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타인의 안녕을 바란다는 것은 [도서/문학]

글 입력 2022.07.1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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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기다 보면 뜻밖의 소득이 있을 때가 있다. 내게는 이 영상이 그랬다. 뉴스 내용은 마치,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따뜻한 말을 형상화한 것 같았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상승률이 6%대를 기록했다. IMF 환란 이후 최고치로, 이번달에는 더 오를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격을 다 올리면 누군가는 굶는다며,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으니 가격을 못 올리겠다는 영상 속 사장님들의 말에 울컥한 이가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온갖 범죄와 혐오가 뒤덮인 기사 속에서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를 오랜만에 만나서인지, 며칠 동안 이 뉴스 내용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영상 속 가게 사장님들이 기억에 남았다. 2,000원에서 500원만 올리고도 미안한 국밥집 사장님, 가격을 다 올리면 누군가는 밥 먹기가 더 힘들어질 거라며 오히려 가격을 내린 냉면집 사장님의 마음을 헤아려보다가 실패하기를 여러 번이었다. 그분들의 타인을 생각하는 마음과 세상을 대하는 태도는 내가 내다볼 수 없을 만큼 깊고 무거웠던 탓이다.


그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은, 딱 헤아릴 수 없는 만큼 위로가 되었다. 쉽지 않은 세상을 다 함께 잘 살아보기 위해서 애쓰는 분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분들이 그 마음을 오래도록 변치않고 지켜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위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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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최근에 읽은 한 권의 책이 떠올랐다.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책은 일부 손님들과 사소한 시비로 고생하던 명업식 택시 기사님이 그 대안으로 손님과 소통하기 위해 준비한 노트에서 비롯되었다. 며칠을 고민하던 기사님은 한 손님에게 조심스레 노트에 대해 말하며 제목을 지어달라고 부탁드렸다고 한다. 손님은 <길 위에서 쓰는 편지>라는 멋진 제목을 붙여 주었는데, 알고보니 그분이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의 저자 박준 시인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된 노트가 어느덧 세 권으로 불어났을 때쯤, 수많은 승객의 이야기를 담은 <길 위에서 쓰는 편지> 책이 만들어졌다. 지은이는 승객들이고, 엮은이는 기사님이다. 달리는 택시 안에서 노트를 받아든 손님들은 하얀 종이 위에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읽으면서 내가 승객이라면 과연 어떤 이야기를 썼을까 고민하게 될 정도로, 책에는 솔직하고 사적인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행복하고 싶은데 잘··· 모르겠어요···.

노력해볼게요···.

 

p.87

 

 

밤이 되면 슬프다.

 

p.115

 

 

달리는 택시에서 뭔가를 써보긴 처음이다.

얼마 만의 일기인지. 내일 모레면 50인 나이.

잘 살아 온 걸까? 남은 기간 잘 살아 갈 수 있을까?

정답 없는 물음에 공허하지만 7남매를 키워내신 부모님 생각이 난다.

하늘나라에서 막내 아들이 이렇게 살아가는 모습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지···.

그저 하루하루 묵묵히 우리를 키워주신 것처럼 나도 그저 오늘 하루 충실하련다.

인생에 정답은 없으니···.

 

p.164

 

 

택시 안에서 펜을 드니 여러 생각이 든다.

목적지까지 가는 길, 가다 보면 도착한다. 

우리 모두는 가는 길 위에 있는 거다. 코로나도.

어떤 문제도 어딘가에 도달할 것이고 그게 안전한 결과였으면 좋겠다.

 

택시에서 내리고 나면 내 길을 가야지. 

모든 분들이 자기 길을 즐겁게 갈 수 있길 잠시 기도한다. 

이제 내릴 시간이다. 나도 힘내서 앞으로 가야지.

 

p.223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자꾸만 오지랖을 부렸다. 얼굴도 모르는 분들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노력하지 않아도 어느샌가 저절로 행복해져 있기를. 매일 오는 밤이 더 이상 슬프지 않기를. 평안한 밤을 보내는 날이 많아지기를.


반대로 위안도 느꼈다. 잘 살아온 건지, 지금 잘 살고 있는 건지, 앞으로 잘 살 수 있을지와 같은 고민은 누구든 나이를 불문하고 한다는 걸 다시금 깨달으면서. 그럴 때마다 그저 하루를 충실히, 나의 길을 향해 나아가면 된다고 생각하면서. 출발하고, 도착하고, 또 출발하고, 도착하는 과정을 반복하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외에도 누군가는 소망을, 또 누군가는 다짐을, 고민을, 성찰을, 응원을, 꿈을, 가치관을 담은 명언이나 시를 담아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마지막에는 꼭 이렇게 말했다. "모두들 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

 

뉴스와 이 책을 함께 떠올리게 된 이유는 공통점에 있다. 뉴스 속 가게 사장님과 책 속 택시 기사님을 비롯한 승객들은 모두 이 한 가지를 바랐다. 그들은 자신과 자신 주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얼굴도 모르는 타인의 안녕을, 무탈함을 빌었다.


어쩌면 세상은, 자신과 접점이 없거나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마저 외면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온기를 나눠주려는 사람들로 인해 지탱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살아볼 만한 세상이 되고, 더 나은 세상으로 변해가는 걸지도 모른다. 그런 거라면, 기꺼이 지탱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 역시 늘 그 속에 속해 있기를 바란다.


 

"긴 터널을 지나는 방법 중 하나는 터널의 길이를 잊는 것이다."

캄캄하고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긴 터널을 지나고 계신 분들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어요.

모든 일에는 시작과 끝이 있듯이 지금 그 터널도 결국 끝나기 마련이라고.

말 그대로 '지나올 터널'일 뿐이라고.

 

언젠가 <길 위에서 쓰는 편지> 노트를 만나기를 바라며,

2022년 7월 17일

 

 

 

컬쳐리스트.임정화.jpg

 

 

[임정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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