬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아무도 승자가 될 수 없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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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어딘가로 떠날 수 있는 수단이다. 거기다 5천만 원까지 들어 있다는 썬더버드는 태균에게도, 태민에게도 사북 아닌 다른 곳으로 데려가 줄 것만 같은 탈출구다.

 

썬더버드를 되찾기 위한 이들의 고군분투가 단순히 돈을 찾기 위한 게 아니라 사북읍, 더 나아가 이 악순환을 벗어나려는 발버둥으로 보이는 까닭이다. 하지만 가까스로 되찾은 썬더버드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5천만 원의 1/10에 불과한 500만 원이었다.

 

날이 밝아오고, 지난밤의 꿈은 물거품처럼 사라진다. 태민은 다시 술을 퍼마신다. 태균은 빚쟁이에게 쫓긴다. 앞서 사북읍 사람들의 관계가 먹이사슬 같다고 했지만, 여기에 완전한 포식자는 없다.

 

태균은 빚을 진 사람인 동시에 다른 사람에게 빚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태민은 준모에게 쫓기지만 그는 학창시절 준모를 때린 전력이 있다. 준모의 삼촌은 준모에게 잔인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좁디좁은 사복에서, 병든 아버지를 건사하려면 잔인해져야 한다고. 그 말처럼, 이곳에서는 더 잔인한 사람, 인정사정 보지 않는 사람이 우위에 선다.

 

그러나 그렇게 우위에 선다 해도 그 위치는 불안정하다. 이들은 매번 살아남기에 급급할 뿐이다. 이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는 결국 돈이기 때문이다. 돈 앞에서 돈독해 보이는 형제간 우애도, 사랑도 소용없어진다. 돈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는 이상 썬더버드를 되찾아도 무용하다. 그저 남에게 돈을 갚고 또 다른 사람에게 돈을 받아내기 위한, 언제나와 같은 사북에서의 하루가 시작될 뿐이다.

 

그러니 돈을 따라간 게 아니라 태민을 따라 이 여정에 합류한 사람, 돈으로 서로 맞물린 이 관계에서 그나마 비켜서 있는 미영이 사북을 떠나는 사람이 된 것은 당연한 결말일 것이다. 썬더버드가 간절한 건 태균과 태민이었지만 결국 썬더버드를 차지하고 사북읍을 떠난 건 미영이다. 그는 더 이상 새로울 게 없는 이 공간, 돈의 지배 아래에서 너절한 싸움을 반복하는 곳을 떠나간다.

 

통쾌한 결말이지만 완전히 마음이 편안하지는 않은 이유는 사북이 그저 세상의 축소판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엔딩 크레딧을 보며, 떠나간 미영이 어디에 있든 사북에서보다 행복하기를, 새로운 내일을 맞기를 바라 본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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