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화가 날 때, 이 일을 계속해도 되겠다고 생각해요." - 창작집단 살뮈 서경원 연출

글 입력 2022.09.0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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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극'이라 하면 흔히 청소년의 교육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극을 떠올리기 쉽다. 그것은 오해에 가깝다. 오늘날 청소년극은 이미 그 자체로 독립적인 장르로 인정받으며 활발하게 창작되는 추세다. 아름다운 그림책, 잘 쓰인 아동문학이 연령대에 상관없이 사랑받듯, 잘 만들어진 청소년극은 전 연령대를 아우르며 반응을 이끌어 낸다. 하지만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청소년극일까? 청소년이 주인공인 작품, 청소년 문제를 다루는 작품이 곧 청소년극일까? 일반 연극과는 다르기에 청소년극으로 명명되었을 텐데, 그 기준을 얘기하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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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서 어린이청소년극을 공부하고, 창작집단 살뮈를 만든 서경원 연출은 청소년극의 의미를 들여다보고 좋은 청소년극이란 무엇일까 고민하는 사람이다. 그 고민은 '청청로 축제'로 이어졌다. 살뮈가 2021년 시작해 올해 2회차를 맞는 청청로 축제는 청소년극의 여러 길을 모색하며 즐기는 자리로, 이번에는 두 편의 단막극 <6세션>과 <나를 불러내>가 발표된다. 서경원 연출은 두 작품의 총연출을 맡았다.


누군가의 처음을 만든다는 점에서 청소년극 작업은 큰 의미가 있다. 이번 청청로 축제에 오르는 작품 역시 누군가의 첫 번째 연극 경험이 될 것이다. 서경원 연출은 자신이 하는 일의 의미와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 계속해서 고민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향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를 지난 8월 30일 만났다.

 

 

 

“청소년극을 만들 때면 ‘나다운’ 작업을 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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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청청로 축제 중 <지수가 누구야> 공연 장면

 

 

제1회 청청로축제 소개를 보던 중 ‘어른 청소년’이라는 낯선 단어가 눈에 들어왔어요. 의미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특정 시기를 의미하는 단어는 아니었어요. 노인연극, 장애연극, 난민연극, 퀴어연극, 여성연극 등 많은 연극 장르에서 노인, 장애인, 난민, 퀴어, 여성 등 당사자가 배우로 무대에 오르곤 해요. 하지만 대부분은 당사자가 아닌 예술연극인들이 해당 이슈에 대해 사람들과 더 많은 소통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바깥에 있는 대상(노인, 장애인, 난민, 퀴어, 여성 등)과 관계를 맺는 방식으로 작업이 이루어져요. 그래서 에너지가 자연스레 바깥으로 향해요.


반면, 청소년극은 연극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 청소년이 아니었던 적이 없잖아요. 그렇기에 대상과의 관계가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부터 시작돼요. 그런 맥락에서 ‘어른 청소년’이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어른 청소년이 이 공연을 만든다고 생각하니까 잘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압박에서 조금 벗어나 ‘나다운 작업’을 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래서인지 청소년극을 할 때는 저를 포함해 모든 단원들이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모드’가 확 바뀌곤 해요. 연출로서 그런 부분을 발견할 때면 신기합니다.

 

 

이번에 무대에 오르는 두 편의 공연의 연출을 맡으셨습니다. 공연을 간략하게 소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6세션>은 한 소녀가 이상한 자전거를 만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담은 판타지 연극이에요. 살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눈 떠지는 시기가 있어요. 저는 그걸 ‘잠든 영혼을 깨우는 시기’라 부르는데,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그 순간에 대해 청소년 관객과 얘기 나누고 싶었어요.


<나를 불러내>는 실제 청소년들과 함께한 작업이에요. 정말 장사가 안되는 카페의 사장이 가게를 접는 날, 10대의 어느 날로 돌아가 그 시절의 자신을 지켜보고 얘기 나누며 위로받고 힘을 얻는 이야기에요. 실제로 저희가 기억이 깃든 장소에 가면 과거의 자기 모습이 자연스레 눈앞에 그려지잖아요. 어쩌면 모든 과거는 지나가 버린 게 아니라 우리가 알아채지 못할 뿐 동시대에 존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연극적 상상력에서 시작된 작품이에요.

 

 

두 공연의 연출 포인트도 귀띔해주실 수 있을까요?


<6세션>은 무대 위에서 실제 배우가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리며 관객과 소통하기를 바랐어요. 고등학생 때 제가 <죽도록 달린다>라는 연극을 봤는데, 관객이 무대 위에서 뜀박질하는 장면이 있어요. 거기서 받았던 에너지가 인상 깊었어요. <6세션>도 뭔가 잠든 것을 깨우는 이야기인 만큼 무대 위에서 물리적인 에너지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번에는 낭독공연이라 한계가 있겠지만, 내년 본공연 올라갈 때는 무대 위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선보였으면 해요.


<나를 불러내>는 중간에 즉흥 토론 장면이 있는데, 거기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청소년 배우들이 극중 캐릭터와 실제 자기 자신을 넘나들며 무대 위에서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작업했습니다. 작업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잘 짜인 극만이 아니라 어떤 순간이 충실히 녹아 있는 극도 좋은 청소년극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게 됐어요.

 

 

말씀을 듣다 보니 청소년 배우와는 어떤 식으로 작업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연기가 업인 성인 배우와 작업할 때와는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웃음) 사실 청청로 축제를 하기 전까지 제게 청소년과 함께하는 연극 작업은 예술이나 연극이라기보다 그냥 ‘일’이라는 측면이 컸어요. 대학에서도 대학원에서도 연극을 공부한 저는 제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기에 연극 작업을 가볍게 생각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속으로 구별 짓기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돌아보니 건방진 마음이었죠. 이 친구들과 하는 것도 연극이고, 예술이라는 걸 깨달은 건 청청로 축제를 하면서부터인 듯해요.

 

청소년과 함께하는 작업은 처음엔 되게 어려웠고, 혼란을 많이 겪었어요. 하다 보니 제가 다 맞춰주고 받드는 모양새가 되기도 했는데, 그게 제게도 이 친구들에게도 좋은 경험의 씨앗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가르치는 교육자 입장에 서서 무언가를 지시하는 건 또 잘 맞지 않았고요. 동료들과 할 때는 일부러 뭔가를 하지 않아도 다들 해보겠다는 열정이 있는데, 청소년들과는 그런 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이번에 선택한 건 연습 공간을 편안하게, 자유롭게 나오고 싶은 곳으로 만드는 것이었는데, 잘한 건지 잘 모르겠어요. (웃음) 장단점이 있더라고요. 작년과 올해는 다르고 내년은 올해와 또 다르겠죠. 매번 고민하며 청소년과 함께하는 작업 방식을 바꿔 가는 것 같아요.

 

 

 

“청소년극을 왜 하는지, 제게는 그 이유가 꼭 필요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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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청청로 축제 무대에 오를 <나를 불러내>

 


다양한 연극 중 왜 청소년극이었는지 궁금합니다.


멋들어진 말로 답변 드리고 싶지만, 사실 제가 일찌감치 자리 잡은 천재 스타일의 연극인이었다면 청소년극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연극을 공부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생각보다 제가 재능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명성을 얻고 돈을 많이 버는 것에서 연극 하는 의미를 찾는다면 저는 이 일을 그만둬야 했죠. 하지만 저는 연극을 할 때 이게 내 일이고 살아 있다고 느끼거든요. 그런 상황에서 청소년극을 한다는 게 일반 연극, 뮤지컬에서 정점을 찍을 자신이 없어서 나도 모르게 도망을 치는 건 아닐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렇기에 청소년극을 계속하는 이유를 찾는 게 중요했어요.


계속하게 되는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일단 청소년극을 공부하고 만들다 보니 나를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청소년극의 작업 과정이 저라는 사람과 잘 맞았어요. 청소년극을 하며 제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는 걸 깨닫기도 해요. 어른과 청소년 사이에는 어쩔 수 없이 무의식적인 위계가 존재하는데, 청소년극을 하면 그 위계를 계속 새롭게 인식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거든요.

 

 

그런 순간에 대해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어른과 아이가 아니라 그냥 사람과 사람이 모여서 함께 작업하는 것임을 깨닫고 인지하는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때면 제가 연출로서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수직적인 작업 방식을 벗어나, 하나의 질문·소재를 두고 모두가 함께 고민하게 되죠. 그렇게 되면 함께 연극 하는 사람을 단순히 연기술로 평가할 수 없게 돼요. 그때서야 연극이 갖는 힘이 발휘되는 것 같아요. 아, 이게 연극 작업을 하는 거구나 싶어요.


청소년극을 작업하며 연극을 더 깊게 공부하게 되기도 해요. 예전에는 선배님들의 공연을 보며 이야기를 ‘보여주는 방식’을 연구하기에 바빴다면, 청소년극을 계속하면서부터는 ‘보여주는 방식’ 이전에 그 안에 무엇을 채울지 같이 고민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하니까 우리만의 그림, 우리만의 문법이 자연스럽게 뒤따라오더라고요.

 

 

청소년 배우와 함께하는 작업이 연출님께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궁금합니다.


처음에는 청소년 친구들에게 저를 많이 투영했어요. 저도 그 시기를 살았기에 제가 그때 해결하지 못했던 것들, 실수했던 것들을 연극에서 해소하려 하기도 하고, 아이들을 좀 더 나은 길로 이끌어줄 수 있다는 마음도 컸어요. 근데 시간이 갈수록 제가 지치더라고요. 어느 날 지도교수님이 그런 저에게 과거의 제가 했던 실수가 있었기에 지금의 제가 여기 있는 거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제가 그 친구들을 함부로 가르치고 이끌어주겠다고 얘기할 수 없더라고요.


이제는 작업하며 청소년이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가, 그들의 시간대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느끼는가, 거기에 어떤 에너지가 있는가 보려 하고, 실제로 발견해내요. 저는 발견에서 멈추지 않고 연극 안에서 소통하고 싶어요. 연극 밖이라면 잔소리지만, 연극 안에서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고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좀 더 수월하게 할 수 있거든요.


또 청소년 친구들과 작업하며 제 자신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도 해요. 작업하면서 내가 이 일을 계속해도 되나, 이 일을 할 자격이 되나.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하는데, 아직은 괜찮겠다는 결론을 내리곤 합니다.

 

 

말씀하신 ‘이 일을 계속해도 되겠다는 깨달음’은 언제 찾아오나요?


화가 날 때요.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한데, 작업하다 보면 화가 날 때가 있어요. 제가 여기에 쏟는 에너지와 청소년 친구들이 쏟는 에너지가 다를 때가 있거든요. 구체적으로는 연습을 안 나오고 잠수를 탈 때도 있고, 약속을 안 지킬 때도 있지요. 그럴 때 저는 화가 나는데요, 화가 난다는 건 어떻게 보면 제가 그들에게 영향을 받고 또 주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일'이라면 좀 더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요. 그런데 감정에 동요가 생기니까 에너지를 쓰게 돼요. 더 나은 작업 방식은 뭐가 있을지, 어떻게 소통하면 좋을지 계속 연구하고 시도하게 되죠. 그럴 때 저는 내가 이걸 해보고 싶나 보다, 해내고 싶은 욕망이 내게 있나 보다, 그래서 이 작업을 계속해도 되겠구나 생각합니다.

 

 

하고 계신 일의 의미를 정말 깊이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연출님이 생각하시는 ‘좋은 청소년극’이란 무엇인지도 궁금합니다.


흔히 청소년극이라 분류되는 극은 셋 중 하나인 듯해요. 출연 배우들이 청소년이거나, 배우는 성인이지만 극이 청소년 이슈를 다루고 있거나, 청소년 이슈를 다루지도 않고 배우도 청소년이 아니지만 등장인물이 청소년이거나.


근데 이 셋에 다 해당하지 않는 청소년극도 있거든요. 요즘은 그런 걸 유의 깊게 보면서, 연극에 ‘청소년성’이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생각해요. 좋은 청소년극이란 창작 단체가 청소년성이 무엇인지 나름대로 함께 생각하는 과정을 거쳤을 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도 그걸 연구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희가 추구하는 ‘디바이징 씨어터’와 같은 작업 방식으로 이어지는 듯해요. 우리가 얘기 나누고 싶은 ‘청소년성’은 한 명의 극작가나 연출가, 하나의 예술관으로 펼치기에는 너무 크고 다채로운 개념이니까요. 좋은 청소년극을 위해서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과 입장이 필요하다고 봐요.

 

 

 

“결국 연극은 사람을 위한 일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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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청청로 축제 무대에 오를 <6세션> 창작 과정

 


앞서 ‘디바이징 씨어터’를 추구한다고 하셨는데, 그게 무엇인지 풀어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보통은 ‘공동 창작’이라고 해석되는데, 단순히 그렇게 풀어버렸을 때 온전히 전해지지 않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디바이징 씨어터는 공동창작의 개념보다는 함께 만드는 과정 속에서 공연 텍스트와 긴밀하게 연결되고, 여러 사람과 다양한 관계를 맺는 작업이에요. 그렇게 작업하면 더 이상 배우를 연기를 잘한다, 못한다 외모가 캐릭터와 부합한다 부합하지 않는다로 평가할 수 없게 됩니다.


예전에 활동했던 단체에서는 연출이 배우를 엄격하게 평가하며 자의적으로 캐스팅을 변경하기도 했어요. 물론 그렇게 했을 때 배우의 잠재성을 극한으로 끌어낼 수 있다는 순기능이 있지만, 그렇게 끊임없이 평가가 계속되는 작업 방식이 저와는 잘 맞지 않았어요. 제가 하는 작업에서는 좀 다른 것들을 논의할 수 있었으면 해요. 그걸 디바이징 씨어터 속에서 발견하는 중입니다.

 

 

앞서 연출님이 청소년극을 하는 이유를 여쭤봤는데요, 말씀을 듣다 보니 연극 자체에 대한 연출님의 생각도 궁금합니다.


많은 사람이 처음에는 연기하는 게 좋고 박수받고 인정받는 게 좋아서 무대에 서요. ‘연기를 하는 나’에 머물러 있는 거죠. 그런데 어느 순간이 되면 중심이 관객으로 넘어가고, 더 나아가 배우와 관객 즉 ‘우리’로 넘어가게 돼요. 그 시기까지 가지 못하고 계속 내가 하는 것에만 매료된 사람들은 결국 중도에 사라지거나 힘들어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저는 다행히 그 지점을 넘어서 ‘우리’라는 개념까지는 온 것 같아요.


모든 학문이 삶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생겨났다고 본다면, 연극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결국 사람을 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의사한테 왜 의사를 하냐고 물었는데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 의사가 되었다고 하면 좀 이상해지잖아요. 그런 의사에게 수술을 받고 싶지는 않죠. 그래서 저는 연극을 하는 이유도 상을 받고 싶어서, 박수를 받고 싶어서라면 역시 좀 이상하게 느껴져요. 연극을 통해 본질적인 뭔가를 이루고자 했을 때 부와 명예는 자연스레 따라오는 게 아닐까요. 그렇다면 과학자가 삶을 윤택하게 할 방법을 찾고 의사가 사람의 생명을 살릴 방법을 고민하듯, 연극을 하는 나는 사람의 ‘무엇’을 고민해야 될까요. 그 질문에 해답을 찾아보고 싶어서 ‘살뮈’라는 단체를 만들었어요.

 

 

그럼 앞으로 연출님이 살뮈에서 해보고 싶은 작업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어느 정도 청청로 축제가 자리를 잡고 제 공부가 계속된다면 첫 번째는 청청로 축제를 노인까지 포함하는 축제로 확장해 보고 싶어요. 청소년, 어른 청소년, 노인. 그러니까 전 세대가 연극으로 만나는 거죠. 결국 인간이 모이는 셈이에요. 두 번째로 살뮈의 이름으로 장기 공연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어요. 좋은 작품들을 많이 쌓아서 나중에 장기 공연을 할 수 있게 된다면 또 무엇을 해낼 수 있을지 궁금해요. 마지막으로, 아까 말했던 디바이징 씨어터를 제대로 연구하고 실천할 수 있는 극단이 되면 좋겠습니다. 디바이징 씨어터 안에서 창작자들이 연극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찾고, 충만하게 경험하며 작업을 함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무대에 오르는 <나를 불러내>가 끊임없이 나와 대화하고 나를 만나는 얘기인데, 나중에 제가 좀 더 나이가 들어서 지금 이 인터뷰를 생각했을 때 ‘이불킥’ 하면 어쩌나 생각하며 왔어요. 그런데 답변 드렸던 것들이 어쨌든 지금의 제 상태에서 나온 솔직한 내용이었으니까, 시간이 지나 좀 더 어른이 되었다고 해도 ‘그때는 잘 몰라서 그랬지’, ‘그때는 왜 그랬지’ 같은 생각을 안 하고, 지금 이 고민의 깊이와 진정성을 스스로 인정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세 가지를 꼭 해보고 싶습니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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